노을을 잃고

 

 

교회는 우리 아파트 단지를 끼고 있어. 동네에 많은 교회가 있지만 큰 교회는 두 곳이야. 아마 우리 집에서 보이는 교회가 가장 클 거야. 우리 집은 8층인데 교회보다 조금 높아. 해가 지면 마치 교회로 노을이 쏟아지는 것처럼 보여. 그리스도의 피가 이 교회를 지켜주고 있는 듯했지. 내가 지금 글을 쓰는 책상과 아이들 방에서 그 장면을 볼 수 있었어. 언젠가 네게 노을과 교회에 대해 이야기해야지, 생각했는데...

 

몇 달 전 크레인이 교회 마당에 들어섰어. 교회보다 더 키가 큰 크레인이었어. 쇠막대기 같은 걸 자꾸만 쌓아올렸어. 그동안 그 철 구조물 틈으로 노을이 기웃댔는데 철근 구조물 위로 파란 천이 씌워지고... 이제 노을을 볼 수 없어. 증축을 하나 봐.

 

큰애가 엄마, 이제 노을이 안 보여요. 그러니까 고층으로 이사하자고 했잖아요.”하는 말을 듣고야 아이들도 하늘을 바라본다는 걸 알았어. 집을 구할 때 같은 동에 고층이 나와 있었는데 난 고층이 부담스럽더라고. 게다가 남쪽에는 축구장이 있고, 서쪽에는 교회가 있어 하늘도 잘 보여서 아쉬운 게 없었거든. 교회는 2층 정도를 더 높였는데, 그 위에 첨탑 같은 걸 만드는지 오늘 보니 더 솟아올라와 있어. 내가 보기엔 주차장을 더 늘려야 할 것 같은데...

 

믿었던 친구한테 발등 찍힌 것 같은 기분이야. 교회도 안 다니면서 친구래. 노을을 못 보니까 날이 갑자기 어두워지는 느낌이야. 어쨌든 노을과 나 사이에 벽이 생겼는데 그게 하필 교회야. 교회는 교회의 것이니까 내가 이러면 안 되는데, 이게 다 내가 낮은 곳에 사는 탓인데, 괜스레 심통이 나. 그냥 몸을 낮추고 고요히 기도하시지. 보기 좋았는데.

 

 

 

 

착한 마녀의 일기

_송현섭

 

 

하느님, 나의 하느님은

나를 조용히 나무 아래로 불러

검은 넝쿨처럼 자라난 손가락

하나씩 하나씩

예쁘게 잘라 주며 말씀하셨네.

 

아이고, 나쁜 생각이 많이 자랐구나.

손가락은 내가 가져갈게.

 

그러나 여전히

왼손은 사나운 수탉, 오른손은 날렵한 사냥꾼.

손가락은 금세 자라나고, 더 길어지고, 더 구부러지고,

완전 검어졌네.

 

다시 어느 날

하느님, 나의 하느님은

나를 길 가장자리로 불러 말씀하셨네.

 

얘야, 바삭하게 말린 뱀과 애벌레팝콘, 원숭이알사탕, 박쥐쫀드기, 기린주스는 불량 식품이야.

먹으면 배가 아파요.

내가 가져갈게.

 

나는 시옷 자의 풀밭에 누워

기름처럼 둥둥 뜬 흰 구름을 보며

생각하고, 고민하고, 의심하고, 추리했네.

 

젠장, 나는 분명 삥 뜯기고 있는 거야.

   

-송현섭, 『착한 마녀의 일기』(문학동네, 2018), p.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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