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덤을 안고

 

 

 

어제 시내 나갔더니 세월호 관련 서명을 받고 있었어. 수백 명이 죽어가는 걸 수천만 명이 본 사건인데도 진실이 아직 인양되지 못했다는 건 믿기 힘든 일이야. 이런 일에도 진상 규명이 제대로 안 되는데 개인이 당하는 일은 얼마나 많을까.

 

어떨 땐 그런 생각이 들어. 사람들은 저마다 크고 작은 무덤을 가진 산 같다는. 오래된 무덤은 작아지고, 산의 일부가 되기도 하지만 평생을 찾는 부모와 자식의 무덤 같은 것도 있지. 선산이 저 멀리 있지 않고 마음속에 있어 무덤 앞에 술을 놓듯 슬픈 술을 마시고, 먹먹한 아픔을 느끼는 사람들, 겉으로는 아무렇지도 않은 듯 무덤을 안고 거리를 걷고 있지. 무겁게 걸어가는 사람에게 이제 내려놓으라고 아무리 말해도 내려놓을 수 없는 무덤이 있지.

 

세월호는 가족이 아닌 사람의 무덤을 사람들이 자기 가슴에 품고 있는 경우가 아닐까 싶어. 잊고 있는 무덤이거나 잊고 싶은 무덤인데 잡풀이 무성하면 가슴이 아파 자기도 모르게 벌초를 하게 되는. 누구나 다 겪을 수 있는 일이라고 생각하니 슬픔에 두려움이 더해지는 일이기도 하고, 저마다의 슬픔에 그 슬픔이 더해져서 더 울컥하기도 하고.

 

하늘이 흐린 것 같은데 햇살이 거실로 들어오네. 언제쯤 마음속 무덤들이 햇살 속에 파릇파릇 푸른 산이 될 수 있을까?

 

 

 

죽음을 받아들이기 좋은 나이는 몇 살일까 생각한다. 물론 그런 나이는 영영 오지 않을 것이다.(안희연)-신용목·안희연, 당신은 우는 것 같다(창비, 2018), p.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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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4-19 09:25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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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4-20 13:52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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