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을 씻으며

 

 

눈병이 옮을까 손을 자주 씻어. 손이 안 닿는 데가 없어. 나도 모르게 눈에 손을 댔을까 싶어 자꾸 씻게 돼. 안경을 밀어 올리고 나서도 혹시, 싶어 씻어. 그러면서 결벽증에 걸린 사람들이 이렇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어. 난 내 병균이 옮을까 염려하지만, 그 사람들은 사물에 묻은 균이 옮아올까 걱정이 되는 거지. 버스 손잡이를 나처럼 눈병 걸린 사람이 만졌을지도 모르잖아. 어떤 사람이 코를 후빈 손으로 손잡이를 만졌을지도 모르고. 순간순간 그런 생각이 들면 손을 안 씻을 수가 없을 것 같아. 얼마나 힘들까.

 

아이들이 어린이집에 다닐 때쯤 이웃집에 간 적이 있어. 모델하우스보다 더 깨끗하고 정돈된 집이었어. 깨끗한 집은 많이 봤어도 그런 집은 처음이었어. 책장에 책들은 모두 번호대로 키를 맞춰 서 있었어. 삐죽 튀어나온 책은 물론 한 권도 없었어. 나는 너무 구질구질하게 사나, 싶을 정도였어. 살짝 주눅이 들어서 우리 집에 초대하기도 뭐했어. 어느 아침에 그 이웃을 만났는데 약국에 간다는 거야. 두통이 심하대. 좀 쉬라고 했더니 무언가 어긋나 있거나 흐트러진 걸 보면 참지 못해서 괴롭다는 거야. 아픈 것보다 정리 안 된 무언가를 보는 게 더 괴로워서 아픔을 참고 정리를 한다고. , 완벽한 건 없구나.

 

청결한 건 좋은 거지. 정돈된 건 좋은 거지. 하지만 지나친 건 부족한 것과 같다고 하지. 청결에 사로잡히면 자기만 청결한 게 아니고 청결하지 못한 사람들을 보는 것조차 견디기 힘들어 해. 균과 싸우고, 먼지와 싸우느라 매일이 투쟁인 사람들을 생각해. 벗어나고 싶어도 벗어날 수 없다던 말이 생각나. 균과 먼지에 대한 무감함으로 나는 평온을 유지하고 있는 걸까? 지금도 책장엔 얹힌 책이 보여. 네게 하는 이야기가 끝나면 읽을 거니까, 라고 생각하면서.

    

결벽증을 이야기 했지만 나도 나도 모르게 벗어나려고 해도 벗어날 수 없는 나만의 굳은 습관이나 생각이 있을지 모르겠어. 남의 티끌은 보여도 자기 들보는 안 보인다고 혹시 내게 그런 게 있는 게 네 눈에 보이니? 눈병이 났는데 손이 바쁜 시간이야. 손을 자주 씻으니까 손 크림을 발라야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손이 금방 건조해져. 적당한 게 뭘까? 무언가에 사로잡히지 않고 자유롭다는 것에 관해 생각하게 돼. 우리가 조금 어설퍼도 평온하게 지냈으면 좋겠어.

 

 

 

먼지에 대하여 

_서연정

 

 

될 수 있으면

틈을 보지 마라

머리카락이나 보푸라기들이

무더기로 모여 있기 쉬운 곳

집주인의 비밀이 묻어 있다

 

현미경으로 들여다본 살비듬에는

다닥다닥 이야기가 붙어 있다

닦아낸 그 자리에 다시 앉는

먼지 닦아내면 또 앉을 먼지

제 몫의 이야기를

끈질기게 안고 있는 먼지

 

억지로 떼어내면 금방이라도

빨간 피가 묻어날 것처럼

치열하게 달라붙는다

 

틈이 많은 삶

그런 곳의 먼지에 대하여

쓸쓸해지는 날

이해하라 용납하라 때론

딱지 아래 핏물까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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