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과 함께

 

 

설날 연휴에 텔레비전에서 영화 신과 함께를 하던데, 볼 상황이 아니어서 나중에 웹툰을 봤어. 이승편 마지막회에 저승사자들이 한꺼번에 6명을 데리러 가는 장면이 나와. 베스트댓글에 용산참사 때 죽은 6명을 언급한 걸 봤어. 그들은 2009120일에 죽었어. 그날은 내가 아이들을 낳은 날이지.

 

아이들은 2008년 크리스마스 때 태어나고 싶었나 봐. 그때 급하게 병원에 갔더니 바로 아기를 낳으면 심장과 폐가 다 자라지 않은 상태라 평생 아플 거라고 했어. 분만 대기실에서 2주를 보내고, 일반 병실에서 다시 그만큼의 시간을 버텼어. 약을 먹고, 주사를 맞으면서. 아이들은 건강하게 태어났어. 대신 내 심장이 커져 있었어. 나는 아팠지만 아프지 않았어. 아이들이 괜찮으니까. 아이들 심장에 문제가 생겼다면 더 힘들었을 거야. 다행이었지.

 

 

내가 아이를 낳는 시간, 아이가 아픈 것보다 내가 아픈 게 다행이라고 생각하는 부모, 그 부모에게서 태어났을 생명이 다시 그런 부모가 되어 보금자리를 지키겠다고 싸우고 있었어. 그리고 죽고 다쳤어. 누구는 사망한 철거민 5명 중 몇이 전문 시위꾼이었다고 하지만 경찰이나 철거민이나 시위꾼이라 불리는 이나, 누구라도 그렇게 죽어도 되는 사람은 없어. 그들이 죽은 날짜를 보고, 내가 아이를 낳은 때를 떠올리고, 다시 그들을 생각하고 있자니 눈물이 핑 돌아.

 

10년 전에 있었던 가슴 아픈 옛날이야기라면 그나마 다행이겠지만 지금도 이 겨울을 어떻게 나야 하나, 걱정하며 무너져가는 집을 지키고 있는 사람들이 있어. 아주 오래 전부터 지금까지 그런 일이 있어. 철거의 결과가 원주민을 내쫓는 것이라면 원만한 철거는 존재할 수 없어. 집을 잃고 있는 사람들, 집이 없는 사람들을 생각해. '신과 함께'가 아니라 '사람과 함께' 하기를.

 

  

 

철거

 _백무산

  

 

아무리 봐도 손목뼈다

재개발 현장 폐기물 하치장

벽돌과 슬레이트 조각과 철근 잔해가

뒤엉킨 거대한 쓰레기 무덤 속


부서진 액자 뜯겨진 꽃무늬 커튼

니스 칠 벗겨진 손때 닳은 문턱

결혼식 흑백사진 뜨개질 대바늘

유치원 가방 삼각자 물안경

나훈아 테이프 동의보감 토정비결

 
뜯어낸 것이다 불법광고물 뜯어내듯이

누군가는 백골이 되도록 누워 있었고

 
레이스 달린 속옷과 프라이팬과 아이들 상장

오래된 교과서와 콘돔과 약병과 벼루

복권과 포마이카 밥상과 청십자 찍힌 안전화

 
긁어낸 것이다 눌러 붙은 장판 긁어내듯이

포클레인이 지붕을 찍어내고 아우성이 들리고

철거반원들이 울부짖는 사람들을 질질 끌어낼 동안에도

지하 셋방에서 붙들고 있었을 것이다

귀도 눈도 썩어 없었으나 그것들을

손목은 끝내 붙들고 놓지 않았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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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2-15 09:21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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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2-15 09:34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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