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래희망

 

 

너는 장래희망이 뭐였니? 나는 문구사 주인이 되고 싶고, 서점 주인이 되고 싶고, 수필가가 되고 싶고, 학자가 되고 싶고, 수행자가 되고 싶었어. 초등학교 6학년 때 서점 주인이 되고 싶다고 했더니 선생님이 그런 건 아무나 할 수 있는 거니까 노력해서 성취할 수 있는 다른 장래희망을 가져 보라고 하셨어.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인 것 같지 않은데, 지금도 그런데...그나저나 아무나는 도대체 누굴까? 그 사람이 할 수 있는 일은 가치 없는 일일까?

 

요즘 작은애의 고민은 장래희망이야. 전에는 산속에 혼자 사는 자연인이 되고 싶다고 하더니 돈을 좀 벌어야겠다고 도시에 살고 싶대. 근데 별다른 장래희망이 없다는 거야. 학교에서도 물어보고 어른들도 물어보고. 설날에 큰애는 장래희망을 말하는데 자기는 없는 게 마음에 걸리는지 고민하더라고.

 

하고 싶어도 할 수 없는 일이 있듯이 할 수 있다고 다 하고 싶은 건 아니야. 장래희망도 변하고, 희망과 달리 살아도 만족할 수도 있고. 장래희망이 없다고 장래가 없겠니, 희망이 없겠니. 없다가 생길 수도 있고 생겼다가 없어질 수도 있다고 했는데도 이것저것 생각하더니 사실은 집에서 뒹굴뒹굴 놀고 싶대. 빈둥거림이 장래희망이라니, 독특하다.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지만 아무나 할 수 없는 일 같아. 그러나 그게 정답이 아니라는 듯 계속 고민하고 있어. 뭔가 근사한 장래희망이 필요한 것 같은데 그런 근사한 건 하고 싶지 않나 봐.

 

희망조차 정해진 자리에 기입해야 할까? 그 자리에 긍정적인 어떤 걸 적어야 할까? 목표가 확실해서 성취해내는 것도 멋지지만 억지로 그럴 필요는 없지 않나 생각해. 난 내 장래희망과 상관없이 살아. 그렇게 간절하지 않았는지 자꾸 바뀌기도 하고. 장래희망 때문에 괴롭지도 신 나지도 않아. 아무렇지도 않아.

 

눈이 눈을 덮는 것처럼 속없고 빛깔 없는 하루하루 속에 장래 따위는, 희망 따위는 다 잊고 뒹굴뒹굴 뒹구르르 만화책이나 넘기며 지내는 것도 괜찮지 않을까. 이제 겨우 11살인데.

 

 

 

나는 사장의 비위를 거스르고 싶지는 않았으나, 나의 생활을 바꿔야 할 하등의 이유도 찾아낼 수 없었다. 곰곰 생각해 봐도 나는 불행하지 않았다.-알베르 카뮈, 이방인(민음사, 2011), p.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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