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소한 모래주머니

 

 

어제 대구로 와서 친정에 들렀다 집에 돌어왔어. 몸은 시간에 맞춰 지칠 준비가 되어 있었나 봐. 피곤이 확 덮치는데 집에 와이파이가 안 되네. 인터넷 전화는 정상인데. 공유기 문젠가? 전에도 이런 적이 있었지만 리셋을 누르거나 전원을 껐다 켜면 됐는데 안 되네. 폰으로 공유기에 대해 검색해 이것저것 해 봤는데 역시 안 되네. 공유기 산 지 꽤 되었으니 새로 사야겠다고, 평소 단골은 아닌데 배송이 가장 빨라 쿠팡에서 샀어. 아이들이 온라인 숙제하는 데 필요하거든.

 

오늘 오전에 공유기가 왔어. 어떻게 이렇게 빨리 올 수 있지? 밤샘을 하나? 어쨌든 공유기를 설치했어. 인터넷과 연결되는 마지막 단계에서 자꾸 안 되네. 결국 통신사에 전화해서 인터넷 정상인데 공유기 설치하는데 안 된다고 했더니 인터넷 끊었다 새로 연결하고, 공유기 연결하니 되네. 쓰던 공유기가 고장이 아니었나? 그래도 작은 애 방까지 와이파이가 다 되니 바꾼 보람이 있다고 나 자신을 위로했어. 아무래도 간단한 일에 너무 오랜 시간을 보낸 기분이지만.

 

그리고 또 하나 해결할 게 있었지. 큰애가 아침에 아빠에게 혼났던 얘기 했는데 기억나? 그날 아침 아들이 부모를 수신차단 했어. 화가 풀려서 오후에 차단 해제하려니 비밀번호가 필요한데 자기는 비밀번호 설정한 적 없다네. 이것저것 눌러봐도 안 되네. 통신사에 전화했더니 휴대폰 회사에 전화해 보라네. 중소 회사 폴더폰이라 그런지 회사 이름 찾기가 어렵네. “얘야, 전화번호 옮겨라. 폰을 초기화하자.” 초기화했더니 되네. 이제야 아들이 내 전화를 받네.

 

세뱃돈 받은 거 입금해야 하는데 아이들 통장은 어디에 있지? 그러고 보니 이사한 후에 애들 통장을 쓴 적이 없네. 왜 애들 통장을 다른 통장들과 같이 안 뒀을까? 몸이 피곤한데 머리는 왜 따라서 잘 안 움직이는 걸까? 그래, 통장 있던 상자와 같이 있던 물건들이 어디 있지? 끽끽거리는 뇌를 움직여 찾긴 찾았는데 은행에 갈 수 있을까? 내일 갈까? 다행히 오전 근무한 남편이 은행에 간다네. 이렇게 또 하나 해결.

 

그리고......사흘을 비운 집은 깨끗해야 하지 않나? 어떻게 이렇게 금방 어지럽혀지지? 빨래와 설거지도 산처럼 쌓여서 어서 이 산을 정복하라고 재촉하는데......

 

피곤 때문인지 이 사소한 일들이 모래주머니가 되어 팔다리에 매달려 있는 기분이야. 사소하다고 꼭 가벼운 건 아니구나. 주저리주저리 너한테 얘기하면서 모래주머니를 떼 내고 있어. 아직 몸이 가벼워지지는 않네. 일찍 자면 오늘이 빨리 끝나겠지. 내일은 사소한 일은 사소한 일로 여길 수 있는 몸과 마음이 되었으면 좋겠어.

 

네게는 편안한 하루였기를.

 

 

 

하얀 천장을 멍하니 바라본다. 콩알만 한 작은 거미가 한 마리, 바쁘게 발을 움직여 끝에서 끝으로 종단 여행을 감행하고 있었다. 힘내라, 힘내. 마음속으로 응원을 보냈다. 저 거미는 나다. -오쿠다 히레오, 나오미와 가나코(위즈덤하우스, 2015), p.2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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