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는 한 달에 한 번 하는 독서모임이 있었어. 회원들이 돌아가면서 책을 선정하고, 그 책에 대해 발제를 해 와. 책은 『빨간 머리 앤』이었는데 발문 중에 자신이 좋아하는 장소에 대한 질문이 있었어.
처음엔 고등학교 때 저녁 먹고 갔던 낮은 산을 생각했어. 그곳에 앉아 있으면 초록의 잎들이 나를 쓰다듬는 느낌이 들어. 그리고 해 지는 걸 볼 수 있어. 지금은 그런 놀을 보기 힘든데 그때는 매일 볼 수 있었어. 서쪽 하늘을 물들이다 못해 남쪽 하늘까지 퍼지는 붉은 빛을 보며 지는 것의 아름다움을 알았어. 놀과 단풍처럼 아름다울 이유가 없는데 아름다운 것들. 그 빛깔에 어떤 까닭이 있는데 내가 모른다 해도 모르는 채로 좋았어.
하지만 질문에 대한 답으로 내 입에서 나온 장소는 성당 지하실이었어. ‘텅 빈 공간’이 떠올랐어. 텅 빈 강의실, 텅 빈 지하실, 텅 빈 강당, 텅 빈 복도......아무도 없는 텅 빈 공간은 서늘해. 세상에 있으면서 세상에서 조금 벗어나 있는 곳. 내가 그곳에 있으면서 그곳이 내 안에 있는 곳. 텅 빈 장소는 내게 그런 곳이야.
성당 지하실에 가 봤어? 그곳에 가면 나도 모르게 ‘아, 아’ 하고 소리를 내. 소리는 조금 울려서 내 목소리가 귀에 들려. 그 소리를 들으며 이름을 불러. 엄마, 라고 부르면 엄마에게, 친구를 부르면 친구에게, 내 이름을 부르면 나에게 이야기를 해. 마치 할 이야기가 있었다는 듯이 소리 내어 말하고 싶어져. 내 안을 떠돌던 소리들이 드디어 나갈 장소를 찾았다는 듯 천천히 그 텅 빈 공간을 걷기 시작해. 내게서 나는 소리인지, 내 밖에서 나는 소리인지 모를 서늘한 울림이 있어. 아무 이유 없이 사랑해, 라고 말하는 거야. 그러면 목을 통해서만이 아니라 몸 구석구석에 숨어있던 숱한 사랑해, 라는 말이 숨구멍 사이로 흘러나오고, 그 공간은 사랑해, 라는 말로 가득 차올라.
요즘은 그런 공간에 가본 적이 없어. 일부러 찾지도 않았어. 아무도 없는 곳이 아니라도 이제 내 안의 소리는 언제라도 나와 성큼 걸을 수 있게 된 걸까? 사랑해, 라고 말하면 나도 사랑해, 라고 대답하는 가족과 친구가 있어서일까? 그래도 여전히 혼자 있는 시간이 필요해. 내가 선택한 홀로 있는 시간은 충만한 느낌을 줘. 어쩔 수 없이 혼자인 것과는 달라. 고독과 외로움의 차이일까?
성당 지하실처럼 텅 빈 공간에 가면 지금의 나는 무슨 이야기를 할까, 문득 궁금해. 아직도 내 안에 혼자라야 우러나오는 소리가 있을까? 그곳에 서서 기슭아, 하고 너를 부르면 내 안의 소리는 네게 뭐라고 말할까? 고요하고 서늘한 그곳을 생각해.
아무런 이유도 없이 행복이 차올랐던 것은, 내가 행복에 관심을 두었기 때문이었다. 행복은 그 오랜 세월 나를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다.-나탈리 골드버그, 『구원으로서의 글쓰기』(민음사, 2016), p.8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