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욕스러운 데가 있다, 먹는다는 것엔. 익숙한 치욕 속에서 그녀는 죽은 사람들을 생각했다. 그 사람들은 언제까지나 배가 고프지 않을 것이다, 삶이 없으니까. 그러나 그녀에게는 삶이 있었고 배가 고팠다. 지난 오년 동안 끈질기게 그녀를 괴롭혀온 것이 바로 그것이었다. 허기를 느끼며 음식 앞에서 입맛이 도는 것.-한강, 소년이 온다(창비, 2014), p.85

 

 

허기를 느끼는 것에 치욕을 느껴본 적이 있니? 가족을 잃었을 때 배고프지 않았어. 먹는 게 구차하게 느껴졌어. 그러나 장례가 끝나고, 49재가 끝나고, 그렇게 시간이 지나니까 결국 허기를 느꼈어. 이상했어. 몸은 살고 싶다는 의지 따위가 없어도 아무렇지도 않게 뭘 먹으려고 해. 그게 살아있는 것의 속성일까.

 

소년이 온다에서 80년 광주를 겪은 은숙은 허기에 치욕을 느껴. 그녀는 5년이 지나도 아직 그때 죽은 이들의 장례를 끝내지 못했나 봐. 아픔을 말할 입이 봉해져 진정으로 통곡하지 못한 채 그 시간에 그대로 멈춰 있었던 걸까.

 

록산 게이는 헝거(사이행성, 2018)에서 또 다른 허기에 대해 말해. 그녀의 몸은 200킬로그램에 가까워. 그녀는 어릴 때 강간을 당했어. 성적 대상화가 되지 않기 위해서였을까? 마음이 공허해서였을까? 그녀는 참을 수 없는 허기를 느껴. 배고프고, 먹고, 먹은 자신을 혐오했어. 아무에게도 말하지 못하는 과거를 지고 다니는 그녀도 허기 앞에서 치욕을 느껴. 허기를 못 참고 정신없이 먹고는 다 토해내기도 하면서. 은수는 그때 죽은 이들을, 록산 게이는 그날의 어린 자신을 매일 마주하고 있는 걸까.

 

지금도 과거가 몸에 새겨져 있는 사람들이 있어. 과거를 데리고 다니며 자신이 짓지 않은 죄에 대한 죄책감으로 산다는 건 어떤 걸까. 죄책감을 벗으려면 은수도 그때 죽었어야 했을까, 록산 게이도 그날 사라졌어야 했을까. 아니지! 죄책감은 그들이 아니라 죄를 지은 사람들이 느껴야 하는 거 아닌가.

 

텔레비전을 틀면 뉴스에서 아직도 얼굴만 다른 은수가, 록산 게이가 나와. 이런 일은 늘 있어 왔다는 듯이. 언제쯤 그들이 무거운 과거의 짐을 내려놓고, 맛있게 밥 한 그릇 먹을 수 있을까. 죄 지은 자들이 죄책감을 느끼는  세상이 될 때까지는 우리에게도 허기는 치욕이 아닐까.

 

 

나는 사랑하는 사람들을 보호하고 싶다. 나 자신을 보호하고 싶다. 내 과거는 내 소유이고, 대부분의 시간 동안 그 과거를 깊은 곳에 묻어두고 그 과거에 상관없이 자유롭게 살기를 소망한다. 하지만 30년이나 흘렀는데도, 설명할 수 없는 일이지만 나는 아직도 그 과거에서 자유롭지 못하다.-헝거, p.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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