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과 제주도 ‘트릭아이 미술관’에서 찍은 사진 정리를 했어. 평면의 명화를 특정 앱을 통해 찍으면 입체적으로 변해. 가만히 보니 사진 속 그림들은 모두 그림자가 있어. 그래서 마치 진짜처럼 보이나 봐. 진짜는 모두 그림자가 있으니까. 그림자를 생각해.
한 남자가 집을 보고 있어. 아주 조그만 집으로 셀 수 없이 많은 사람들이 줄지어 들어가고 있었거든. 남자는 그 집에 행복이 있을 거라 생각하고 그걸 훔치려고 몰래 그 집에 들어가. 작아보였던 집 안은 끝을 알 수 없을 만큼 넓었어. 몰래 들어온 걸 들키고 난 뒤 자신의 그림자를 주고 엄청 큰 보석을 가져 나와. 그런데 사람들이 그림자가 없다고 아무도 그 남자 곁에 안 오는 거야.
초등학교 때 읽은 어떤 만화 내용이야. 작년에 아델베르트 폰 샤미소의 『페터 슐레밀의 기이한 이야기』(부북스, 2011)를 보면서 기억이 났어. 약간 다르긴 해도 기본적인 설정이 같았어. 영원히 줄지 않는 금화 주머니와 그림자를 바꾼 페터의 이야기야. 페터도 그림자가 없어서 흐린 날에 밖에 나오거나 그늘에서만 서 있었어. 해가 나면 그림자가 없는 게 들통 나니까. 사랑도 할 수 없었고.
또 다른 그림자 이야기로는 『안데르센 동화집』(시공사, 2011)에 실려 있는 「그림자」(시공사, 2011)가 있어. 동화하면 아름다운 이야기를 연상하기 쉬운데 이 이야기는 좀 무서워. 젊은 학자가 어쩌다 자신의 그림자와 떨어지고, 나중에 그 그림자에게 점차 주인 자리를 내주고 결국 그림자의 그림자 노릇을 하다 그림자에게 죽임을 당해. 이 이야기에서도 그림자는 꼭 필요한 것으로 나와. 그림자조차 그걸 알고 사람 행세를 하려고 인간을 자기 그림자로 삼는 걸 보면 말이야.
하루키가 안데르센 문학상 수상소감에서 이 책을 언급하면서 우리가 입체적이 되려면 반드시 그림자가 있어야 하며, 그림자가 없는 빛은 진정한 빛이 아니라고 했어. 자신의 어둠을 바라볼 수 있어야 하는데, 그림자를 피하기만 하면 젊은 학자처럼 그림자에 의해 파괴될 수도 있다고.
이 그림자 이야기들에서 그림자가 없는 주인공들은 유령 취급을 받거나 그런 취급을 받을까 봐 두려워 해. 어쩌면 그림자는 육체를 갖고 있다는 증거 같아. 보석보다 금화보다 더 귀한, 살아 있다는 증거. 어찌 보면 슬픔 같기도 해. 햇빛만 있으면 될 것 같지만, 기쁨만 있으면 될 것 같지만, 슬픔을 모르는 사람과 만날 수 있을까? 늘 서로 다른 이야기만 할 것 같아. 공감할 수 없으니까. 진짜 사람이 아닌 것 같을지도 몰라. 진짜는 모두 그림자가 있으니까.
그리고 친구, 당신이 사람들 사이에서 살려면 우선 일차적으로 그림자부터, 그 다음에 돈을 존중할 줄 알아야 합니다. 하지만 당신이 자신만을 위해서, 보다 나은 자신만을 위해서 살려 한다면 이런 충고는 필요가 없습니다.-p.114(『페터 슐레밀의 기이한 이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