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보리는 금강경에서 붓다와 대화를 나누는 제자야. 그는 화를 무척 잘 내고 사람들과 자주 다투었어. 그의 친족들이 산에 들어가 화를 가라앉히는 수행을 하라고 해서 3년을 수행했는데 아무 진전 없이 그냥 집으로 돌아왔어. 마침 그날이 사촌 형인 급고독 장자가 기원정사를 열어 부처님을 초대한 날이었어. 그때 수보리가 부처님 설법을 듣고 깨달음을 얻었대. 금강경에서는 수보리는 다툼이 없는 자들 가운데서 제일’, 맛지마 니까야(중아함경, M139)에서도 훌륭한 가문의 아들, 수보리야말로 평화의 길에 들어선 자이다라고 해.

 

그는 3년 동안 무엇을 했을까? 3년 동안 애쓰지 않고도 부처님의 설법을 듣고 다툼에서 벗어난 자가 될 수 있었을까? 불교에서는 갑작스러운 은총을 믿지 않아. 씨앗이 되는 원인이 있고, 그 씨앗이 발아할 수 있는 조건을 만났을 때 어떤 결과가 온다고 해. 그러면 그 3년은 콩나물에 붓는 물 같은 것이었을까?

 

나는 요즘 자주 화를 내. 아이들 방학이 되면 평소보다 쉽게 화가 나. 쌍둥이라 그런지 우리 아이들은 서너 살 때부터 자주 다퉜어. 그때는 육아 서적을 달고 살았어. 도서관에서 빌려서 화장실에 꽂아두고 아이들에게 화가 나면 화장실에 들어가 읽고 나왔어. 약간은 효과가 있었어.

 

일레인 마즐리시와 아델 페이버의 천사 같은 우리 애들 왜 이렇게 싸울까?』(여름언덕, 2007)가 기억이 나. 제목이 너무 와 닿았거든. 말이 늦은 큰아이가 자꾸 작은아이를 등 뒤에서 껴안는 거야. 그러면 작은아이는 울고. 하지 말라고 해도 못 알아듣는 건지 나아지지 않고. 여기에 딱 맞는 내용이 있었던 건 아니지만 이 책을 읽고 생각해낸 게 종이에 나를 안지 마세요. 싫어요.’라고 적어서 작은아이 등에 붙이고는 큰아이에게 읽어줬어. 물론 큰아이는 글자를 못 읽지만 그 쪽지를 보고는 벌리던 팔을 내리는 거야. 신기하지? 일주일 만에 그 종이를 떼어냈는데 다시 안지 않았어. 지금도 아이들은 천사 같은데 아이들이 다투는 소리에 무던해지지 않아.

 

사실 내가 화를 내는 건 아이들의 문제가 아니야. 내 문제지. 그렇지만 아이들에게 제일 쉽게 화내는 것 같아. 마셜 B. 로젠버그의 비폭력대화(바오, 2004)는 좀 더 근원적인 접근을 하게 해줘. 대화를 위해 관찰하고 거기에서 뭘 느끼는지 알아차리고, 그 느낌이 자신의 어떤 욕구로부터 온 것인지 파악한 후, 상대에게 부탁해야 한다는 게 책의 핵심 내용이야.

 

처음 읽을 때는 판단 없이 관찰하는 것의 어려움과 느낌을 어떻게 명명해야 할지가 관심사였어. 있는 그대로 보는 연습이나 마찬가지였어. 근데 두 번째 읽을 때는 욕구가 와 닿았어. 상대의 행위 때문이 아니고 나의 욕구 때문에 화가 나고, 섭섭하고, 슬프다는 걸 받아들이면 그 감정에 대한 책임이 상대가 아니라 나에게 있다는 걸 알게 돼. 아이가 색종이를 흩어놓아 지저분해진 방 때문에 화가 나는 게 아니라 방이 깨끗하기를 원하고 있기 때문에 더러운 방이 거슬리는 거지. 사람마다 깨끗함의 기준이 얼마나 다른가를 생각해보면 일리가 있지 않아? 나는 뭘 원하는가? 묻는 순간이 필요해. 그러자면 깨어 있어야 해.

 

책을 읽고 있을 때는 얼마간 이 깨어있음이 유지되지만 시간이 지나면 잊어버려. 마치 책으로 영어를 익힌 사람이 실전에서 어버버 하듯이. 영어를 쓰는 환경에서 지내면 저절로 영어가 되듯 내가 원어민처럼 말하면 우리 아이들은 저절로 비폭력적인 대화를 할 수 있을 텐데...그래도 예전에 중국에 가기 전에 공부하고 갔더니 빨리 중국어가 읽히더라고. 이렇게라도 독학해보는 수밖에.

 

아침에 책꽂이에서 수라 하트와 빅토리아 킨들 호드슨의 내 아이를 살리는 비폭력대화(아시아코치센터, 2015)의 책등만 봤을 뿐인데 아이들의 몸싸움을 보고도 평정심을 유지했어. 아이들이 조용히 있었으면 하는 게 내 욕구고 저 아이들은 저게 놀이니까. 하지만 언제까지 이 마음을 유지할 수 있을까? 이 책에서는 '매일 연습하라'고 해. 매일! 그 밖에 무슨 수가 있겠어.

 

수보리가 수행해도 화가 사라지지 않았던 그 3년이 아직도 나에겐 끝나지 않았어. 지금도 아이들이 문을 부술 것만 같아. 나는 문이 부서지지 않기를 원하니까 일단 일어나서 아이들에게 갔다 올게.

    

   

두 가지 말, 특히 하지만’(but)해야 된다’(should)는 표현은 당신이 하는 말에 대한 자녀의 반응에 극도로 나쁜 영향을 끼친다. 당신이 두 가지 말을 얼마나 자주 사용하는지, 그리고 이 말을 사용할 때 자녀가 어떻게 반응하는지 눈여겨보기 바란다.-p.68(내 아이를 살리는 비폭력대화)

 

자녀가 당신에게 요구하는 건 대부분 자기들을 있는 그대로 사랑해 달라는 것이지, 온 시간을 다 바쳐서 자기들의 잘잘못을 가려달라는 게 아니다.(빌 에어즈)-p.110(아이를 살리는 비폭력대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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