액자는 공장에서, 기계에서 저절로 척척 만들어지는 줄 알았어. 거실용 거울 틀에 있는 화려한 꽃이 사람이 붓을 들고 하나하나 그린 거라는 걸 몰랐어. 플라스틱이 녹아 일정한 틀이 되고, 그 틀을 조립해서 액자가 된다는 것. 누군가 플라스틱을 가져다 기계에 넣어서 녹이고, 하나하나 조립해서 액자를 만든다는 걸.

 

현대공예사인가, 이름도 가물가물해. 언젠가 얘기했을 거야. 대학교 1학년 때 위장취업을 했다고. 엄마가 야학을 다니셨다는 말을 듣고 자란 터라 야학에 관심이 있어 들어갔는데 생활야학이라고 노동자들과 공부하는 곳이었어. 위장취업까지 했지만 유약하고 겁 많은 나는 거짓말을 하고 있다는 사실만으로 불편했어. 게다가 노동운동에 뛰어들 만큼 정의감도 없었던 터라 야학에 오래 머물지 못했지. 어쨌든 나는 그곳에서 아주머니들이 조립한 액자를 포장했어. 남편이 간암인 할머니가, 어쩌다 전라도에서 여기까지 온 19살 김 군이 만드는 액자. 생계를 액자에 매달고 있는 사람들 틈에서 내리는 눈이나 보면서, 라디오 소리나 더 컸으면 하면서, 액자의 부품이 되어갔지. 액자에 넣을 상장이나 멋진 그림도 없을 것 같은 아주머니가 조립부에는 여섯 명 있었어. 김 군은 기계부와 조립부를 오가며 심부름을 하고, 나는 수습사원이었어.

 

내 월급은 33만 원. 7년쯤 일한 아주머니들은 55만 원. 26년 전이라고 해도 그때 내 과외비는 20만 원에서 30만 원이었어. 일주일에 3, 회당 2시간. 일요일을 제외하고 매일 공장에서 내가 일하는 시간은 평균 9시간. 하루는 민무늬 액자 10개를 한 상자에 넣는 작업을 했는데 얼마나 액자가 많은지 한 시간은 족히 지났으리라 생각하고 시계를 봤어. 15분이 지나 있었어. 15! 포장은 지루하고 지루했어. 액자를 포장하며 나는 거기에 시간도 함께 넣고 있었어. 시간을 팔아 돈을 사는 거라면 액자를 조립하고 포장하는 시간은 왜 그리 쌌던 걸까?

 

액자를 보면 액자 공장이 떠오르고, 액자 공장에서의 시간이 떠오르고, 그 시간에서 벗어나 글을 쓰고 있는 내가 보여. 내가 쓴 글이 액자에 걸릴 수 있을까? 내 글을 액자에 넣게 되면 액자에 달린 가난한 시간과 포동포동 살찐 내 글의 시간이 서로 닿겠지? 그러면 내 글이 틀이 되고, 액자가 액자 속으로 들어가야 할지도 모르겠어. 그러고 보면 가난한 삶은 어디에나 묻어 있어. 액자에, 탁자에, 안경에, 가방에, 가난한 시간들이 주렁주렁 매달려 있어.

 

아이들이 그림을 그렸어. 가방을 메고 소풍을 가는 그림, 잠수부가 되어 바다 속을 헤엄치는 그림. 아이들은 즐겁고, 아이들의 그림은 더욱 즐거워. 즐겁고 유쾌한 아이의 그림을 액자에 넣고 있어. 아이들은 모르겠지. 언젠가 말해주어야겠어. 가난한 액자의 시간에 대해.

 

 

북 치는 소년

 _김종삼

 

 

내용 없는 아름다움처럼

 

가난한 아희에게 온

서양 나라에서 온

아름다운 크리스마스 카드처럼

 

어린 양들의 등성이에 반짝이는

진눈깨비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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