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월1일이면 신춘문예 당선작이 신문에 실려. 매년 시 부문 당선작을 보는데 무슨 말인지 이해하지 못하는 게 대부분이야. 내가 이해하지 못할 뿐 시의 전당에 있는 사람들은 어떤 기준이 있는가 봐. 간혹 여러 신문에 중복으로 최종심에 드는 글들을 보면 그 글이 좋은 글일 텐데 난 머리만 긁적이게 돼. 문창과 같은 데서 이런 글을 이해할 수 있도록 가르쳐 주나? 하는 생각도 했어.
송수권 시인은 [시 창작 실기론](문학사상, 2013)에서 30%의 고급 독자층을 위해 시를 써야 한다고 했어. 천 사람의 독자보다 한 사람의 깊이 있는 독자가 중요하다고. 그러니까 70%의 저속한 독자층은 의식하지 말라고. 그 글을 읽을 때 난 아무래도 70%의 독자 중 한 사람인 것 같아 의기소침해졌어.
언젠지 모르겠는데 인상 깊은 당선소감을 봤어. 소통하려고 구걸하지 않고 자기 이야기를 하는 시의 당당함에 매료되어서 무슨 말인지도 모르는 채로 5년이나 닥치는 대로 현대시를 읽었다는 내용이었어. 이해할 수 없는 글에서 그런 멋진 부분을 찾아낸 그 사람이 멋지게 느껴져. 난 아직 그런 지점을 발견하지 못했어. 훌륭한 글을 알아볼 안목이 없는 게 안타깝지만 간혹 억지로 이해하려고 애쓰는 것도 안타까워.
다 이해하지 못해도 좋아한 시도 있었어. 기억 나? 내가 이상 시집을 들고 다녔던 거. 그래, 이해하지 못해도 좋아할 수 있지! 사람도, 사물도. 이해를 넘어선 끌림이 있는 시를 만나고 싶어. 내가 뭔가 애써야 하는 걸까? 너라면 애써서 좋아하는 건 좋아하는 게 아니라고 할 것 같지만. 돌아가신 서당 선생님이 나한테 그러셨어. 좋은 사람은 늘 만나는 게 아니니까 만나려고 애쓰고, 만나면 소중하게 여기라고. 그 말 때문에 결혼까지 했는데 시도 마찬가지일까?
다행히 작년보다는 올해 시들이 읽기 편해. 그래도 [김수영 전집2-산문](민음사, 2003)에서 읽은 구절이 내 마음을 대신 얘기해주는 것 같아.
한국의 현대시에 대한 나의 대답은 한마디로 말해서 <모르겠다!>이다.-p.18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