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의 매일 편지를 쓰던 때가 있었어. 중학교 2학년 때 나와 그다지 친하지 않았던 K가 복도에서 쪽지를 주는 거야. 나와 친구가 되고 싶다고. 교실 앞쪽에 앉은 그 아이와 뒤쪽에 앉은 나는 특별한 노력 없이 친해질 수 있는 위치가 아니었어. 친구하고 싶다는 쪽지 같은 건 그때 처음 받아봤어. 마치 러브레터처럼 가슴이 뛰었지. 나도 답장을 하고, 다시 답장이 오고. 쪽지가 편지가 되었지. 미용실에서도 가로등이 켜진 길에서도 나는 K에게 할 얘기들을 떠올렸어. 어린왕자 이야기는 늘 편지 몇 줄을 차지했고.
일요일에 학교에서 따로 만난 적이 있긴 하지만 우리는 실제로 만나서는 이야기를 나누지 못했어. K의 친한 친구들이 나를 좋아하지 않았거든. 아마도 그 애들이 싫어하는 아이를 싫어하지 않아서였을 거야. 나는 지금도 까닭을 알 수 없는데 반 친구들이 한 아이를 싫어했어. 사실 나는 별 관심이 없었어. 그런데도 따돌림 받던 아이는 다음해 자기 생일 때 나를 집으로 초대했어. 정원이 있는 커다란 집이었는데 그 아이의 부가 친구들과 조화를 이루지 못했는지도 모르겠어. 어쨌든 K와 나는 같은 반이면서 펜팔 친구였어. 학년이 바뀌고도 편지를 주고받았지만 K의 어머니가 공부에 방해된다고 편지를 못 쓰게 하면서 편지는 끊겼어. 지금도 K를 생각하면 그 아이의 얼굴보다 편지지에 적혀 있던 가늘고 단정한 글자가 생각 나.
편지가 쓰고 싶어졌어. 왜 너냐고? 못 본 지 20년이 훌쩍 지났지만 간혹 꿈에서 너를 만나. 왜 그런지 꿈속에서 아주 짧게 만나는데 늘 어색해. 크게 말이 없는 네가 내 이야기를 잘 들어주던 모모 같은 때가 있어서일까? 나는 그때의 너를 불러 이야기를 하고 있는 거야. 강소천의 [꿈을 찍는 사진관]에서 꿈을 찍은 사진 속에 어른이 된 화자와 어린 순이가 있었던 것처럼 마흔 몇 살의 내가 스무 살의 네게 말을 걸어보는 거지. 어쩌면 나에겐 넌 꿈속에 사는 사람인지도 모르겠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