쇼펜하우어×니체 필사책
아르투어 쇼펜하우어.프리드리히 니체 지음, 강용수 편역 / 유노북스 / 202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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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흔에 읽는 쇼펜하우어』로 60만 독자의 마음을 사로잡은 강용수 교수가 이번에는 쓰는 철학을 선보입니다. 『쇼펜하우어×니체 필사책』은 사유를 실천으로 옮기는 100번의 기록을 할 수 있게 돕습니다.


독일어 원전에서 발췌한 쇼펜하우어와 니체의 명문장 100개를 손끝으로 옮기며, 철학을 읽는 사유에서 쓰는 실천으로 확장시켰습니다. 쇼펜하우어의 인생론과 니체의 인생론, 여기에 강용수 교수의 철학 에세이 10편이 더해져 두 사상가의 문장을 현대인의 삶과 연결시키는 사유의 징검다리를 놓습니다.


쇼펜하우어는 삶을 고통으로 직시하되 그 고통을 줄이는 방법에서 행복의 실마리를 찾았습니다. 니체는 쇼펜하우어를 스승이라 불렀지만, 스승을 넘어서고자 했던 그는 고통을 피하거나 줄이는 대신 아예 껴안으라고 말합니다. 이 필사책은 두 철학자의 대화를 손끝으로 이어 쓰는 기록과도 같습니다. 고독 속의 쇼펜하우어와 긍정의 니체를 마주하게 됩니다.


필사는 단순한 베껴 쓰기가 아니라 철학자의 사유를 직접 체험하는 방법이라고 합니다. 철학은 정답을 주지 않습니다. 같은 문장을 읽고도 서로 다른 생각을 품게 되는 것, 그것이 철학의 힘이자 필사의 미학입니다.





1부의 주인공 아르투어 쇼펜하우어(Arthur Schopenhauer)는 19세기 독일의 철학자이자 실존 철학과 정신분석학의 뿌리를 제공한 인물입니다. 흔히 염세주의자로 불리지만, 사실 그의 철학은 삶의 고통을 냉정하게 인식하고 그 안에서 지혜를 길어 올리는 사유의 기술에 더 가깝습니다.


행복은 기대와 현실의 균형에서 온다며 쇼펜하우어는 우리에게 행복을 목표로 삼지 말고, 불행을 줄이는 기술을 익히라고 조언합니다. 행복을 쾌감으로만 판단하는 태도는 결국 더 큰 결핍으로 이어집니다. 그는 인간의 인생을 고통과 무료함을 오가는 시계추와 같다고 했습니다.


인간관계에 관한 쇼펜하우어의 조언은 현실적입니다. "적당한 거리에서는 아무도 상처받지 않는다"라는 문장은 고슴도치 우화를 떠올리게 합니다. 추운 겨울 서로 체온을 나누려던 고슴도치들이 너무 가까이 가면 가시에 찔리고, 너무 멀리 떨어지면 추위에 떨게 되듯, 인간관계에도 적정 거리가 필요하다는 겁니다.


그는 또 남에게 인정받으려 하지 말고 나 자신을 인정하라고 말합니다. 타인의 시선 속에서 불안을 키우는 대신, 자신의 내면에 귀 기울이는 일이 진정한 자유로 나아가는 길임을 짚어줍니다.


강용수 교수는 이런 문장들을 필사로 옮길 때의 힘을 강조합니다. 한 글자씩 써 내려가며, 손끝의 속도가 느려질수록 생각은 깊어지고, 문장은 마음속에 새겨집니다.





2부에 등장하는 니체(Friedrich Nietzsche)는 젊은 시절 쇼펜하우어의 저서에 깊이 매료되어 철학의 길로 들어섰지만, 곧 스승의 사상을 넘어서려 했던 반항의 철학자입니다. "신은 죽었다. 우리가 신을 죽였다"라는 명제는 모든 가치체계의 붕괴와 재창조를 요구하는 시대의 외침이었습니다.


니체의 철학은 절망의 철학이 아니라 운명애(Amor fati)라 불리는 삶의 긍정 철학으로 완성됩니다. "네 운명을 사랑하라." 니체는 인생의 모든 고통과 결핍을 포함해 그것을 다시 살아도 좋다고 말할 수 있을 때, 비로소 진정한 자유가 시작된다고 봤습니다.


『쇼펜하우어×니체 필사책』은 철학을 손으로 배우는 방식입니다. 우리가 잃어버린 집중의 기술을 필사를 통해 자연스럽게 습득할 수 있습니다. 필사는 복제 행위가 아닙니다. 철학자의 문장을 옮기며 자연스럽게 문체와 사고의 리듬을 흡수하게 됩니다. 이 책은 180도로 완전히 펼쳐지는 제본으로 만들어져 편안하게 쓸 수 있습니다.


강용수 교수의 철학 에세이 10편을 통해 필사의 사유를 확장합니다. 철학은 삶의 목적과 과정을 의식하는 노력, 인생에 철학이 필요한 이유 같은 주제는 필사 후의 성찰로 이어집니다.


흥미롭게도 두 철학자 모두 글쓰기와 독서에 관한 명언을 많이 내놓았더라고요. 쇼펜하우어는 "타인의 생각만 받아들이면 스스로 생각할 힘을 잃어버린다"라며 무지성의 독서를 경계했습니다. 어떻게 쓰는가가 곧 어떻게 생각하는가를 드러낸다는 의미의 "문체는 곧 생각이다"라는 명제도 와닿습니다.


니체는 "글을 쓰는 열 가지 원칙", "말하듯이 써라" 등을 통해 피상적인 글쓰기를 거부하며 다양한 글쓰기 기술을 들려줍니다. "좋은 문장을 만나면 축제를 벌여라", "읽은 책은 시간이 흘러야 가치를 알 수 있다" 처럼 가슴에 새겨두고 싶은 독서 명언도 가득합니다.


100문장을 손으로 따라 쓰다 보면, 어느새 그 문장들이 나의 언어가 되고 나의 사유가 됩니다. 책장을 넘기는 독서와 달리, 필사는 몸으로 체득하는 철학입니다.


한 문장을 쓸 때마다, 내 생각이 어디쯤 있는가를 자문하게 됩니다. "인생의 40년은 본문이고 이후 30년은 주석이다"라는 쇼펜하우어의 통찰과 "춤추는 별 하나를 잉태하려면 내면에 혼돈을 품어야 한다"라는 니체의 역설이 만나는 지점. 그곳에서 우리는 삶의 의미를 다시 묻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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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원히 살 것 같은 느낌에 관하여 - 저항의 문장가 윌리엄 해즐릿 에세이의 정수
윌리엄 해즐릿 지음, 공진호 옮김 / 아티초크 / 202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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윌리엄 해즐릿 에세이집 세 번째 책 『영원히 살 것 같은 느낌에 관하여』. 불안의 시대, 해즐릿이 던지는 직격탄을 만나보세요.


『혐오의 즐거움에 관하여』, 『왜 먼 것이 좋아 보이는가』, 『영원히 살 것 같은 느낌에 관하여』를 관통하는 것은 윌리엄 해즐릿의 정면돌파적 시선입니다.


시대의 권위에 맞섰던 급진적 지식인이었던 해즐릿은 일상의 사소한 감정부터 인간 존재의 근원적 조건까지 예리하게 들여다보았습니다. 이 세 권은 그가 에세이라는 형식을 통해 어떤 담론의 무기로 자리매김했는지를 보여주는 사유의 무기고입니다.


우리는 지금 해즐릿이 살았던 시대와 놀라울 만큼 유사한 위기에 직면해 있습니다. 권위주의의 부활, 혐오의 확산, 경제적 양극화, 지적 나태함, 그리고 무엇보다 착한 척의 범람. 해즐릿은 이 모든 것에 대한 해독제입니다.





해즐릿의 글은 지금 우리의 삶을 비추는 거울입니다. 알고리즘의 노예가 되어 사고를 외주화하며, 불편한 진실에서 눈을 돌리는 우리 자신을 보여 주는 거울 말이죠. 해즐릿은 우리에게 묻습니다. 당신은 정말 생각하는가? 당신의 신념은 진짜 당신의 것인가? 당신은 살아 있는가 아니면 그저 존재하는가?


그럴듯한 말로 포장된 위로에 둘러싸여 있는 우리를 흔들어 깨우는 무언가가 필요합니다. 해즐릿은 그 역할을 합니다. 19세기 영국의 급진적 공화주의자였던 윌리엄 해즐릿. 그는 보수주의자들에게 증오의 대상이었고, 1830년 런던 소호의 허름한 하숙집에서 생을 마감했습니다. 하지만 그가 남긴 문장들은 200년이 지난 지금도 가슴팍을 후벼 팝니다.


『영원히 살 것 같은 느낌에 관하여』는 아티초크 출판사가 국내에 소개하는 세 번째 해즐릿 에세이집입니다. 이번 선집에는 저항의 문장가라는 수식어가 왜 붙었는지 보여 주는 여덟 편의 에세이가 실려 있습니다.


첫 번째 에세이부터 해즐릿은 칼을 빼 듭니다. "그에게 지금 유행하는 생각을 포기하라고 설득하는 건, 마치 옷의 앞뒤를 돌려 입으라는 것과 마찬가지다. 그가 늘 입에 올리는 '최고의 사람들'이란 실은 자기 소유지에 살면서 타인의 생각으로 살아가는 이들을 뜻한다."라는 문장이 와닿습니다.


해즐릿이 공격하는 '진부한 비평가'는 문학 평론가만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우리 모두의 초상화입니다. 유행하는 담론에 편승해 마치 자기 생각인 양 떠드는 현대인 말이죠. 해즐릿은 이런 지적 나태함을 짚어냅니다.


"그가 말하는 '세상의 의견'이란 것도 사실은 자신이 드나드는 작은 모임 안에서 오가고 들리는 말들일 뿐이다."라며 에코 챔버 현상을 19세기에 이미 예견한 듯한 이 문장은 우리가 얼마나 좁은 세계 안에서 전부를 본다고 착각하는지 일깨워 줍니다. 해즐릿은 진부함이 단지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적 위험이라고 봤습니다. 독립적 사고의 부재는 권위주의가 자라나는 토양이니까요.


두 번째 에세이에서 해즐릿은 우리 사회가 찬양하는 '온화함'을 비판합니다. "온화함, 또는 흔히 그렇게 여겨지는 성품은 모든 덕목 가운데 가장 이기적인 것이다. 열에 아홉은 그저 게으른 기질에서 비롯된 것일 뿐이다."라고 말입니다.


수많은 '착한 사람들'을 떠올리게 됩니다. "나는 분쟁을 싫어해"라며 중립을 가장한 방관자들 말입니다. 해즐릿은 이런 온화함을 아무런 대가를 치르지 않는 인도주의에 불과하다고 일갈합니다. 해즐릿에게 온화함은 위선의 다른 이름이었습니다.


세 번째 에세이는 인간관계의 핵심을 파고듭니다. "첫인상이 가장 진실에 가까운 경우가 많다. 우리는 첫인상을 그럴듯한 말이나 행동에 속아 잊어버렸다가, 결국 대가를 치르고서야 그 사실을 깨닫곤 한다."라고 말합니다.


처음 만났을 때 느꼈던 묘한 불편함을 이성으로 억누르고 "편견을 가지면 안 돼"라며 넘어갔던 순간들. 그런데 시간이 지나고 보면, 그 첫인상이 정확했던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해즐릿은 우리에게 직관을 믿으라고 말합니다. "한 사람의 얼굴은 오랜 세월이 만든 결과물이며, 그의 삶 전체가 표정에 새겨져 있다. 아니, 그것은 자연이 직접 찍어낸 흔적이며 쉽게 지워지지 않는다."라고 말입니다.


네 번째 에세이에서 해즐릿은 종교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급진적 유니테리언 목사의 아들로 자란 그는 종교의 본질과 그것을 악용하는 인간의 위선을 누구보다 잘 알았습니다. 이 에세이는 신앙 자체를 공격하지 않습니다. 대신 신앙을 가장한 자기기만, 경건함의 탈을 쓴 권력욕, 구원의 이름으로 행해지는 폭력을 해부합니다.


종교의 이름으로 차별을 정당화하고, 신앙을 정치적 도구로 사용하며, 구원을 미끼로 권력을 행사하는 현상은 여전합니다. 해즐릿은 우리에게 묻습니다. 당신의 신앙은 진정한 믿음인가, 아니면 사회적 안전망인가? 당신은 신을 따르는가, 아니면 신의 이름을 빌려 자신의 욕망을 정당화하는가?


다섯 번째 에세이는 가난 그 자체보다 가난이 드러내는 인간관계의 민낯을 이야기합니다. "가난은 굴욕만 안겨 주는 것이 아니라, 주변 사람들의 민낯까지 드러낸다. 가난 그 자체보다 상처가 되는 것은 가난해졌을 때 받는 대우다."라고 말합니다.


경제적 여유가 있을 때는 친구였던 사람들이 어려워지면 연락을 끊고, 성공했을 때는 관대하게 봐주던 실수들이 실패하면 치명적 결함이 되는 현실. 해즐릿은 가난이 물질적 결핍 이상의 것, 즉 사회적 죽음에 가까운 경험이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여섯 번째 에세이는 인도인 곡예사의 묘기를 관찰하며 예술과 기술의 본질을 탐구합니다. 해즐릿은 자신의 직업적 고민을 드러냅니다. 곡예사는 실수하면 피를 흘리지만, 작가는 형편없는 글을 써도 당장은 아프지 않습니다. 그 모호함이야말로 글쓰기의 위험이자 유혹입니다. 곡예사의 기술은 생존과 직결되지만, 작가의 기술은 평가와 역사의 심판을 기다려야 합니다.


콘텐츠 범람의 시대. 누구나 글을 쓰고, 누구나 창작자가 될 수 있는 시대입니다. 해즐릿은 예술가의 책임을 말합니다. 피 흘릴 각오가 없다면, 칼을 들지 말라고.





표제작인 일곱 번째 에세이는 청춘을 찬미하면서 동시에 그 허상을 폭로하는 글입니다. 젊음의 가장 큰 자산은 무한한 시간이 있다는 환상입니다. 우리는 언젠가 죽는다는 것을 '안다'고 생각하지만, 진짜로 '느끼지'는 않습니다. 그 간극이 청춘을 가능하게 하는 동시에 위험하게 만듭니다.


청춘이 영원할 것 같은 느낌은 착각이지만, 동시에 그 착각 없이는 살 수 없다는 역설. 만약 우리가 진짜로 유한함을 체감한다면 아무것도 시작할 수 없을 테니까요. 청춘의 오만함은 필요악입니다. 문제는 그 환상이 깨졌을 때 어떻게 대응하느냐입니다.


마지막 여덟 번째 에세이는 병상에 누워 바라본 세계를 묘사하며, 고통과 고독이 가져다주는 통찰을 이야기합니다. 몸이 무너질 때, 우리는 비로소 무엇이 본질적인지 알게 됩니다. 건강할 때는 중요하다고 생각했던 것들이 얼마나 사소한지, 반대로 무심코 지나쳤던 것들이 얼마나 소중한지 깨닫게 됩니다.


해즐릿의 문장은 때로는 시처럼 아름답고, 때로는 철학처럼 날카롭습니다. 논리적이면서도 감성을 자극하고, 개인적 경험에서 출발해 보편적 진리에 도달합니다. 해즐릿의 문학 비평론은 월터 페이터와 토머스 칼라일에게 영향을 주었고, 20세기의 조지 오웰과 크리스토퍼 히친스 같은 정치 에세이스트들에게도 이어졌습니다. 버지니아 울프의 에세이에서도 해즐릿의 흔적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여덟 편의 에세이를 관통하는 핵심은 위선에 대한 거부입니다. 해즐릿은 이면에 숨은 거짓을 폭로합니다. 각성의 시작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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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머리보다 중요한 눈치 사용 설명서 - 마음의 벽을 넘어, 배려로 완성하는 직장생활
가와하라 레이코 지음, 송해영 옮김 / 한가한오후 / 202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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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았습니다


보고서를 잘 쓰고, 일정 관리를 완벽하게 해도 결정적인 순간에 기회는 눈치 빠른 사람에게 돌아가곤 합니다. 당신에게 부족한 건 '배려'일 수 있습니다. 사람의 마음을 읽는 기술이 곧 일머리이기도 합니다. 『일머리보다 중요한 눈치 사용 설명서』에서 직장 스트레스 솔루션을 만나보세요.


저자 가와하라 레이코는 일본 전역 기업에 고객 만족 솔루션을 제공해온 전문가입니다. 눈치와 배려의 개념을 수십 년간 연구한 저자는 직장에서 살아남는 힘은 일을 잘하는 능력보다 사람의 마음을 읽는 기술에 있다고 말합니다.


여기서 눈치란 그저 상대의 비위를 맞추는 것이 아니라, 나의 벽과 상대의 벽을 동시에 인식하는 감각적 지혜입니다. 팀워크를 원하지만 무례한 친절에는 피로를 느끼는 시대. 그 균형점을 배려로 제시합니다.


우리가 배려를 실천하지 못하는 이유는 대부분 괜한 참견일까라는 망설임 때문입니다. 저자는 그 벽을 허무는 가장 간단한 방법으로 대가를 바라지 않는 마음을 제시합니다.


감사 인사를 받지 못하거나 오지랖 넓은 사람처럼 보여도 괜찮다고 합니다. 대가를 바라지 않는 마음이 더 중요하다고 말하며, 배려의 본질이 호의의 효율이 아니라 관계의 순환임을 강조합니다.





출근길에 마주치는 동료에게 건네는 아침 인사는 조직 내 소통의 문을 여는 첫 단추입니다. 이름을 불러주는 행위, 죄송합니다를 감사합니다로 바꾸는 언어 습관도 같은 맥락에서 다뤄집니다. 저자는 작은 말 한마디가 마음의 벽을 허무는 데 얼마나 강력한 힘을 가지는지, 그 반복이 결국 신뢰를 쌓는 첫걸음임을 짚어줍니다.


자신의 벽에 이어 상대의 벽을 다루는 법을 알려줍니다. 여기서는 상대의 영역을 침범하지 않는 존중의 기술이 등장합니다. 거친 표현은 되도록 사용하지 않기, 상담하러 온 사람에게 의자 권하기, 약속 시간보다 15분 일찍 도착하기 같은 방법들이 펼쳐집니다.


당연해 보이지만 바로 그 당연한 것을 실천하는 사람이 드문 것이 문제입니다. 저자는 이를 조직 내 인간적 신뢰의 결핍으로 규정하며, 배려는 결국 기본의 복원에서 출발한다고 말합니다.


직장에서 배려가 어렵게 느껴지는 이유는 감정이 아니라 습관의 문제이기 때문입니다. 저자는 이를 해결하기 위해 배려를 습관으로 만드는 다섯 가지 기술을 소개합니다. 한정, 예고, 공유, 영역, 기억. 이 다섯 키워드는 직장 내 스트레스의 주요 원인을 통찰하면서 동시에 소통의 효율을 높이는 구체적 행동 지침으로 작동합니다.


첫 번째, 결정 피로를 줄이는 한정 기술은 상대가 선택의 부담을 느끼지 않도록 돕는 방법입니다. 메신저에 빠르고 간결하게 답장하기 같은 세세한 예시를 통해 상대의 시간을 아껴주는 방법 등이 소개되어 있습니다. 


두 번째 배려의 힘으로 불안을 줄이는 예고 기술이 있습니다. 직장인이라면 갑작스러운 회의 호출이 얼마나 불안한지 잘 압니다. 이를 줄이는 가장 간단한 방법으로 예고의 힘이 있습니다. 회의 중에 말을 시킬 것이라고 미리 알려주기, 전화 걸기 전 메시지로 먼저 물어보기 등 사소하지만 결정적인 행동들이 상대의 심리적 안전감을 높입니다. 이런 세심함이 결국 팀 전체의 퍼포먼스를 끌어올립니다.


배려의 세 번째 축은 공유입니다. 저자는 조언할 때는 지나치지 않도록 주의하라며, 짧고 명료한 피드백의 중요성을 강조합니다. 우리는 도움을 준다는 명분 아래 상대의 시간을 빼앗는 오류를 범하곤 합니다. 그 대신 조언이 길어질 때는 멈출 줄 아는 배려가 필요하다고 말합니다. 공유란 가르침이 아니라 함께 고민하는 과정이라는 점을 일깨워줍니다.





네 번째, 영역의 기술에서는 직장인들이 어려워하는 피드백의 예의를 구체적으로 다뤄줍니다. 상대의 사정을 먼저 듣고, 지적하기 전에 공감부터 표현하는 태도는 관계의 윤활유가 됩니다. 문제 제기 메일은 난처함을 먼저 전하고 제안으로 마무리하라는 팁도 유용합니다.


마지막으로 저자는 기억을 배려의 완성이라 부릅니다. 보이지 않는 수고를 기억하기, 의기소침한 동료에게 먼저 다가가기, 칭찬은 당사자가 없는 자리에서 하기 같은 행동입니다.


말투, 작은 행동 하나가 공기의 밀도를 바꿉니다. 저자는 그 미묘한 흐름을 포착하는 능력인 눈치력을 키우는 법을 알려줍니다. 눈치는 노력으로 배울 수 있는 기술이며 관계의 방향을 바꾸는 유연한 힘입니다.


『일머리보다 중요한 눈치 사용 설명서』는 꾸준한 배려는 신뢰를 쌓고, 그 신뢰는 눈에 보이는 성과와 결과, 더 나은 기회와 운으로 이어진다 것을 이야기합니다. 저자가 강조하는 눈치의 본질은 꾸준함입니다. 배려는 즉시 성과를 보장하지는 않지만, 결국은 가장 확실한 커리어 자산이 됩니다. 직장 내 생존 전략을 넘어, 인생 전체의 커뮤니케이션 철학으로 읽을 만한 가치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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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이디와 나 - 나에게만 보이는 특별한 친구 이야기
록스 핑크.리치 핑크 지음, 사라 라이스 그림, 김붕년 옮김 / 서교책방 / 202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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록스 핑크와 리치 핑크의 그림책 『에이디와 나』는 ADHD(주의력결핍 과잉행동장애)를 다른 방식으로 생각하고 세상을 경험하는 뇌의 언어로 재해석합니다.


주인공 소피는 유난히 머릿속이 바쁩니다. 어른의 시선에서 보면 산만함 그자체입니다. 하지만 소피의 세계는 풍요롭고 다채로운 사유로 가득 차 있지요.


이 책의 매력은 문제 대신 가능성을 본다는 데 있습니다. ADHD를 단순히 통제 불가능한 존재로 그리지 않습니다. 오히려 보이는 친구 에이디는 소피가 세상을 경험하는 하나의 창이자 상상력의 동반자입니다. ADHD를 함께 살아가는 존재로 그려냅니다.


플래티넘 셀러 싱어송라이터인 록스 핑크 저자는 2021년 성인 ADHD 진단을 받은 뒤 ADHD Love라는 공동체를 만들었습니다. ADHD는 치료의 대상이 아니라 이해의 대상, 즉 다르게 빛나는 뇌라는 메시지입니다.





에이디(AD)라는 상상 속 친구의 존재가 흥미롭습니다. 소피에게만 보이는 이 친구는 사고의 폭풍처럼 쉴 새 없이 말을 걸고, 새로운 생각을 불러옵니다. 어른들은 그를 ADHD라 부르지만, 소피는 그 의미를 알지 못합니다. 소피에게 에이디는 단지 재미있는 친구일 뿐입니다.


이 책의 에이디는 자기 존재의 일부입니다. 즉, ADHD를 떼어내야 할 것이 아닌 함께 살아가야 할 나의 일부로 그려냅니다. 다름은 결함이 아니라 색깔입니다.


"죄송해요, 선생님. 에이디는 가끔 정말 무시하기 힘들어요……"라는 소피의 말은 변명이 아닙니다. 자신의 내면에서 벌어지는 혼돈을 어떻게든 설명하려는 절박한 시도입니다.. 그런데 우리 교육 시스템은 소피에게 얼마나 많은 공간을 내어주고 있을까요? 대부분의 교실은 보통의 아이들을 기준으로 설계되어 있고, 그 기준에 맞지 않는 아이들은 문제로 분류됩니다.


ADHD는 고쳐야 할 병이 아닙니다. 그저 특별한 두뇌일 뿐입니다. 저자는 ADHD 진단 이후 자신의 창작력이 오히려 강화되었다고 고백합니다. 다중 사고, 즉 여러 생각이 한꺼번에 떠오르는 특성이 놀라운 시너지를 냈기 때문입니다.


이는 ADHD를 집중하지 못하는 사람이 아닌 다양한 집중을 동시에 수행하는 사람으로 재정의하는 시도이기도 합니다. 그의 예명 RØRY로 발표된 음악들에는 그 내면의 과잉이 감정의 밀도로 승화되어 있습니다.


『에이디와 나』에서 진짜 주인공은 어쩌면 이해 그 자체일지도 모릅니다. 교장선생님의 시선, 친구의 수용, 그리고 스스로를 인정하는 소피의 변화는 모두 다정한 이해라는 공통된 정서를 바탕으로 합니다. 단순히 감정적 위로를 넘어서는 힘을 보여줍니다.





서울대학교 김붕년 교수는 이 책의 해설에서 다정한 이해와 알맞은 교육이 만나면 반드시 희망을 만든다고 말합니다. ADHD를 가진 아이에게 필요한 것은 약이 아니라 관계, 꾸중이 아니라 인정입니다.


우리 사회는 집중력이 부족한 아이를 문제아로 분류합니다. 하지만 『에이디와 나』는 그 문제의 프레임 자체를 해체합니다. ADHD를 가진 아이는 망가진 존재가 아니라 다른 리듬으로 살아가는 사람입니다.


우리는 모두 각자의 에이디를 가지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어떤 사람은 사회적 상황에서 불안을 느끼고, 어떤 사람은 감각에 예민하고, 어떤 사람은 숫자보다 그림이 편하고, 어떤 사람은 조용한 곳보다 시끄러운 곳에서 집중이 더 잘 됩니다. 이 모든 것이 다양성입니다.


이제 교육의 기준은 얼마나 똑같이 하는가가 아니라, 얼마나 다르게 살아도 존중받는가로 옮겨져야 할 때입니다. ADHD를 이해한다는 것은 곧, 다양함을 인정한다는 뜻입니다. 그것이 바로 이 책이 전하는 시대의 메시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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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궁금할 땐 뇌과학 - 우리의 행동을 결정하는 뇌에 관한 11가지 흥미로운 질문
호르헤 챔.드웨인 고드윈 지음, 이영래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2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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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은 도파민의 장난일까? 자유의지는 환상일까? 호르헤 챔과 드웨인 고드윈의 카툰 뇌과학 수업 『내가 궁금할 땐 뇌과학』. 복잡한 이론을 직관적인 그림과 유머감 가득한 스토리텔링으로 설명하고 있어 유쾌하게 읽은 뇌과학 입문서입니다.


뇌를 인간 이해의 열쇠로 바라보는 두 저자, 로봇공학자이자 베스트셀러 만화가 호르헤 챔과 신경과학자 드웨인 고드윈이 손을 맞잡았습니다. 샌드위치 가게에서 우연히 만난 그들은 한 가지 실험을 시작합니다.


우주에서 가장 복잡한 기관인 뇌를 인류가 만든 가장 단순한 표현 방식인 만화로 설명할 수 있을까? 『내가 궁금할 땐 뇌과학』은 그 실험의 결과물입니다. 샌드위치 가게에서 시작된 이 대화는 사랑, 혐오, 자유의지, 행복, 죽음에 이르기까지 인간의 행동을 결정짓는 11가지 질문으로 확장합니다.





첫 번째 질문 '정신은 어디에 있을까?'는 단순히 신경학적 위치를 찾는 데 그치는 게 아니라 철학적으로도 깊이감이 있습니다. 아리스토텔레스가 심장에 정신이 있다고 생각한 고대인의 관점에서 시작합니다. 흥미롭게도 그 논리를 완전히 무시할 수 없다고 합니다. 실제로 우리는 강한 감정을 느낄 때 가슴이 철렁 내려앉거나 명치가 찌릿거리는 경험을 하잖아요. 이런 신체적 반응을 근거로 심장을 감정의 중심으로 여기는 것은 자연스러운 반응이었습니다.


현대 신경과학은 정신은 뇌의 한 영역에만 위치하지 않는다고 말합니다. 저자들의 표현을 빌리면 "당신은 조금씩 모든 곳에 존재한다"라는 것입니다. 감정이 심장 박동과 연동된 신체 반응과 긴밀히 연결되어 있음을 보여줍니다.


단어를 이해하고 조합하는 뇌 영역이 있고, 세상을 감지하고 몸을 움직이는 영역이 있으며 이들은 모두 나를 구성하는 필수 요소입니다. 나는 하나의 통일된 존재가 아니라 다양한 기능들의 유기적인 앙상블입니다. 그 앙상블 속에서 '나'라는 감각이 떠오른다는 겁니다. 즉, 정신은 신체의 다양한 기능이 얽히며 만들어내는 다중적이고 유동적인 존재인 셈이지요.


『내가 궁금할 땐 뇌과학』에서는 감정의 영역으로 생각하는 사랑이 보상 시스템이라는 신경 네트워크의 산물임을 보여줍니다. 사랑의 감정과 관련된 뇌 회로, 즉 보상 시스템이 약물 중독과도 관련된 뇌 회로입니다. 뇌는 사랑과 마약을 구분하지 않습니다. 사랑하는 사람을 볼 때 도파민이 분비되어 쾌감을 주고, 그 경험이 반복을 유도하는 피드백 루프를 형성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사랑에 빠질 때 이성적 판단을 상실하고, 그 관계에 중독됩니다.


인간의 혐오 감정을 탐구하는 파트도 흥미진진합니다. 타인을 싫어하는 이유 중 하나는 우리 뇌가 미워할 대상을 찾도록 설계되어 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뇌는 생존을 위해 위험한 대상을 회피하도록 진화했습니다. 그러나 현대 사회에서는 그 기능이 타자 배제로 전이되어, 인종차별이나 혐오 표현 같은 형태로 나타납니다. 도덕적 비난을 넘어 혐오의 신경학적 구조를 보여주며 '왜 인간은 편 가르기를 멈출 수 없는가'라는 근본적인 질문을 던집니다.


불편한 진실은 혐오가 실제로는 쾌감을 준다는 것입니다. 공격적인 행동을 할 때 뇌의 복측피개영역이 활성화되는데, 이 부위가 활성화되면 즐거움을 느끼게 하는 호르몬인 도파민이 분비됩니다. 누군가를 배척하고 혐오하는 행위 자체가 뇌에 보상을 주는 구조였던 겁니다. 왜 인류가 역사 전체에 걸쳐 혐오에서 벗어나기 어려웠는지를 설명합니다.


이어서 출구 효과(doorway effect) 실험으로 기억에 대한 이야기가 펼쳐집니다. 뭔가를 찾으며 생각하다가 다른 방에 들어가는 순간, 찾던 대상이 무엇이었는지 완전히 잊어버리는 경험해 보셨나요? 열쇠, 휴대폰, 안경... 방금 전까지 열정적으로 찾던 것들이 뇌의 어딘가에서 증발해버립니다.


이 출구 효과는 인간의 기억이 맥락 의존적임을 보여줍니다. 공간이 바뀌면 뇌는 이전 맥락을 종료하고 새로운 인식 체계를 작동시킨다는 것입니다. 버그인가요? 그런데 잊어버림은 결함이 아니라 효율입니다. 불필요한 정보를 자동으로 지워내는 뇌의 청소 기능은 오히려 창의적 사고의 전제 조건이 됩니다. 저자는 망각의 지혜라 부르며, 인간의 뇌가 완벽한 저장 장치가 아니라 유연한 해석 장치임을 강조합니다.





후반부로 갈수록 질문들은 더욱 철학적입니다. 의식이란 무엇인가? 우리에게는 자유의지가 있는가? 죽으면 어떤 일이 일어나는가? 특히 임사체험은 저자들의 흥미로운 관심사입니다. 임사체험을 초자연적 현상으로 여기지만 저자들은 이것이 뇌의 특정 부위의 기능 장애에서 비롯될 수 있음을 과학적 근거로 설명합니다. 몸을 빠져나가는 듯한 경험, 밝은 빛 속으로 끌려가는 느낌, 이전 삶의 장면들이 스쳐 지나가는 현상 모두 신경학적으로 설명 가능하다는 겁니다.


200여 개의 카툰으로 신경과학을 표현한 장면들이 재미있습니다. 추상적인 개념일수록 구체적인 이미지가 필요합니다. 도파민의 분비 과정이나 뇌 영역 간의 상호작용은 문장으로만 설명하면 모호해지지만, 그림으로 보면 직관적이 됩니다. 과학 커뮤니케이터 엑소쌤이 이 책을 뇌과학 입문서로 추천한 이유도 이 때문입니다.


『내가 궁금할 땐 뇌과학』으로 뇌의 작동 방식을 알면 불확실하게 느껴지던 세상이 선명해집니다. 행복은 외부 조건이 아니라 보상 시스템의 조율 상태이며, 인간다움이란 감정과 이성이 협업하는 뇌의 균형에서 비롯됩니다.


인간은 자신의 본능을 인식하고 그것에 저항할 수 있습니다. 혐오는 우리의 본능이지만, 그 본능을 거부하고 포용을 선택할 수 있습니다. 중독은 우리의 뇌 화학이지만, 그것을 알고 극복하려 노력할 수 있습니다. 자유의지가 환상일지도 모르지만, 우리는 여전히 선택합니다.


이것이 인간다움의 핵심이라고 합니다. 우리가 호모 사피엔스인 이유는 가장 발달된 뇌를 가졌기 때문이 아니라, 자신의 뇌의 명령에 가장 효과적으로 저항할 수 있기 때문일지도 모릅니다. 이 책은 과학적 탐구를 넘어 자신과 타인을 이해하기 위한 윤리적 사유로 확장하도록 돕습니다. 뇌 사용 설명서를 넘어 삶의 이해 설명서로 기능합니다.


과학적 교양과 대중적 유머, 그리고 철학적 통찰이 어우러진 뇌과학 입문서 『내가 궁금할 땐 뇌과학』. 뇌를 탐구하지만 인간을 이야기하고, 과학을 이야기하지만 결국 삶의 의미로 돌아옵니다. 뇌의 구조를 이해하는 동시에 마음의 구조를 재발견하게 합니다. 뇌를 이해하는 순간, 타인이 이해되면서 과학이 곧 공감의 문법으로 작동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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