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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궁금할 땐 뇌과학 - 우리의 행동을 결정하는 뇌에 관한 11가지 흥미로운 질문
호르헤 챔.드웨인 고드윈 지음, 이영래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25년 10월
평점 :

*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았습니다
사랑은 도파민의 장난일까? 자유의지는 환상일까? 호르헤 챔과 드웨인 고드윈의 카툰 뇌과학 수업 『내가 궁금할 땐 뇌과학』. 복잡한 이론을 직관적인 그림과 유머감 가득한 스토리텔링으로 설명하고 있어 유쾌하게 읽은 뇌과학 입문서입니다.
뇌를 인간 이해의 열쇠로 바라보는 두 저자, 로봇공학자이자 베스트셀러 만화가 호르헤 챔과 신경과학자 드웨인 고드윈이 손을 맞잡았습니다. 샌드위치 가게에서 우연히 만난 그들은 한 가지 실험을 시작합니다.
우주에서 가장 복잡한 기관인 뇌를 인류가 만든 가장 단순한 표현 방식인 만화로 설명할 수 있을까? 『내가 궁금할 땐 뇌과학』은 그 실험의 결과물입니다. 샌드위치 가게에서 시작된 이 대화는 사랑, 혐오, 자유의지, 행복, 죽음에 이르기까지 인간의 행동을 결정짓는 11가지 질문으로 확장합니다.

첫 번째 질문 '정신은 어디에 있을까?'는 단순히 신경학적 위치를 찾는 데 그치는 게 아니라 철학적으로도 깊이감이 있습니다. 아리스토텔레스가 심장에 정신이 있다고 생각한 고대인의 관점에서 시작합니다. 흥미롭게도 그 논리를 완전히 무시할 수 없다고 합니다. 실제로 우리는 강한 감정을 느낄 때 가슴이 철렁 내려앉거나 명치가 찌릿거리는 경험을 하잖아요. 이런 신체적 반응을 근거로 심장을 감정의 중심으로 여기는 것은 자연스러운 반응이었습니다.
현대 신경과학은 정신은 뇌의 한 영역에만 위치하지 않는다고 말합니다. 저자들의 표현을 빌리면 "당신은 조금씩 모든 곳에 존재한다"라는 것입니다. 감정이 심장 박동과 연동된 신체 반응과 긴밀히 연결되어 있음을 보여줍니다.
단어를 이해하고 조합하는 뇌 영역이 있고, 세상을 감지하고 몸을 움직이는 영역이 있으며 이들은 모두 나를 구성하는 필수 요소입니다. 나는 하나의 통일된 존재가 아니라 다양한 기능들의 유기적인 앙상블입니다. 그 앙상블 속에서 '나'라는 감각이 떠오른다는 겁니다. 즉, 정신은 신체의 다양한 기능이 얽히며 만들어내는 다중적이고 유동적인 존재인 셈이지요.
『내가 궁금할 땐 뇌과학』에서는 감정의 영역으로 생각하는 사랑이 보상 시스템이라는 신경 네트워크의 산물임을 보여줍니다. 사랑의 감정과 관련된 뇌 회로, 즉 보상 시스템이 약물 중독과도 관련된 뇌 회로입니다. 뇌는 사랑과 마약을 구분하지 않습니다. 사랑하는 사람을 볼 때 도파민이 분비되어 쾌감을 주고, 그 경험이 반복을 유도하는 피드백 루프를 형성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사랑에 빠질 때 이성적 판단을 상실하고, 그 관계에 중독됩니다.
인간의 혐오 감정을 탐구하는 파트도 흥미진진합니다. 타인을 싫어하는 이유 중 하나는 우리 뇌가 미워할 대상을 찾도록 설계되어 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뇌는 생존을 위해 위험한 대상을 회피하도록 진화했습니다. 그러나 현대 사회에서는 그 기능이 타자 배제로 전이되어, 인종차별이나 혐오 표현 같은 형태로 나타납니다. 도덕적 비난을 넘어 혐오의 신경학적 구조를 보여주며 '왜 인간은 편 가르기를 멈출 수 없는가'라는 근본적인 질문을 던집니다.
불편한 진실은 혐오가 실제로는 쾌감을 준다는 것입니다. 공격적인 행동을 할 때 뇌의 복측피개영역이 활성화되는데, 이 부위가 활성화되면 즐거움을 느끼게 하는 호르몬인 도파민이 분비됩니다. 누군가를 배척하고 혐오하는 행위 자체가 뇌에 보상을 주는 구조였던 겁니다. 왜 인류가 역사 전체에 걸쳐 혐오에서 벗어나기 어려웠는지를 설명합니다.
이어서 출구 효과(doorway effect) 실험으로 기억에 대한 이야기가 펼쳐집니다. 뭔가를 찾으며 생각하다가 다른 방에 들어가는 순간, 찾던 대상이 무엇이었는지 완전히 잊어버리는 경험해 보셨나요? 열쇠, 휴대폰, 안경... 방금 전까지 열정적으로 찾던 것들이 뇌의 어딘가에서 증발해버립니다.
이 출구 효과는 인간의 기억이 맥락 의존적임을 보여줍니다. 공간이 바뀌면 뇌는 이전 맥락을 종료하고 새로운 인식 체계를 작동시킨다는 것입니다. 버그인가요? 그런데 잊어버림은 결함이 아니라 효율입니다. 불필요한 정보를 자동으로 지워내는 뇌의 청소 기능은 오히려 창의적 사고의 전제 조건이 됩니다. 저자는 망각의 지혜라 부르며, 인간의 뇌가 완벽한 저장 장치가 아니라 유연한 해석 장치임을 강조합니다.

후반부로 갈수록 질문들은 더욱 철학적입니다. 의식이란 무엇인가? 우리에게는 자유의지가 있는가? 죽으면 어떤 일이 일어나는가? 특히 임사체험은 저자들의 흥미로운 관심사입니다. 임사체험을 초자연적 현상으로 여기지만 저자들은 이것이 뇌의 특정 부위의 기능 장애에서 비롯될 수 있음을 과학적 근거로 설명합니다. 몸을 빠져나가는 듯한 경험, 밝은 빛 속으로 끌려가는 느낌, 이전 삶의 장면들이 스쳐 지나가는 현상 모두 신경학적으로 설명 가능하다는 겁니다.
200여 개의 카툰으로 신경과학을 표현한 장면들이 재미있습니다. 추상적인 개념일수록 구체적인 이미지가 필요합니다. 도파민의 분비 과정이나 뇌 영역 간의 상호작용은 문장으로만 설명하면 모호해지지만, 그림으로 보면 직관적이 됩니다. 과학 커뮤니케이터 엑소쌤이 이 책을 뇌과학 입문서로 추천한 이유도 이 때문입니다.
『내가 궁금할 땐 뇌과학』으로 뇌의 작동 방식을 알면 불확실하게 느껴지던 세상이 선명해집니다. 행복은 외부 조건이 아니라 보상 시스템의 조율 상태이며, 인간다움이란 감정과 이성이 협업하는 뇌의 균형에서 비롯됩니다.
인간은 자신의 본능을 인식하고 그것에 저항할 수 있습니다. 혐오는 우리의 본능이지만, 그 본능을 거부하고 포용을 선택할 수 있습니다. 중독은 우리의 뇌 화학이지만, 그것을 알고 극복하려 노력할 수 있습니다. 자유의지가 환상일지도 모르지만, 우리는 여전히 선택합니다.
이것이 인간다움의 핵심이라고 합니다. 우리가 호모 사피엔스인 이유는 가장 발달된 뇌를 가졌기 때문이 아니라, 자신의 뇌의 명령에 가장 효과적으로 저항할 수 있기 때문일지도 모릅니다. 이 책은 과학적 탐구를 넘어 자신과 타인을 이해하기 위한 윤리적 사유로 확장하도록 돕습니다. 뇌 사용 설명서를 넘어 삶의 이해 설명서로 기능합니다.
과학적 교양과 대중적 유머, 그리고 철학적 통찰이 어우러진 뇌과학 입문서 『내가 궁금할 땐 뇌과학』. 뇌를 탐구하지만 인간을 이야기하고, 과학을 이야기하지만 결국 삶의 의미로 돌아옵니다. 뇌의 구조를 이해하는 동시에 마음의 구조를 재발견하게 합니다. 뇌를 이해하는 순간, 타인이 이해되면서 과학이 곧 공감의 문법으로 작동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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