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여자와 두 냥이의 귀촌일기 - 돈 없이도 행복한 유기농 만화
권경희 지음, 임동순 그림 / 미디어일다 / 2011년 10월
평점 :
절판


 

우연히 책상위에서 노란 표지의 책을 만났다. 아마 아내의 책이겠지 생각하며 잠깐 살펴봤다. 제목은 ‘두 여자와 두 냥이의 귀촌일기’이고, 말풍선 안에 ‘알콩 달콩 깨알 같은’이란 글씨가 들어가 있다. 덩치가 큰 고양이 아래에 ‘돈 없이도 행복한 유기농 만화’란 문구가 또 들어있다. 아, 만화였구나. 그러고 보니 표지가 만화 그림체였다. 주인공이 분명해 보이는 두 여성은 무려 원더우먼의 복장을 하고 곡괭이와 쇠스랑을 들고 밭을 누비고 있다. 날씬한 고양이 한 마리도 역시 원더우먼 복장으로 하늘을 날고 있다.

 

원더우먼은 어렸을 때 AFKN을 통해 가끔 보았던 만화다. 슈퍼맨과 배트맨과 그 외에 민망한 스판 바지를 입은 이름 모를 몇몇 영웅들이 등장하곤 했던 만화. 영어로 된 만화라서 내용은 전혀 몰랐다. 여름 방학 때 몇 주간 외갓집에 머물 때에는 영어를 잘했던 외삼촌이 가끔 내용을 알려주곤 했지만, 동시통역을 한 것도 아니고 대충 돌아가는 내용만 알려준 것으로는 만화를 이해하기는 쉽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국 만화를 본다는 것은 색다른 경험이고 재미였다. 어른이 되어 다시 원더우먼을 만난 것은 ‘원더걸스’라는 그룹의 뮤직비디오를 통해서였다. 저렇게 촌스러운 옷을 입었던 거였구나. 새삼 옛 만화 생각을 해보면서 웃었던 기억이 난다. 뭐든지 척척 해내는 여성이라는 의미로 원더우먼의 이미지를 가져온 것일까? ‘귀촌일기’라는 제목만 봤다면 곧바로 읽을 생각을 하지 못했겠지만, 만화라는 점과 ‘귀촌일기’라는 단어와 전혀 어울리지 않는 발랄하고 유쾌한 그림과 문구들 덕분에 호기심이 동했다. 다른 할 일을 제쳐두고 그 자리에서 책을 펼쳐들었다.

 

아, 이 만화 정말 재밌다! 프롤로그에서부터 몰입을 시작하여 한참 정신없이 빠져들어 읽었다. 문득 휴대폰 문자 알림에 정신을 차리고 보니 어느새 전체 분량의 반 이상을 읽었다. 이쯤에서 그만 읽고 원래 하려던 일을 해야 하는데, 두 원더우먼과 두 고양이의 다음 이야기가 궁금해서 도저히 책을 덮을 수가 없었다. 컴퓨터를 켜고 부팅이 되는 동안 다시 책을 펼쳐들었다가 다시 정신을 차려보니 모니터는 3차원 파이프가 무한 반복으로 뻗어가고 있었다. 책은 이제 거의 다 읽어가고 있었다. 해야 할 일은 지금 하기엔 너무 시간이 많이 지나버렸고, 머릿속도 이미 이 책 내용으로 가득차서 더 이상 집중하기 어려웠다. 에라, 모르겠다. 컴퓨터를 그냥 꺼버리고 읽던 책을 마저 읽었다.

 

마흔 살 권씨는 미대를 졸업하고 유학을 다녀왔다. 농사에 대해서는 책으로 읽은 것이 전부였다. 서른여섯 임씨는 만화를 전공하고 애니메이션 회사에서 일하다가 권씨를 만났다. 두 사람은 귀촌을 작당한 지 한 달 만에 실행에 옮겼다고 한다. 내 주변에 몇 해째 귀농이나 귀촌을 머리나 입으로만 열심히 말하는 사람들이 떠올려지는 대목이다. 물론 그들을 탓할 일이 아님을 잘 안다. 그만큼 쉽지 않은 일을 한 달 만에 결행한 이들 두 사람이 대단한 것이다!(혹은 그만큼 대책 없고 생각 없는 것으로 보일 수도 있겠다.)

 

여자 두 사람이 고양이 두 마리와 시골에서 농사짓고 그림(임씨는 만화) 그리면서 살아가는 것이 결코 쉬운 일이 아닐 거라는 것은 누구라도 예상 할 수 있을 것이다. 어렵고 답답하고 힘든 여정이 그려질 거라는 약간의 편견을 갖고 책을 읽기 시작했다. 그러나 막상 이야기는 유쾌하고 재밌었다. 물론 어렵고 답답하고 안타까운 이야기들이 제법 있었지만 그런 이야기를 담아내는 태도는 단순히 그 어려움을 토로하는 것에 멈추지 않았다. 어렵지만 그것을 극복해나가는 그들의 태도와 방법들은 유쾌하고 따뜻했다. 일관되게 보이는 그들의 삶의 방식에서 배울 점이 많았다. 그들은 돈이 없어도 상관없고, 사람들의 편견어린 시선에도 개의치 않았다. 제일 마지막 장의 제목인 ‘정말 천국에 살고 있는 건 아니지만’에서 알 수 있듯이 이들은 꼭 천국에 살고 있는 건 아니지만 그에 못지않게 잘 살고 있었다.

 

책 마지막에 부록으로 실린 임씨의 잡초 요리 레시피는 재밌었지만, 당장 도시에서는 재료를 구하지 못해 시도해보지 못하는 점이 안타까웠다. 그리고 사진들과 인터뷰를 통해 만화에서 미처 알지 못했던 것들을 되짚어 본 것도 좋았다. 재미도 있고 배울 점도 있었다. 무심코 집어든 책 한 권이 많은 깨달음을 주었다. 귀농이나 귀촌에 관심 있는 분들께는 꼭 추천해야 할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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