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따금 는개비라도 내리면 모란봉 아래 칠성문을 지나 을밀대로 오른뒤 부벽루와 청류정을 거쳐 내려와 다시 대동강변으로 나오기도 했다.

을밀대 옆으로 실뱀처럼 난 오솔길도 어느새 인민들을 위한 체력단련 시설이 들어서면서 넓어지고, 구새먹은 느티나무 아래 진이와 격정적인 사랑의 추억이 서린 그곳은 작은 연못이 만들어져 더이상 예전의 모습을 찾아볼 수 없게 되었다.

솔솔 불어오는 명지바람을 맞으며 대동강변 '진실의 길'을 거낼 때였다.

 

언제나 발랄한 모습이던 그가 시실세실해 보였다.

 

어성버성 마주 서 있다 누가 먼저랄 것 없이 강변 그루터기에 앉았다.

 

최진이가 모두숨을 조용히 내쉬며 여싯여싯 말을 꺼냈다.

 

죽을 날을 이러구러 기다리며 진이와 나 두루 속절없이 불평만 늘어놓아야 하는가. 게다가 들쭉술로 벌그레하게 볼을 물들이며 소그랑장난에 빠질 수밖에 없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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