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개의 새내기 기자들은 리포트 원고를 작성할 때, 첫머리부터 끙끙 앓으며 시간만 보내게 됩니다. 왜 그럴까요? 이유는 여러 가집니다. 취재가 부실해서일 수도 있고, 자신감이 부족해서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무언가 멋진 한 마디로 폼을 잡고 싶다는 '욕심'도 적잖이 작용한다고 생각합니다. 서재나 침실을 아기자기하게 꾸미기 전에 대들보와 기둥을 세우는 골조 공사가 선행돼야 한다는 원칙을 재삼 강조합니다.

1. 인터뷰, 스탠드업을 포함해 취재한 내용을 모두 열거합니다. 취재한 내용을 시간대와 장소에 따라 분류합니다. 이때 인터뷰 육성을 확인하고, 영상 자료실에서 필요한 자료 화면을 확보해 둡니다.

2. 취재한 내용을 논리적 흐름에 따라 재배치합니다(구성). 가능하면 오늘의 화면, 강한 화면을 앞세우고, 육성과 기자의 스탠드업을 강조합니다. 이 작업이 리포트 제작의 핵심이며 가장 어려운 과정입니다.

논리적 재배치가 끝나면 장소나 화면이 일관되는지를 검토합니다. 금기 실내와 옥외, 밤낮이 계속 번갈아 나오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같은 실내라도 무대가 되는 장소를 옮길 경우에는 신중하게 합니다.

장면을 전환할 경우에는 인터뷰라든가 현장음, 음악등 변화의 모티브를 제공해야 합니다. 축구 경기 장면에 이어 선수 인터뷰가 이어진다면, 시청자들은 이 인터뷰의 주인공이 배구 선수라 할지라도 축구 선수라고 착각할 것입니다. 연극에서 장면을 전환할 때 왜 막과 장을 구별하는지를 생각해 볼 일입니다.

3. 논리를 어떤 방식으로 전개할 것인가? 시간적 흐름에 따를 것인지, 공간적 변화를 중심으로 할 것인지, 인물 또는 집단 위주로 나눌 것인지등, 귀납, 연역, 변증등 대학 강의 시간에 익히 들었던 논리 전개의 방법을 논외로 하더라도 리포트를 풀어 나가는 요소는 수없이 많습니다.

편집 과정에서 기사 일부가 잘려 나갈 수 있는 스트레이트와는 달리, 끝까지 방송되기 때문에 다양한 전개 방식을 실험할 수 있다는 것이 리포트의 장점입니다. 데스크의 동의 아래 새로운 방식을 시험할 수도 있습니다. 사소한 듯이 보이는 사실에서 단서를 얻어 후반부에 종합해 결론을 내리거나 의미를 부여하는 귀납형도 시도해 봄 직합니다.

(여기까지를 제작의 1단계-「준비단계」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 국제부 리포트등 사안에 따라서는 취재와 엄밀하게 구별하기 어려운 경우도 생깁니다)

4. 취재 내용의 배치가 끝나면 앵커 멘트를 작성합니다. 앵커 멘트는 스트레이트 기사의 리드를 잘라낸 것이 절대 아닙니다. 굳이 비유하자면 신문의 제목을 문장화한 것이 앵커 멘트에 해당한다고 생각하십시오. 강한 인상, 충격을 줄 수 있는 앵커 멘트를 구상하십시오. 앵커 멘트를 고민하다 보면 기사 쓰는 요령, 리포트 원고를 작성하는 요령이 늘어남을 스스로 확인할 수 있을 것입니다.

5. 기승 전결의 어느 부분에 인터뷰와 스탠드업을 배치할 것인지를 결정합니다. 특히 인터뷰나 스탠드업은 그 리포트의 이른바 요지(야마)에 해당한다는 사실에 유념해야 합니다. 외국어 인터뷰의 경우 번역 자막을 읽을 수 있을 정도의 시간적 여유를 확보해 주어야 합니다. 수치등은 인터뷰나 스탠드업을 통해 소개하지 않는 편이 자연스럽습니다. 다른 수치와의 연관성도 고려해야 하고 자막으로만 처리할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참고 1) 인터뷰는 리포트의 설득력을 높인다는 논리적 효과와 함께 화면에 변화를 준다는 기술적인 효용도 함께 가집니다. 변화라는 방송 특유의 요구가 없다면, 발음이 좋은 앵커나 아나운서가 전체 뉴스를 읽은 후 뉴스를 편집해 내는 방식이 도입됐을 것입니다.

참고 2) 1분 20초 짜리 표준적인 길이의 리포트의 경우 서너 번쯤 인터뷰나 스탠드업, 현장음등으로 변화를 줘야 지루하지 않습니다.(리포트의 표준적인 길이는 점점 짧아지는 경향을 보이고 있습니다. 제가 입사하던 1980년대 말만 해도 1분 30초가 조금 넘는 정도였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1분 20초입니다. 숨돌릴 틈 없는 긴박한 뉴스의 연속이지요.)

6. 현장음이나 음악을 끼워 넣을 장소를 정합니다. 이 작업은 그날 취재한 화면이나 자료 화면을 완전히 파악하지 않고서는 불가능한 일입니다.

♠주의♠ 우리 나라 뉴스에서는 음악을 자주 들을 수 있습니다만, 이것은 바람직하지 않은 일입니다. 뉴스 리포트에서는 현장음으로서의 음악이 아닌 한 음악을 사용하지 않는 것이 원칙입니다. 굳이 음악을 사용해야 한다면 달리 설명하지 않더라도, 시청자들이 리포트 내용과의 연관성을 바로 이해하고 수용할 정도의 공감대가 이미 형성된 것이어야 합니다. (예컨대, 영화 'Killing Field'에서는 존 레넌의 'Imagine'을 삽입곡으로 썼습니다.)

연주회장이나 발레 공연, 행사장처럼 음악이 현장음의 주요 요소인 경우는 별로 문제가 없겠지만, 현장음이 아닌 음악은 자칫 리포트의 긴장을 무너뜨리는 악영향도 있을 수 있음을 각오해야 합니다.

7. 중복되거나 흐름을 깨는 내용을 삭제합니다. 인터뷰나 현장음으로 충분히 의미가 전달된 내용을 기자가 부연할 필요는 별로 없습니다. 때로 앵커 멘트, 스탠드업, 인터뷰등에서 동일한 내용과 표현을 반복하는 수준 이하의 리포트가 보이기도 합니다. 1분 10초 짜리쯤은 눈감고도 또는 발가락으로도 만든다는 식의 호언장담을 자주 듣게 됩니다. 그러나 리포트를 긴장감있게 압축하면 1분을 채우기도 어렵습니다. 기억해 두십시오. 1분 10초가 얼마나 긴 시간인지!

8. 그래픽 화면 원고를 그래픽 작업실에 넘깁니다. 복잡한 수치나 위치, 상관 관계 등을 도표화하면 이해에 큰 도움이 됩니다. 복잡한 기제(mechanism)나 과정을 애니메이션 그래픽으로 처리하면 전달력이 높아질 것입니다. 단조로운 화면을 보완하는 효과도 기대할 수 있습니다. 때로 취재가 늦어질 것으로 예상되면, 내근자에게 리포트의 취지를 설명하고 그래픽 화면 원고를 대신 의뢰할 것을 부탁하는 것도 빠른 제작을 위한 요령중의 하나입니다.

♠주의♠ 과유불급(過猶不及), 그래픽이 너무 많으면 좋지 않습니다. 외국 방송에서는 현장 화면을 중시하고 이른바 신문형 기사를 회피하기 때문에 그래픽 위주의 리포트는 거의 없습니다. 그러나 한국 방송에서는, 문자 세대인 방송사 간부들이 그래픽을 중시하는 경향이 있어 방송 뉴스가 왜곡될 우려도 제기됩니다.

9. 읽기 편하도록 문장을 가다듬고, 시제와 장소, 인명, 수치등을 재확인합니다. 리포트는 '더빙'의 과정이 있기 때문에, 한번 잘못 읽으면 수정이 몹시 어렵습니다. 배정된 시간 안에 여유있게 읽을 수 있는지 시간을 재면서 소리내서 읽어봅니다. 상황에 변화가 올 수 있는 사안-예컨대, 노사 협상이나 여야 협상등-을 리포트 할 경우에는 혹시 진전된 사항은 없는지 이 단계에서 확인해야 합니다.

금기 문장을 덜어낼지언정 절대 급하게 읽지 마십시오. 시간이 부족하다 싶으면, 불요불급한 수식어를 생략해 보고, 정 그래도 시간을 맞출 수 없다면 차라리 한두 문장 덜어 냅니다. 시간이 빠듯하다 해서 급히 읽어 봐야 겨우 3,4초 줄일 뿐 전달력만 훼손될 뿐입니다.

10. 데스크의 교열을 거칩니다. 데스크가 부정확한 사전 정보 때문에 기자의 리포트를 불신하는 경우가 있을 수 있습니다. 물론 자신의 무지를 계급으로 포장하는 무능한 데스크가 없는 것은 아닙니다. 특정한 분야를 깊이있게 공부한 자체가 데스크의 질시를 사는 경우가 없지 않다는 점도 각오해야 합니다. 그러나 대체적으로는 오랜 취재 경험을 가진 데스크의 판단이나 직감이 오보나 편향적인 보도등 대형 사고를 미연에 막아 줍니다. 바람직하기는, 평소의 대화나 공부, 깊이있는 취재로 데스크의 신뢰를 받아 두는 일입니다.

(이상이 제작의 2단계-「집필단계」에 속합니다. 이로써 취재 기자로서의 역할은 끝나고 이제부터는 프로듀서의 역할로 넘어갑니다. 그래픽도 프로듀서의 역할에 속한다)

11. 원고를 녹음합니다. 이때쯤이면 9시 뉴스가 한 시간 남짓 남고, 마음이 급해지기 마련입니다. 그러나 급할수록 느긋하게, 물 한 잔 마신 후 몇 차례 소리내서 읽어 보고 녹음실로 들어섭니다.

♠주의♠ 오독한 경우에는 반드시 처음부터 다시 읽어야 합니다. 녹음실에서 다시 읽기는 쉽지만, 잘못 읽은 부분을 편집실에서 찾아 가며 녹음 테입을 이어 붙이는 작업은 매우 어렵고 짜증나는 작업입니다. 다소 시간이 더 걸리더라도 가능하면 NG없이 매끈하게 읽어 내려 가면 편집도 훨씬 쉬워집니다. 정 시간이 급하면, 인터뷰등으로 reading의 흐름이 끊기는 부분으로 거슬러 올라가서 다시 읽기 시작합니다. 그래야 diction이 튀지 않습니다.

12. 녹음 테입을 편집합니다. 반드시 현장음을 살립니다. 가능하다면 인터뷰는 중간에서 자르지 말고 완결된 문장을 통째로 넣습니다. 한 문장이 너무 길어 부득이하게 잘라야 할 경우에는 화면이나 성조(聲調)가 심하게 튀지 않도록 주의합니다. 화면에 큰 변화가 필요한 경우에는 귀찮지만, dissolve나 wiping 기법을 사용하는 것도 생각할 수 있습니다.

사실 우리나라의 고위 공직자나 지식인들 가운데는 짧은 시간에 조리있게 말하는 훈련이 된 분들이 많지 않습니다. (진정한 전문가라면 시간이 짧으면 짧은대로 길면 긴대로 지식이나 의견을 효과적으로 전달할 텐데....) 장황하게 불필요한 서론을 늘어 놓거나 마침표 없는 문장으로 일관하는 경우도 없지 않습니다. 때문에 인터뷰를 잘라서 써야 할 경우가 많다는 점을 잊지 마십시오.

13. 자막 원고를 편집팀에 넘깁니다. 급한 경우에는 바로 자막 작업팀에 넘기고 편집팀에 통보합니다. 내용 자막을 많이 넣는 것은 밋밋한 화면, 리포트할 사안 아닌 것을 리포트할 때 자주 볼 수 있는 안이한 제작 방식입니다.

14. 편집된 녹음 테입에 화면을 입힙니다. 큰 흐름 위주로 화면을 편집합니다. 나레이션에 구애돼 화면을 너무 잘게 나누면 혼란스럽습니다. 1분 10초 짜리 리포트 하나만 보고 채널을 돌리는 것이 아니라 적어도 30분 이상 뉴스를 계속 보게 될 시청자의 입장에서 뉴스를 제작해야 합니다. 모든 리포트가 잘게 화면을 나누고, 화려하고 복잡한 화면 전환 방식을 취하게 되면 시청자들은 피로하고 짜증이 나게 됩니다.
(제작의 3단계, 일단 이 단계를 넘기면 방송이 가능합니다.)

15. 특수 효과 처리를 합니다. (제 4단계)
- 취재원을 보호해야 할 경우 화면을 픽셀(piccell) 처리하거나, 음성을 변조합니다. 취재원 보호를 위해 인터뷰 단계에서 얼굴의 정면을 잡지 않거나 초점을 흐리게 해서 얼굴을 알아보기 어렵게 하는 주의가 필요할 수도 있습니다.
- 픽셀 처리는 잔인한 장면이나 혐오감을 주는 장면에서도 필요할 수 있습니다.
- 비교 대조하고자 할 경우 스퀴줌(squeezoom) 작업을 합니다.
- 자막이 복잡할 경우에는 ADO작업으로 기본 화면의 크기를 줄이고 자막을 넣을 수 있습니다.
- 암시적 효과를 얻기 위해 double expose, dissolve 등의 기법을 씁니다. double expose 기법은 문자 그대로 한 화면으로 두 가지 이미지를 창출하는 것입니다.
- 장면 전환을 위해 다양한 wiper 기법을 채택할 수 있습니다.

16. 이런 과정을 거쳐 완성된 마스터 테입을 뉴스 진행팀으로 넘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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