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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딴방
신경숙 지음 / 문학동네 / 199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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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춘이다. 말만 들어도 햇빛이 눈부시게 빛나는 화창한 날들이 연상되는 바로 그 청춘... 짧은 치마 밑으로 드러나는 소녀들의 활기찬 살갗처럼 싱그러운 시절. 그러나 언젠가부터는 그 화사함 속에서 아픔이 느껴진다. 화창한 햇살이 너무 눈부셔 갑자기 눈이 에리듯 가슴이 미어지기도 한다. 모든 가능성을 잡을 수 있지만 결국 아무것도 쥐지 못한 배고픈 나이. 무엇이든 꿈꿀 수 있지만 그 꿈이 현실과 대비돼 서글픈 때가 바로 청춘이기에.

흔한 말이다. 젊어 고생은 사서도 한다는 말... 허나 정말 그런가. 고생을 해봐야 성숙해지고 인생을 알 수 있다는 세뇌. 허나 정말 그러냔 말이다. 세상을 향해 분노를 토해내고 싶을 만큼, 악에 받쳐 울분을 쏟아낼 만큼 혹독한 현실이 도를 넘어서면 아직 굳은살이 박이지 않은 어린 것들의 날개는 저항할 힘도 없이 찢어져 버리는 법. 세상의 잔혹함과 비인간성에 작가는 10년 동안 말을 잃었다. 희재언니는... 희재언니는 차마 봉우리도 펴보지 못한 채 그대로 고개를 떨구고 말았다. 얼마나 깊이 성숙해지고 얼마나 많은 것을 알아야 했기에 이들의 청춘은 이리도 힘겨웠을까.

작가는 10년 넘게 가슴 속에 아프게 맺혔던 멍우리들을 한 자 한 자 조심스럽게 내뱉었다. 후루룩 내뱉어 다시, 또다시 과거를 토해내는 불상사를 막기 위해 그녀는 아프지만 천천히 되씹고 되씹었다. 한 글자 한 글자마다 그녀의 깊은 한숨과 아픔이 배어나왔다. 한창 세상의 아름다움에 흠뻑 취해 있을 나이에 미처 흘리지도 못했던 눈물방울들을, 작가는 이제야 소리죽이며 흘려보냈다. 노조니 착취니 청춘을 짓밟고 일어선 우리 경제니 하는 그런 거창한 이야기가 아니었기에, 잔혹한 현실이 서럽고 무서웠다는 신음 섞인 고백이었기에 참 많이도 울었다.

신경숙의 외딴방. 이제는 사라졌을까. 꼭 공장이 아니더라도, 전쟁터 같은 이곳에서 희재언니처럼, 아무런 희망도 없이 박제된 새처럼 현실에 매인 채 또다른 청춘이 어디선가 울고 있을까봐 마음이 아리다. 불안하다. 그 청춘 또한 지나친 삶의 무게로 입을 닫고 홀연히 져버릴까봐... 조금만 더 악을 내주길. 차라리 있는 힘껏 고함이라도 질러주기를. 얼굴도 모르는 그이에게, 마음속으로 간절한, 뜨거운 응원을 보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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