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도 병이고 사랑도 병이다 - 변종모의 먼 길 일 년
변종모 지음 / 달 / 2009년 6월
평점 :
절판


 감수성이 풍부하다, 이만한 여행서가 없다, 향기가 난다, 마음이 보인다, 마음이 아리다, 사진도 멋지다, 등등... 다른 사람들은 칭찬 일색인데, 난 그 정도의 임팩트는 아니었다, 솔직히. 글도 그저 그런 것 같고 사진도 뭐, 가슴을 울리는 대단한 감동은 없었다. 그저 평범한, 수많은 여행서 중의 하나였다.

 

 역시 침대에 누워서 책을 읽으면, 그 책이 아무리 뛰어나다 하더라도 집중력이 떨어진다. 삐뚜르게나마 앉아서 읽었더라면 이 부분도, 이 부분도, 하면서 밑줄을 그어가며 읽었을 책도 침대에 등을 대고 누워 읽기 시작하면 아무리 대단한 명구라도 시시하고 뻔한 문장으로 전락하기 마련이다.

 

 그리고, 이젠 다른 사람이 떠난 여행을 멍하게 바라보는 것만으로 내 안의 갈증이 해소되는 수준은 이미 넘어선 것 같다. 훌훌 털어버리고 훌쩍 떠나는 그들의 뒷모습을 부러워하며 바라보지만 막상 내가 쥔 것들을 차마 놓지 못해 그저 남들이 대신 가 준 여행으로도 만족이 되는 수준은 이미 지나가 버린 것 같다는 말이다. 이젠 진짜 내가 떠나야 숨을 쉴 수 있을 것 같은 지경에 다달아 버렸다. 슬프게도.

 

 그래서, 남들은 작가의 책을 몽땅 구입해서 볼 정도로 매력에 빠지는 이 책에, 나도 스스럼 없이 퐁당 빠지지 못했나 보다.

 

 그리고, 더 솔직히 이야기 하자면. 2년마다 한 번씩 사표를 내고 짐을 싸 전세계를 방방곡곡 돌아다니는 그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 정도로 예민하고 여린 그의 심장이 못마땅했다. 도가 지나친 것 아니야? 라는 비뚤어진 시선과 함께.

 

 "어차피 어디에 소속이 된다는 것 자체가 처음부터 무리였는지 모른다. 한 사람의 마음도 잡지 못한 내가 여러 사람들과의 타협이란 처음부터 지는 게임일 수밖에 없었다."

 

 이런 말을 하는 것 보면 나랑 비슷한데. 아니, 나도 매일 하루하루가 숨막힐 것 같고 매일매일이 우울하고 불행한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선뜻 떠날 용기가 없어 소중한 나의 인생 한 자락, 한 자락을 한숨으로 채우는데 그는 훌훌 털어버리고 전세계를 누비니 나보다 백 배 천 배 만 배 나은데. 왜 그가 싫어? 동경하고 부러워하고 박수를 쳐야 할 텐데?

 

 '남자가' 너무 여리고 예민한 것이 보기 좋지 않아서. 헉, 이 말을 토해내기가, 이런 내 생각을 인정하기가 참 어렵지만 정말 솔직하게 말하자면 그렇다...

 

 이런 모순 덩어리. 평소에는 남녀차별이 어떻고, 페미니즘이 어떻고, 여성에게만 가혹한 차별을 가하는 우리 사회의 패러다임이 어떻고, 입으로는 죽자고 떠들어 대면서, 이 무슨 망언인지... 누구든 예민할 수 있는 것이고, 평소에는 이 세상을 아무렇지 않게, 괴로워하지 않게 살아가는 평범한 사람들을 그렇게 싸잡아 욕했으면서, 어떻게 내가 이럴 수 있지? 슬픈 일이다. 나의 이런 모순이... 그리고 부끄러운 일이다. 입으로만 떠들어 댔던 나의 이론들이...

 

 내가 깨고자 했던 틀들을 정작 내 안에서는 깨지 못했었나 보다. 남성의 역할이나 여성의 역할, 남성의 모습이나 여성의 모습, 남과 여의 미덕, 적절한 매력, 주로 이러이러 해야 한다는 편견들.

 

 혹 작가가 내 글을 보더라도, 이런 말도 안 되는 서평을 읽을 리도 없겠지만, 그래도 혹시 나의 글 때문에, 나는 왜 이 모냥 밖에 안 되나, 아파하지 않아야 한다. 당신이 잘못된 것이 아니라 내가 앞뒤가 안 맞는 사람이기에. 나는 아직 당신보다 어려서 조금 더 수양이 필요하기에. 그저 모자란 인간 하나가 성장하기 위해 혼란스러워 하는구나, 그렇게 넉넉히 보아주기를. 용기가 없어 직장을 때려치지 못하고 그렇다고 마냥 즐겁게 하루하루를 보내지도 못하는 어린 아이가 그저 떼부린 것으로 치부하기를.

 

 언젠가는 나도 좀 더 성장해 누군가를 이해하고 껴안을 수 있는 사람이 될 수 있기를.

 

 


댓글(0) 먼댓글(0) 좋아요(6)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