뒤마가 사랑한 화가 들라크루아 - 별난 화가에게 바치는 별난 그림에세이
카트린 뫼리스 글.그림, 김용채 옮김 / 세미콜론 / 2006년 12월
평점 :
절판


한 달 벌어 한 달 사는 인생은 희망이 없다, 꿈이 없다, 활기가 없다, 열정이 없다, 광기가 없다. 하루 종일 책상 앞에 앉아 컴퓨터 모니터를 바라보라고 지시하는 것은 꽤나 지능적인 고문이다. 조금이라도 튀게 되면 바로 구설수에 오르고, 남들과 조금 다른 면을 보이면 바로 도마 위에 올라 난도질을 당하니 사람들은 자신들의 모습을 자꾸 가면 뒤로 감추고 얼굴빛을 읽히지 않기 위해, 자신의 본심을 들키지 않기 위해 모두 똑같은 연극을 한다. 기뻐도 크게 웃지 않고, 슬퍼도 엉엉 울지 않고, 화가 나도 안 난 척, 분해도 그렇지 않은 척, 그래야 어디서든 모나지 않고 남들 눈에 띄지 않으니. 그러다 보니 점점 얼굴은 회색빛으로 변한다. 자신이 감정을 숨기는 일을 연습하다보니 어느새 자신의 감정이 정말 희미해진다. 하고 싶은 일도, 미친 듯이 몰입해야 할 일도, 이거 아니면 안 되는 일도, 점점 사라져 간다. 그래서, 현대인들은 모두 무기력증에 걸린다.

 

나만 이렇다, 하면 조금 억울한 것 같기도 하고 나만 부정적인 사람인 것처럼 보여지는 것 같고, 그런 게 살짝 걱정되기도 하고, 우리 모두 이렇다며 다른 사람들까지 끌어들여야 안전한 것 같고, 그래서 부러 내 이야기가 아닌양, 현대인들의 문제인양, 그렇게 이야기를 풀어보았다.

 

무기력한 '우리' 현대인들과는 대조적인 한 사람의 인생이 여기에 있다. 들라크루아. 각 구절마다 들라크루아의 불같은 인생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진다.

 

'평소처럼 성당에서 작업을 하면서 한 해를 시작했다. 연하장을 보냈을 뿐, 누구에게도 새해 인사를 가지 않았다. 오늘도 쉬지 않고 작업을 할 생각이다. 오, 행복한 삶! 내 외로움을 하늘이 보상해 주리다!'

 

얼마나 몰입했는지 얼마나 외로웠는지 배고프고 특이하고 독특하고 범상치 않은 예술가의 길이 얼마나 힘들었는지, 상상이 간다.

 

'그는 40여 년을 매일 같이 12~15시간 동안 작업에 몰두했으며 매일의 기도라고 부를 정도로 하루도 빠짐없이 데생을 했다.'

 

나는 매일의 기도라고 부를 무언가가 있는지. 매일 같이 내 시간의 전부를 투자하면서 매달리고 있는 무엇을 갖고 있는지. 내 속에 이거여야만 한다는 뜨거움을 삼키고 있는지.

 

'두둔하기 어려운 결점을 지녔던 만큼 인정하지 않을 수 없는 장점을 지닌 사람, 단순한 재능을 뛰어넘어 천재의 반열에 도달한 별난 화가'

 

자신의 장점과 단점을 타인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고 마음껏 펼쳐냈을 들라크루아. 사람들의 조그만 돌팔매에도 금방 위축되고 마는 나의 모습을 생각하니 부끄럽기도 하고 안쓰럽기도 하고 좀 더 뻔뻔해지자 생각도 든다. 여러가지 감정이 지나가고 지나간다.

 

한 번인 삶인데. 누군가는 들라크루아처럼 들끓는 용암처럼 살고, 누군가는 다 식어빠진 맹물처럼 하루하루를 허비하고.

 

들라크루아처럼 살았던 때도 있었다, 나도. 그 한 가지 목표가 아니면 안 되던 때, 그거 외에는 아무 것도 눈에 보이지 않던 때, 이거 아니면 그만 죽어버리는 게 낫다고 생각했던 때. 내 온 정신과 에너지와 시간과 열정과 마음과 능력과 신념과 정신과 노력을 마음껏 쥐어짜 내가 가진 것 이상을 쏟아내던 때. 그 때가 좋았던가. 힘들었던가. 그 때가 행복했던가. 쓰라렸던가. 그 때로 돌아가고 싶던가, 무기력한 지금이 낫던가. 어느 쪽이 인생을 더 잘 살았다고 말할 수 있던가.

 

너무 큰, 감당할 수 없는 폭발적인 에너지를 한 곳에 쏟아 붓는 것이, 무언가 한 가지에만 매달리고 오로지 그것만을 바라보는 것이 오히려 나를 해치고 나에게 독이 된다, 생각했다. 자연스럽게, 순리를 거스르지 않고 너무 악착같이 하지 말고 힘을 빼자, 생각했었다. 너무 힘을 뺐는지, 이제는 멍, 하니 시간을 보내는 멍청이가 되어 버렸다.

 

미치는 것과 힘을 빼는 것을 적절히 섞는 것이 제일 좋겠지만은, 이런 뻔한 말을 알면서도 잘 하지 못하는 것이 내 성격이라. 뭐든지 하면하고 말면 마는 극단적인 성격이라. 그래서 유연하자 생각을 하지만 결국은 무기력증에 빠지는 나인지라. 힘 조절이 어렵다.

 

차라리 미치는 게 날 것 같다! 이것 저것 생각 안 하고 이꼴 저꼴 따지지 않고 이 말 저 말 귀기울이지 말고, 속이라도 시원하게 질려버리는 게, 아차. 그러다 상처도 많이 받았었었지. 인생을 보다 배웠으니, 이제는 미쳐야 할 때와 물러나야 할 때를 구분할 수 있겠지. 이거,  미쳐버리고 말겠구나 야.

 

* 들라크루아와 메리의 시합


  들라크루아가 그려야 할 주제: 안테우스의 목을 조르는 헤라클레스


  메리가 써야 할 각운: 꽃배추, 다투다, 프롬프터, 루블화, 클레롱, 육지,  현관층계, 달, 소총, 팔꿈치, 진눈깨비, 불평, 연분홍색, 물통, 카드, 어떻    게든, 아르고, 곡마단, 카마르고, 손톱

 

  <메리의 시>
 
  회기 중에 다투지 않는 우리 입법의원들에게 꽃배추를
  대사를 잊어버린 배우에게 멋진 프롬프터를
  러시아에 있는 프랑스인들에게
  돌같이 여기라, 루블화를
 
  빌로즈에게 화성과 클레롱에서 원대복귀를
  선원들에게 육지에서 사는 행복을
  성당에 고딕풍 현관 층계를
  사도 주베에게 달의 우정을

  시민군에게 소총의 포기를
  통속작가에게 팔꿈치를 바칠 쿠션을
  추위도 눈도 진눈깨비도 없는 겨울에게
  잿빛 하늘에서도 불평하지 않는 태양을

  떠돌이 유태인에게 연분홍색 벨벳 의자를
  사막의 아랍인에게 가득 찬 물통을
  운동선수에게 승리의 카드를
  권태로운 사람에게 어떻게든 고통을

  르 베리에에게 아르고 별자리 하나를
  곡마단 벨강호라이이에게 영국 사람 한 명을
  댄서들에게 카마르고의 발을
  공격받는 작가에게 날카로운 손톱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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