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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징검다리—돌 하나(1983년), 돌 둘(1985년)을 놓아

                                                                                                               내 갈 길을 만든다.

                                                                                                 이 길은 어디로 향해 있는가.

                                                                                                                이 길은 외로운가.

                                                                                                                            위험한가.

                                                            내 발목을 거는 세찬 물살, 이제 시가 나의 운명이라고

                                                                                                                        말해야 하나.

                                                             내가 던지는 이 고통스러운 돌이 너무 깊은 데 들어가

                                                                                                 발 디딜 곳이 없지나 않을지.


                                                                                                                    1985년 초여름

                                                                                                                               황지우

 

 

                                             황지우의 두 번째 시집, <겨울-나무로부터 봄-나무에로>의 서문.

 

 

 

이제, 봄이다. 

이 봄에는, 나도 돌 하나 던질 수 있을까.

오래 멀쩡했다. 다시, 시-치통을 앓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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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잃어버린 기억을 찾아서>를 다시 들췄다. 그 책에서 몇 개의 문장을 가져와 여기다 옮겨본다. 몇 개는 그의 문장이고, 몇 개는 그가 인용한 문장이다. 그 문장을 다시 읽으며 그의 고민 속에 나를 담가본다. 얼핏 저 문장들이 나의 것인 양 느껴진다. 물론 나만의 착각이다. 원래는 글줄로 되어 있던 문장을 좀 다르게 옮겨보았다. 음절 하나하나에 쉼표를 찍었다. 천천히 읽어내고 싶은 마음에서였던 것 같다.



  “모,든, 사,람,이, 저, 나,름,의, 귀,중,한, 의,미,와, 목,적,을, 가,지,고, 있,다,고, 믿,는, 사,람,은,  파,시,스,트,가, 될, 수, 없,다.”(38)


  “생,존,에, 필,요,한, 전,쟁,이, 아,니,라, 생,존,의, 확,대,된, 조,건,을, 둘,러,싼, 전,쟁,으,로, 성,  격,이, 변,화,된, 때,부,터,, 다,시, 말,해,서, 전,쟁,이, 거,짓,을, 꾸,며, 대,기, 시,작,하,고, 필,요,한, 거,짓,말,을, 만,들,어, 내,는, 수,단,을, 다,양,하,게, 동,원,하,게, 된, 때,로,부,터, 하,나,의, 전,쟁, 뒤,에,는, 반,드,시, 그, 전,쟁,에, 대,한, ‘기,억,의, 전,쟁,'이, 뒤,따,르,게, 되,었,다.”(100)


  “인,도,주,의, 세,대,는, 인,간,들,, 즉, ‘너,무, 곤,혹,스,러,운, 존,재,’들,을, 사,랑,하,지, 않,는,다. 단,지, 그,들,을, 돌,보,는, 일,을, 사,랑,할, 뿐,이,다.”(130)


  “파,시,즘,은, 흔,히, 이,해,하,듯, 반,이,성,/비,정,상,에, 토,대,한, 사,회,가, 아,니,라, 과,학,적, 이,성,의, 절,대,화,, 배,타,적,인, 정,상,성,의, 기,준,에, 의,한, 비,정,상,적, 인,간,/집,단,의, 극,단,적, 배,제,에, 기,초,한, 사,회,를, 가,리,킨,다.”(158)


  “모,든, 것,이, 끝,났,다. 그,러,나, 사,랑,했,다.”(267)


  “‘우,리, 승,리,할, 수, 있,을,까?’ 아,무,런, 대,답,도, 할, 수, 없,었,다. 그,는, 그,때,, 가,슴,이, 먹,먹,해,지,고, 까,닭, 모,를, 슬,픔,이, 밀,려,와, 앞,에, 선, 동,지,를, 와,락, 끌,어, 안,았,다. 이,제, 그,때, 하,지, 못,했,던, 대,답,을, 1,4,년,이, 지,난, 뒤, 세,번,째, 감,옥,에,서, 한,다. ‘이,기,든, 지,든, 괜,찮,아!’라,고. 바,위,를, 만,나,면, 돌,고, 둔,덕,을, 만,나,면, 넘,으,면,서, 끝,끝,내, 거,대,한, 바,다,에, 이,르,는, 물,의, 운,동,을, 깨,달,은, 뒤,의, 대,답,이,었,다.”(285)



  ‘이기든 지든 괜찮아’. 저 한 마디가 내 가슴을 때린다. 우린 항상 이기는 것에만 관심을 둔다. 나 역시 매일매일 ‘당신’들을 이기려고 안간힘쓴다. ‘당신’들을 이기고 돌아온 날이면, 나의 어깨는 더욱 무거워진다. 세상을 이긴 만큼, 난 조금씩 변해간다. 잃어버리고 있다.

 

  매일매일의 싸움에서 질 수 있기를. 그 싸움의 복판에서, 한없이 지고 말없이 작아질 수 있길. 작아지면서 안으로 커지고 깊어지길. 웅숭깊어지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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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누구에게나 자신의 삶을 수놓는 몇몇 순간들이 있다. 내게도 그런 순간이 도래했었다. 몇 권의 책, 그리고 몇 명의 벗들과 더불어. 지리멸렬한 삶의 언저리에서 해갈의 단비를 내려주었던 책들이 있다. 지금은 비록 지난 시절의 광휘를 잠시 잃고, 책장에 덩그러니(쓸쓸히) 꽂혀 있지만. 그런 책들과 뒹굴며, 나는 내 얄팍한 지성과 허약한 사회 의식을 벼리고 또 벼렸다.

 누군가의 말처럼, 지성이란 기억력의 축적일 수도 있고, 평범과 분리되는 통찰일 수도 있다. 지성이란 이름으로 단순한 기억력의 축적에만 매달리는 이들이 얼마나 많은가? 머릿속엔 수많은 지식을 담고 있지만 밸이 꼬일 대로 꼬인 사람들이 있다. 입으로는 좌파인 양 떠들지만 실제 삶은 지극히 보수적인 사람들이 있다. 하나님의 참된 진리를 부르짖는 크리스천이지만 믿음의 알맹이는 지극히 기복(祈福)적인 사람들이 있다. 겉으론 페미니즘을 떠들지만 속을 들여다보면 여전히 ‘남성중심적인’ 습속에 묻힌 사람들이 있다. 우리는 수많은 ‘겉돎’과 ‘헛돎’의 쳇바퀴를 굴리며 허방 짚곤 한다.

 지성이 평범과 분리되는 통찰이려면, 무엇보다도 성찰이 필요하다. 성찰이 없는 교양과 지성은 아무것도 아닌 것이다. 성찰(reflection)은 밖을 향해 있는 시선을 다시(re) 제 안으로 돌리는(flect) 것이다. 돌아봄이다. 나의 삶을 하나의 전범으로 삼아, 지성의 날을 세워야 한다. 그 날은 타인뿐만 아니라 나를 향해 있어야 한다.

 성찰은 또한 질문이다. 주어진 답에 질문을 던지지 않는 것, 주어진 물음을 다시 묻지 않는 것, 답을 찾는 과정에 의문을 갖지 않는 것, 그것은 죽어 있는 교양이다. 질문을 던져야 한다. 그래야만 답을 찾을 수 있다. 질문이 없는 곳에는 답도 없다. 다시 강조하지만, 지성은 답을 쌓아두는 게 아니다.

 답이 그르다면 질문을 달리하자. 답이 그릇되거나 싫으면 자기가 새로 문제를 만들어 답하면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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