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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버의 '행정의 공개성과 정치 지도자 선출 외'라는 책을 읽었다. 부끄럽게도 한 일주일 정도 걸린 듯. 얇은 책이었는데 왠지 머리에 잘 들어오지 않았다. 번역이 잘못되어가 아니라, 뭐랄까, 이 책이 다루고 있는 행정이란 게 20세기 초 1차 세계대전 당시의 프로이센의 정치적 문제와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기 때문에 '신독일에서의 의회와 정부'라는 원저작의 일부만을 발췌, 번역한 본서로는 맥락이 잘 파악되질 않았다. '프로이센의 관료제는 유사 이래 최강의 조직이나, 이를 견제하고 책임을 질 의회가 성립되지 않으면 독일의 미래는 없다'는 전체적인 주장은 이해했지만... 아무튼 감이 잘 잡히지 않았다. 예전에 '프로테스탄티즘 윤리와 자본주의 정신'은 이 정도는 아니었는데.

어쨌든 다음에 읽어보면 좀 더 잘 이해할 수 있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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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uote of the day

"... 다른 한편 조직화된 '대중', 즉 길거리 민주주의는 정치적으로 완전히 비합리적이다. 길거리 민주주의는 의회가 권력을 상실했거나 정치적으로 불신을 받는 국가에서 가장 득세하며, 또한 특히 정당이 합리적으로 조직되어 있지 않는 국가에서 맹위를 떨친다."(p. 115)

남의 나라 얘기가 아닌데? -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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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의 도둑
클라이브 바커 지음, 소서영 옮김 / 황금가지 / 200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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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5년 Grand Prix de l'Imaginaire Jeunesse 수상 (aka 'le Voleur d'éternité' in French edition)

이제 열 살 먹은 Harvey는 만사가 귀찮고 따분하기만 하다. 그런데 어느 날 갑자기 Rictus라는 사람이 Harvey의 방에 마술처럼 나타나 자신이 멋진 곳, 매일 낮에는 태양이 따사로이 빛나고 매일 밤에는 섬뜩한 신비로움으로 가득 찬 the Holiday House로 데려다 주겠다고 제안한다. 처음에는 망설이던 Harvey도 계속되는 Rictus의 유혹에 넘어가, 엄마에게도 아무 말 없이 Rictus를 따라 집을 나선다.

그렇게 Rictus의 손에 이끌려 the Holiday House에 온 Harvey. 아침은 따스한 봄으로 시작해서 후덥지근한 여름인 점심을 지나 온종일 뛰어놀다 보면 저녁 먹기 전에 가을잎이 떨어지고 어느새 할로윈의 저녁이 찾아온 뒤 자정에 크리스마스 선물을 받으면 하루가 지나간다. 이렇게 신선놀음을 즐기던 Harvey는 어느 날 the Holiday House와 그 주인인 Mr. Hood의 무서운 비밀을 알게 되고, the Holiday House에서 보낸 시간에 대해 자신이 치뤄야 할 대가가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The Thief of Always'는 바커가 처음으로 쓴 young adult fantasy로, 에로티시즘과 적나라한 잔혹함으로 덧칠된 이전의 비블로그래피를 돌이켜 보면 상당히 이례적인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한편 화기이기도 한 바커는 이 소설 안에서 사용된 30여 점이 넘는 삽화를 직접 그리기도 했다.

일단 소설을 처음 읽고 나면, 시간을 훔처가는 존재라는 모티프에서 많은 독자들이 미카엘 엔데의 '모모Momo'와 유사하다는 느낌을 받았을 것이다. 그러나 '모모'에서 엔데가 시간과 대립쌍을 이루는 것으로 제시하는 것이 금전으로 환산 가능한 현대적 효율성인데 반해, 바커가 'The Thief of Always'에서 다루고자 하는 것은 시간, 그리고 시간과 길항(拮抗)적 관계로 결부된 생명vitality의 문제라는 점에서 두 작품은 확연히 다르다. 이 점이 보다 분명하게 드러나는 부분이 바로 소설의 20장인 'The Thieves Meet'이다.

잃어버린 시간을 되찾기 위해 the Holiday House로 돌아온 Harvey는 다락방에서 드디어 Hood와 조우하게 되는데, 이때 Hood는 이곳에 머물렀던 아이들로부터 빼앗은 시간을 조그마한 공처럼 만들어 한창 빨아들이고 있는 중이다. 이 장면에서의 Hood는 흡사 에스파냐의 화가 고야의 작품인 '아이를 잡아먹는 사투르누스'의 모습을 방불케 하는데, 재미있는 건 로마 신화의 사투르누스가 그리스 신화에서 크로노스(시간)와 동일한 속성을 지닌 신이라는 사실이다. 다시 말하자면, Harvey가 맞서 싸워야 하는 대상은 모든 것을 낳는 동시에 자신이 낳은 것들을 무(無)로 되돌리는 시간 그 자체인 것이다. Hood는 Harvey의 영혼도 손에 넣기 위해 Harvey를 회유하면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Now I understand," He said.
"Understand what?"
"Why it is you came back."
Harvey began to say: I came for what you took, but Hood was correcting him before he'd uttered two words.
"You came because you knew you'd find a home here," Hood said. "We're both thieves, Harvey Swick. I take time, you take lives. But in the end we're the same: Both Thieves of Always."

우리들 인간은 모두 각자의 분량만큼 시간을 지니고 태어나며, 그 시간을 생명으로 바꾸면서 살아간다. 따라서 우리가 가진 시간은 갈수록 줄어들고, 대신 생명은 그 시간이 다할 때까지 이어진다. 이것은 어떻게 보면 시간을 팔고 생명을 사는 불가역적인 거래인 셈이다. 이 거래의 천칭에서 Hood와 Harvey는 대척점에 놓여 있으며, 둘은 양립할 수 없는 관계로 끝없이 투쟁한다. 이런 이유에서 Hood는 Harvey 역시 자신의 동류이며 일종의 뱀파이어라고 말한 것이다.

"So I'll end up feeding on children, like you?" Harvey said. "No thanks."
"I think you'd like it, Harvey Swick," Hood said. "You've hot a streak of the vampire in you already."
There was no denying this. The very word vampire reminded him of his Halloween flight; of soaring against a harvest moon with his eyes burning red and his teeth sharp as razors.

실제로 앞부분에서 Harvey는 할로윈의 밤에 Hood의 종복 가운데 하나인 Marr의 도움을 받아 뱀파이어로 변신하는데, 아주 잠깐이나마 자신의 본능에 따라 친구 Wendell의 피를 마시고 싶다는 충동을 느낀다. 여기서 뱀파이어로의 변신은 Harvey의 내면에 잠재되어 있는 삶의 본질적인 조건, 살아남기 위해서는 끊임 없이 다른 생명들을 대신 희생시켜야만 한다는 평범하면서도 무자비한 진리를 상기시킨다. 이처럼 바커의 작품 속에서 빈번하게 나타나는 변신transformation이라는 모티프는 등장인물들로 하여금 자신의 존재와 이를 둘러싼 세계의 본질에 대한 새로운 인식의 계기를 제공함으로써 반대로 이를 극복할 수 있는 힘을 부여한다. Harvey가 Hood의 네 번째 종복인 Carna를 어떻게 물리치는지 보라.

지금까지 살펴본 바와 같이, 'The Thief of Always'는 '모모'에 비해 작품 전체의 구도라는 면에서는 보다 중층적이고 복잡하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지나치게 작위적으로 작품의 엔트로피를 끌어올리려는 결말 처리에서는 많은 아쉬움이 남는다. 그냥 깔끔하게 끝내는 것도 괜찮았을 듯 한데.

이제부터는 한국어판에 대해서 몇 마디 하겠다. 첫째, 제목인 'The Thief of Alwasy'는 앞서 언급한 대로 '시간의 도둑'인 Hood 뿐만 아니라 '생명력의 도둑'인 Harvey를 동시에 의미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러나 역자는 제목을 전자에 한정시켜 번역함으로써, 원제의 중의적 의미를 탈색시켰다. 'Always의 도둑', 다시 말해 '언제나 훔치는 자들' 쪽이 (좀 어색할런지는 몰라도) 의미상으로는 더 정확하다고 본다.

둘째, 왜 하필이면 이 책을 기획, 번역했는지가 의문이다. 읽어본 사람들은 알겠지만, 이 책은 분량도 얼마 안 되고 어휘나 표현도 아주 쉽기 때문에 원서 처음 접하는 사람들도 큰 무리 없이 금새 읽을 수 있다. 게다가 작가의 전집을 번역할 것이 아닌 이상은 소개할 수 있는 작품은 한정되어 있기 때문에 작가의 대표작이라고 할 수 있는 작품들을 먼저 번역하는 것이 당연한 순서일 터, 그렇다면 바커의 장편 중에서 가장 뛰어나다고 하는 'The Damnation Game'이 먼저 번역되었어야 했다.

PS. 제일 왼쪽의 표지는 바커가 직접 그린 Harpercollins의 하드커버 판으로, 앞뒤표지를 완전히 펼치면 the Holiday House의 사계절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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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adelman’s God' - 1986년 World Fantasy Award Best Novella 수상

작가 T. E. D. Klein은 1947년 뉴욕 태생으로, 전업 작가가 아니라 잡지 ‘Twilight Zone’의 편집장으로 일했다. 그러면서 그는 틈틈히 자신의 단편과 시, 논픽션을 잡지에 기고했는데, 1984년 발표한 첫 번째 장편 ‘The Ceremonies’가 상업적/비평적 대성공(뉴욕 타임즈 베스트셀러 선정, 1986년 British Fantasy Award Best Novel 수상)을 거두게 되었다. 본서 ‘Dark Gods’는 ‘The Ceremonies’의 이런 여세에 힘입어, 이전에 발표한 세 중편 ‘Children of the Kingdom’, ‘Petey’, 그리고 ‘Black Man with a Horn’을 약간 교정하고 여기에 새로 집필한 중편 ‘Nadelman’s God’을 추가하여 발표한 중편집으로, 1985년에 바이킹 출판사, 1986년에 밴텀 출판사에서 두 번 출판되었다. 그러면 각 중편의 줄거리를 하나씩 살펴보겠다.

1. Children of the Kingdom

‘나’는 의사의 권고에 따라 할아버지를 파크 웨스트 양로원에 보낸다. 처음에는 못마땅해 하던 할아버지도 시간이 흘러 양로원 생활에 익숙해지고 친구도 여럿 사귀게 되자 꽤 만족한 것 같다. 할아버지를 찾아간 ‘나’는 할아버지의 친구 가운데 한 사람인 피스타치오 신부라는 사람을 만나게 되고, ‘나’는 그가 집필하고 있다는 인류의 기원에 관한 책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누다가 벨리코프스키나 본 대니켄 뺨칠 정도로 희한한 가설을 듣게 된다. 인류가 아프리카가 아니라 코스타 리카에서 유래했고, 그 인류는 신으로부터 세 번 저주를 받아 이 세상에서 모습을 감추었다는 것이다. 그러던 어느 날, 양로원의 할아버지 방을 페인트칠하고 있던 아내 캐런의 부탁으로 작업복을 가지러 지하실에 내려간 ‘나’는 건조기 뒤쪽의 바닥의 구멍 너머 지하에 거대한 수로가 흐르고 있는 것을 알게 된다.

2. Petey

코네티컷의 시골에 있는 한적한 저택을 구입한 조지와 필리스 부부는 친구들을 불러 집들이 파티를 연다. 친구들이 하나씩 도착하면서 파티 분위기는 무르익어가고, 그들은 주인 부부가 이 집을 거의 거저나 다름 없는 가격에 사들였다는 사실에 감탄하면서도 뒤에서는 그들이 정신병자였던 이전 주인을 병원에 집어넣고 이 집을 차지한 일에 관하여 쑥덕거린다. 그러다가 친구들 가운데 한 명이 다락방에 있던 타로 카드 한 세트를 찾아내서, 그들은 자신들의 미래를 점쳐보기로 한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 타로 세트에는 ‘사탄’ 카드가 없고 대신에 거대한 짐승의 뒷모습을 그린, 이상한 카드가 하나 들어 있다. 한편, 같은 시간 어느 정신병원에서는 한 환자가 발가락 신호로 무엇인가를 필사적으로 전하려 하고…

3. Black Man with a Horn

‘나’는 러브크래프트적인 소설을 쓰는 작가로, 영국에서 컨벤션을 마치고 미국으로 돌아가는 비행기 안에서 어떤 이상한 사람과 만나게 된다. 자신이 이름을 모티머라고 소개한 그는 얼마 전까지 말레이시아에서 선교활동을 했었지만 지금은 다 그만두고 돌아가는 길이라고 하는데, 무언가에게 쫓기는 사람처럼 불안하고 초조해 보인다. 그는 그곳에서 ‘쵸차’라고 하는 원주민들과 접하면서 무시무시한 일을 겪었다고 하나, 무슨 일이 있었는지를 속 시원하게 털어놓으려고 하지를 않는다. '나'는 엉겁결에 마이애미에 사는 여동생의 주소를 그에게 알려주고서 헤어진다. 그러고 나서 며칠 뒤, ‘나’는 신문에서 모티머 목사가 실종되었다는 기사를 보게 된다.

4. Nadelman’s God

네이들먼은 음반 기획자로 일하는 친구로부터 한때 반(反) 기독교적인 사상을 가지고 있던 젊은 시절 쓴 불경스러운 시를 자신이 기획한 헤비메틀 밴드의 가사로 쓰게 해 달라는 요청에 별 생각 없이 동의한다. 그러고 나서 얼마 뒤 그는 헌툰이라는 사람에게서 편지를 받는다. 헌툰은 자신이 네이들먼의 가사에 나오는 대로 쓰레기를 모아 신의 형상을 만들었다면서 그 사진을 보내온 것이다. 처음에 네이들먼은 헌툰을 그저 헤비메틀에 미친 녀석으로 생각하지만 편지가 계속 날아오면서 그 내용은 기괴하게 변해간다. 헌툰은 자신이 그 신과 영적인 소통을 하는 데 성공했다고 주장한 것이다. 그리고 그의 말에 따르면 그 신이 네이들먼을 알고 있다고 했다는데…

PS. 커버는 두 번째 중편 'Petey'와 연관있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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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왜 기독교인이 아닌가
버트란드 러셀 지음 / 사회평론 / 200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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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트런드 러셀은 1927년 3월 6일 전국 비종교인협회 런던 남부지부의 후원하에 베터시 시청에서 '나는 왜 기독교인이 아닌가'라는 제목으로 강연을 했다. 이 강연은 그 내용의 대담성과 러셀의 탁월한 언변에 힘입어 널리 알려지게 되었으며, 30년이 흐른 뒤에 여러 곳에 게재되었던 다른 에세이들과 함께 하나의 책으로 묶여 출판되었는데, 그것이 바로 본서인 '나는 왜 기독교인이 아닌가'이다. 이 책에서 러셀은 교육이나 성(性)과 같은 여러 가지 주제들을 함께 다루고 있으나, 처음부터 끝까지 일관되게 다루고 있는 것은 종교(특히 기독교)의 문제이다.

종교에 대한 러셀의 비판은 크게 두 가지 논점으로 이루어져 있다. 하나는 진실성의 문제인데, 합리주의적 관점에서 보았을 때 이들 종교의 각종 주장들을 입증할 수 있는 과학적, 논리적인 증명이 부재한다는 점이다. 그는 스콜라 철학자들이 아리스토텔레스로부터 인용해서 기독교를 변증하는 데 사용한 제일원인론, 자연법칙론, 목적론, 도덕론 등의 논리를 합리주의의 입장에서 조목조목 비판하고 있다.

다른 하나는 유용성의 문제, 즉, '종교가 문명에 무엇을 공헌하였는가'하는 것인데, 러셀은 종교가 인류와 문명을 위해 공헌한 것이 거의 없다는 결론을 내린다. 이는 종교란 것이 본질적으로 아득한 옛날 한 번 계시된 불변의 진리를 보존하고 전파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기 때문에, 자연스레 보수적인 성격을 띠게 되고 반동적인 세속권력과 쉽게 결탁하여 세계의 진보를 가로막는 데서 비롯된다고 그는 진단한다. 특히 이 과정에서 종교가 인간의 두려움, 특히 영원한 심판에 관한 두려움을 이용하고 있다고 강한 어조로 비판하고 있다.

이러한 러셀의 철학적 논지는 책의 말미에 실린, BBC 방송의 대담 프로그램에서 예수회 신부이자 철학자인 F. C. 코플스턴과 주고받은 논쟁에서 더욱 구체적으로 나타나 있다. 러셀은 제 1 원인을 신이라는 존재에게 돌려야 할 필연이 없으며, 철학에서 합리성이 가장 중요한 사유의 도구가 되어야 함을 강조하고 있는 등 두 사람의 논지는 근본적인 전제에서부터 어긋나고 있기 때문에 논의가 진전될 여지를 보이지 않은 채 끝까지 이견을 좁힐 수가 없어서 조금 아쉽다는 느낌이 든다.

어쨌거나 이 책에서 러셀의 글은 대단히 냉철한 이성과 판단력에 기초하면서도 신랄하면서 열정적인 맛을 잃지 않는데, 이는 저자 자신이 보수적인 정치세력 및 종교계와 오랜 기간동안 싸워왔던 데서 나온 것으로 보인다. 르네상스기의 Christian Humanist와 비슷한 견해를 지닌 나는(필자는 크리스천이다) 러셀이 종교에 대해 제기한 진실성의 문제는 전적으로 동의할 수 없었지만, 유용성의 문제는 시사하는 바가 많았다. 이 책은 원래 무신론자와 불가지론자들을 위하여 쓰여진 것이기는 하지만, 한 번도 믿음에 관하여 깊이 있는 회의를 해 본 적 없이 조건반사적으로 교회를 다닌 크리스천들도 꼭 읽어보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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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적 1
스티븐 킹 지음 / 밝은세상 / 199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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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햄프셔의 해안에 위치한 알함브라 모텔 앞에서 한 소년이 청바지 주머니에 양손을 찔러넣은 채 잔뜩 찌푸린 하늘 아래 물결치는 바다를 응시하고 있다. 키는 열 두 살 치고는 조금 큰 편인데, 다갈색 머리카락이 소년의 하얀 이마를 쓸어올리고 있다. 소년의 이름은 Jack Sawyer. 저명한 사업가였던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어머니는 동업자였던 Morgan Sloat를 피해 이곳으로 도망쳐 왔다. 그러나 사업의 지분을 넘기라는 Sloat의 압박은 계속되고, 암까지 어머니의 건강을 조금씩 좀먹어 간다.

그러다 어느날 '우연히' 만난 근처 놀이공원의 관리인 Speedy Parker로부터 다른 세계의 존재에 관한 비밀을 알게 된다. 그 세계의 이름은 테러토리- 현실 세계의 분신자twinner들이 사는 곳. 어머니의 분신자인 테러토리의 DeLoessian 여왕은 몸져 누웠고, 반역자 Morgan of Orris는 이 틈을 타 테러토리를 지배하려는 야심을 품고 있다. 테러토리는 현실세계와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어, 여왕이 건강을 되찾으면 어머니도 암으로부터 나을 수 있을 텐데, 이를 위해서는 '부적'이 필요하다. 이제 잭은 서부 해안의 어딘가에 있다는 '부적'을 찾아 미대륙을 횡단하는 모험을 떠나게 된다.

킹과 스트로브는 중간계에 완전히 반해 있었나 보다. 이 작품은 '반지의 제왕The Lord of the Rings' 중 네 호빗의 동부대로 여행 부분에서 깊이 감명받은 두 사람이 쓴 일종의 오마쥬에 가까운데, 반지를 파괴하기 위해 동쪽으로 떠나는 여행은 부적을 얻기 위해 서쪽으로 향하는 여행으로 전도되어 나타나고 있다. 특히 올드 포레스트에서 호빗들이 겪은 일처럼 테러토리의 나무가 Jack을 잡아먹으려 하는 부분에서 Jack이 그들을 엔트와 비교하며 "톨킨의 소설에도 이런 것은 쓰여 있지 않았다"라고 생각하는 대목은 그 좋은 예라 할 수 있다. 이외에도 '반지의 제왕'은 작품 가운데서 의식적으로 수 차례나 인용되고 있다.

그러나 킹과 스트로브는 하이 팬터지의 클리셰를 단순하게 되풀이하는 것을 거부하고 이야기를 좀 더 현실과 밀접한 것으로 바꾸어 놓는다. Jack은 처음에는 Wolf 그리고 나중에는 죽마고우 Richard와 함께 서쪽으로 나아가는 길에서 미국 사회의 근저에 깔린 근본주의적 종교의 위험성과 자본주의의 탐욕스러움, 핵실험의 피해(테러토리의 서부지역이 초토화 된 것은 미국의 사막지대에서 실시했던 핵실험의 결과일거라고 Jack은 추측하고 있다) 등을 목도하게 되는데, 이는 마크 트웨인의 작품 '허클베리 핀의 모험'의 주인공 허크가 짐과 함께 미시시피 강을 따라가며 노예 제도를 비롯한 당시 미국 사회의 어두운 측면을 엿보는 과정과도 상응한다. 주인공의 이름이 Jack 'Sawyer'인 것도, 프롤로그와 에필로그를 각각 '허클베리 핀의 모험'과 '톰 소여의 모험'에서 인용한 제사(題辭)로 대신한 것도 바로 이런 이유에서라고 볼 수 있고, 이 작품이 '허클베리 핀의 모험' 발표 100주년이 되는 1984년에 출판 되었다는 점도 무관하다고 할 수 없다. 다시 말해 잭은 이름 뿐만 아니라 여러 모로 마크 트웨인의 소설 속에 나오는 주인공들과 닮아 있는 셈이다.

결론적으로, 이 작품은 성장소설Bildungsroman로서 팬터지의 영원한 테마 가운데 하나인 성숙의 문제를 다루는 한편, 마크 트웨인의 작품에 등장할 법한 인물들로 하여금 톨킨 식 퀘스트를 수행하게 함으로써 동시대의 정치적/사회적 이슈에도 민감하게 반응하고 있으며, 이 과정에서 미국문학의 전통을 거슬러 올라가는 자의식적인 모습도 보여주고 있다고 할 수 있다.

... 아 참. 그리고 소년들의 이야기는 여기서 끝났지만, 이들이 어른이 된 후의 이야기가 궁금하다면 이 책을 읽어보길 바란다- Stephen King & Peter Straub, 'Black Hous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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