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23 캐치월드 / 크리스 보이스
"서기 2015년, 목성 궤도에서 발견된 결정 생명체 크리스탈로이드는 접촉과 동시에 지구를 맹공격했고, 인류는 궤멸에 가까운 피해를 입는다. 그로부터 40년 후, 인류의 과학력을 총동원해 건조된 강력한 보복 함대가 알테어 항성계로 파견되지만...... 하드 SF, 초심리학, 오컬트, 디스토피아 소설, 시간 SF의 영역을 자유자재로 넘나들며 숨쉴 틈 없이 빠른 템포와 현란한 아이디어의 홍수로 독자를 매료하는 와이드스크린 바로크 SF. 영국 골란츠 사 SF 콘테스트 최우수 장편."

독서실에서 공부하면서 조금씩 읽고 있었는데, 이번에 예비군 훈련 입소한 김에 부대 내에서 다 읽었다. 원래 예정대로였다면 지금쯤은 시커먼 뒷표지에다 크리스 보이스의 잘 나온 증명사진에 위와 같은 화려한(?) 수사를 달고 우리들의 책장에 나란히 꽂혀 있어야 할 책이다. 23권 예정작이었다면 그리폰북스가 조금만 더 지속되었으면 볼 수 있었을 텐데, 그러지 못한 게 참 아쉽다.

이 소설을 읽고 처음 받은 인상을 정리하자면... 그냥 스타트렉의 공포소설 버전이라고 하면 좀 뭣하고...

스타트렉 + 시스템 쇼크 2 + 매트릭스 + 엑소시스트(?) = 캐치월드

쯤 된다. 지금까지 읽었던 SF 중에서는 제일 독특한 것 가운데 하나가 아닌가 싶다. 정신나간 인공지능 컴퓨터에 의해 장악된 우주선과 외계의 초월적 지성체와의 조우라는 모티프 자체는 아서 C. 클라크 식의 하-드 SF에서 흔히 사용되는 것이지만, 여기서 문제해결을 위해 동원되는 것이 과학적 지식이 아니라 오컬트(!)와 흑마술(!!), 악마학(!!!)이라는 점이 이채로웠다. 위에서 엑소시스트 얘기를 했는데, 파주주도 나온다 -_-;

그런데 200페이지 정도까지는 어렵잖게 이야기를 따라갈 수 있었는데, 그 뒤부터는 대단히 난해해져서 줄거리를 제대로 이해할 수가 없었다. 왜 맥길버리가 Altair III의 지성체를 the Shebeen이라고 이름붙였는지, 크리스털로이드들이 the Crow의 조종을 받고 the Shebeen을 공격한거랑 인류가 이 싸움에 끼어들어야 하는 거랑 무슨 연관인지, the Shebeen과 the Crow가 Dream Lord라는데 그게 무엇인지... 알쏭달쏭했다. 아무래도 다음에 한 번 더 읽어봐야 할 듯. 이 책 읽으면서 SF가 쉽지 않다는 걸 다시 실감했다. OTL

PS. 유코쿠 호에 탑재되어 있는 수퍼컴퓨터 MI는 Machine Intelligence의 약어이다. 그런데 선장 타무라는 MI를 비아냥거리기 위해 Machine Idiot이라고 부른다. 일종의 간단한 acronym인 셈인데, 그래서 번역할 때 Machine Intelligence를 '인공지능'이라고 하고 Machine Idiot을 '인공저능'이라고 하면 그럴 듯 할 것 같다는 생각이 잠깐 들었다. 어감이 좀 이상한가?

PS 2. 중간에 mag field라는 말이 나오는데, 난 처음에 이게 무슨 말인지 이해를 못해서 한참 헤맸다. mag이 magazine(탄창, 그래도 잡지라고 생각하지는 않았다고!)의 약어가 아니라 magnetic(자기)의 약어, 고로 mag field는 자기장이었던 것이다. OTL 예전에는 이런 걸 느껴본 적이 없었는데, 확실히 SF를 읽을 때는 주류 소설을 읽을 때와 비교해서 인식의 틀 자체가 변화되는 게 있기는 있는 것 같았다. 영어공부를 좀 더 열심히 해야 한다는 결론에 도달하는 게 좀 더 알맞은 해석일지도 모르지만... ^_^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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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둠의 경로를 통해 구한 'Carrion Comfort'의 단편 버전을 읽었다. 1982년에 나왔으니까 진짜 초기 작품인 셈이다.

이 작품은 흡혈귀에 관한 이야기이다. 아니, 정확하게 말하자면 피를 빨아먹는 흡혈귀가 아니라 인간의 정신을 흡수하는 'mind-vampire'에 관한 이야기이다. 이들은 인간에게 감응한 다음 그들의 정신을 흡수해서 자신들의 젊음을 유지할 뿐만 아니라 인간을 기계처럼 조종하기도 한다(작중의 흡혈귀들은 그들 나름대로 이런 능력을 통한 인간 사냥을 'the Feeding', 'the Hunt' 등으로 표현하고 있다).

전반부는 정말 오래간만에 Willi와 Nina가 Melanie의 집에 모여서 만담을 나누는 것으로 시작한다. 넌 몇 명 잡아먹었느니, 내가 이겼느니 하는 둥... 그러다가 Melanie가 갑자기 the Game을 그만두겠다고 폭탄 선언(?)을 한다. 여기까지는 솔직히 좀 지루해서 도중에 때려치우고 싶다는 생각이 굴뚝 같았지만, 꾹 참고 계속 읽었다. 그런데 Willi가 돌아가는 길에 원인을 알 수 없는 비행기 사고로 죽고 Melanie에게도 그녀의 목숨을 노리는 마수가 뻗어오기 시작한다. 누가, 왜 이런 일을 꾸몄을까? 단지 the Game을 그만두었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이 대목에 들어서면서부터 재밌어졌다. Melanie가 살아남으려고 발버둥치는 과정에서 이들에게 조종당하는 애꿎은 인간들만 잔인하게 죽어나가기 때문에, 지루한 초반과는 달리 후반에는 유혈이 낭자하는 장면들이 많이 나오기 때문이다. 그리고 전반적으로 mind-vampire들의 성격이 굉장히 냉혹하게 묘사되어 있어서 꽤 그럴 듯했다. 하드보일드 소설의 주인공 같다는 생각이 들 정도. 영생의 무게에 지쳐버린 흡혈귀를 묘사하는 건 앤 라이스도 괜찮긴 하지만, 이쪽이 더 실감난다.

댄 시몬즈는 후일 이 단편을 fix-up해서 장편으로 출간했다. 제목은 그대로 'Carrion Comfort'인데, 분량이 물경 896페이지!! 시놉시스를 대강 읽어보니 단편 버전에 이들 mind-vampire를 추적하는 대적자들을 집어넣고 여기에다 2차 세계대전, 나치 등등의 역사소설적 내용을 입힌 것 같은데... 재미있을런지 확신이 안 선다. 설마 만담 부분도 왕창 늘어난 건 아니겠지? ^_^;;

그건 그렇고, 'Song of Kali' 이후에는 공포소설이 재미가 없다. 걸작의 후폭풍이라고나 할까... 앞으로는 지금까지 사 놓은 거랑 어둠의 경로로 구한 거 빼고는 당분간 공포소설은 제껴놓을 생각이다. 앞으로는 SF를 다시 읽어봐야지. 지금은 크리스 보이스의 'Catchworld'를 읽고 있는데, 꽤 재미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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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시 바빠서 일기를 좀 늦게 쓴다. 제이님께서 24일에 서울로 돌아가신다고 그러시길래, 잠시 뵙자고 문자드렸다. 그래서 서면에서 뵙고 동보서적에 같이 들어가 '노래하는 새들도 지금은 사라지고'를 제이님께서 보시는 앞에서 한 권 샀다. 처음에 책이 안 보여서 직원에게 어디 있냐고 물어보았는데, 직원이 책 제목이 뭐냐고 묻는 말에 갑자기 제목이 생각이 안 났다(제목이 길어서-_-). 다행히 제이님은 멀찍이 떨어진 곳에서 책 구경을 하고 계셨다(휴우~).

그런 다음 근처의 스타벅스에 들어가서 아기다리고기다리던 사인을 받았다. 처음에는 사인 안 해주실려고 그러셨는데, 막 졸라서 간신히 사인을 받았다. (제이님 미안~^_^) 이런저런 얘기를 하다가 제이님 기차 시간 늦지 않도록 일찍 일어났다. 장난친다고 방향치인 제이님께 지하철역 가는 길을 반대로 가르쳐 드렸더니 그대로 믿고 그쪽으로 가시려고 했다. 순진하시기도 하지...ㅋ 제이님 너무 잘 속는다.

제이님과 헤어진 다음 독서실에 돌아와 하루 종일 책을 읽었다. 오후 2시쯤부터 읽기 시작해서 밤 12시가 되어서야 다 읽었다. 책은 기대했던 대로 재미있었다. 제이님의 번역도 훌륭했고. 제이님께서 오타/오자가 있다고 그러셨는데, 너무 번역이 좋아서 물 흐르듯이 책을 읽다가 보니까 오타 같은 건 못 찾아냈다(빵점 프루프리더). 일단 읽고 나서 느낀 점은, 제이님께서는 이 책을 사랑 이야기로 보셨는데, 물론 사랑 이야기도 상당히 중요한 비중을 차지하기는 하지만 내가 보기에 작품을 이루는 세 중편을 관통하는 주제는 '인간의 진화'에 관련된 문제인 것 같았다.

아무튼 다 읽고 나서 다음 날 밤에, 책 좀 잘 팔리라고 평소에는 귀찮아서 잘 쓰지도 않던 리뷰를 썼더니, 이달의 리뷰에 덜컥 뽑혔다. 지금도 좀 얼떨떨한데, 내가 쓴 리뷰가 다른 사람들에게 도움이 되었다길래 기분이 좋기는 하다. 하지만 솔직히 말해서, 나름대로는 열심히 썼지만 그 리뷰는 약간 아쉬웠다. 책이 나온지 며칠 안 된 상태여서 줄거리 같은 게 노출되지 않도록 조심해서 쓴다고 리뷰가 대단히 추상적이고 모호해졌기 때문이다. 언제 시간이 좀 많이 흐르고 나면(한 반년 쯤 뒤), 좀 더 상세한 리뷰가 되도록 살을 붙여서 다듬을 생각이다.

PS. 사실 처음에는 이렇게 쓰려고 했다. "축하합니다! 여러분께서는 행운의 리뷰에 당첨되셨습니다. 이 리뷰를 보신 분들은 일주일 내로 '노래하는 새들도 지금은 사라지고'를 일곱 권 구입하셔서 가까운 친지들에게 나눠주시고, 여러분들도 행운의 리뷰를 쓰셔야 합니다. 안 그러면 무서운 재앙이-" (퍼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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펑 하고 산산조각 난 꼬마들 - 카툰 문학의 거장 에드워드 고리 걸작선 1 카툰 문학의 거장 에드워드 고리 걸작선 1
에드워드 고리 글.그림, 송경아 옮김 / 황금가지 / 2005년 7월
평점 :
절판


초등학생 때 봤던 '13일의 금요일' 6편 가운데 한 장면이 생각난다. 제이슨이 닥치는 대로 등장인물들을 베고 다니다가 꼬맹이들이 잠자고 있는 방에 들어갔다. 그런데 다들 자고 있었지만 어떤 여자 아이 하나가 잠에서 깨어났는데 그만 제이슨과 눈이 딱 마주친 거였다. 그런데 다른 때 같았으면 가차 없이 칼을 휘둘렀을 제이슨이 갑자기 그 아이를 멍하니 계속 들여다보기만 했다! 그 당시에는 이유를 잘 이해할 수 없었지만, 사실 헐리웃 영화에서는 어린 아이를 살해하는 장면을 영화에 넣는다는 것은 일종의 '넘어서는 안 되는' 금기 같은 것이었기 때문이다. (예를 하나만 더 들어 보면, 팀 버튼의 '슬리피 할로우'에서도 호스맨이 어린 아이의 목을 자르는 장면은 보여주지 않는다)

고리의 이 그림책은 바로 우리의 이 아주 오래된 금기를 건드린다. 우리가 보호해야 하고 또 보호받아야 할 존재(라고 생각하는), 어린이들이 다양한 방식으로 죽어가는 장면을 보고 있노라면, 뭐라 딱히 꼬집어 말할 수 없이 묘하게 불편한 감정을 느끼게 된다. 그러나 이 불편함은 아이들에 대한 연민이나 그들이 맞게 된 끔찍한 죽음에 대한 혐오감이라기보다는, 그런 상황에 처한 아이들의 얼굴에 조만간 닥칠 자신의 운명에 대해서마저도 철저하게 무심한 표정을 그려넣은 고리의 그로테스크한 감수성에 대한 것이다. 그 그로테스크함이 아름답게 느껴지는 건 도대체 왜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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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래하던 새들도 지금은 사라지고 행복한책읽기 작가선집 2
케이트 윌헬름 지음, 정소연 옮김 / 행복한책읽기 / 2005년 8월
평점 :
구판절판


사실 아주 오랫동안 기다렸던 작품이었다. 고려원미디어에서 나왔던 '시간여행 SF 걸작선'에 실렸던 한 단편, 언젠가는 과거로부터 시간여행을 해 온 남자에게로 떠날 여자를 조건 없이 사랑하는 남자에 관한 이야기인 '영원히 당신만을, 애너Forever Yours, Anna'를 읽고 나서 그 섬세한 감성에 놀란 터였다. 그래서인지 행책SF의 2005년 라인업에 케이트 윌헬름의 대표작인 이 책이 올라가 있다는 소식에 더욱 기대가 되었다.

이 작품은 방사능 오염으로 인한 생식능력의 급격한 감퇴로 인간이라는 종 자체의 보전이 위협받는 미래에, 인간복제 기술에 의지하게 되는 인류의 절박한 선택을 다루고 있다. 그 결과 태어난 클론은 동일계통간에 일종의 텔레파시적 유대관계로 이어져 있고, 이들에 의해 움직이는 사회는 자연히 각 개체간의 구분이 무의미하며 독립된 자아로서의 개인이라는 관념이 존재하지 않는 폐쇄적 공동체가 된다. 약간의 시간차를 둔 3부로 나누어진 이 작품의 주된 이야기는 이러한 공동체에 적응하지 못하는 사람들, 사라져가는 마지막 인류의 일원이기도 하고, 전체로부터의 분리를 통해 자신을 새롭게 발견하게 된 클론이기도 한 그 아웃사이더들의 이야기이다.

사회로부터 단절된(또는 단절되기를 선택한) 아웃사이더 이야기라면 결국 개인이 패배하고 파멸로 내몰리게 되는 비극적 결말로 끝나는 경우가 많지만, 윌헬름은 한 개인인 아웃사이더의 자아탐색을 (비록 개인적인 차원에서는 비극으로 끝날지라도) 인류 전체와 과학기술이 어떤 방향으로 진화해야 하는가 하는 고민과 결부시킴으로서 과학소설만의 장점을 유감 없이 발휘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이 과정을 진화에 관한 무미건조한 이데올로기 대립 구도를 늘어놓는 대신에, 공동체와 이를 지탱하는 복제기술을 유지시키기 위해 고통받고 희생당하게 되는 사람들의 슬픔, 그 속에서 피어나는 사랑과 이해, 그리고 마지막에 다시 싹트는 조그만 희망을 크지도 격하지도 않은, 나즈막하고 애잔한 어조로 그려내어 책을 덮고 나서도 한참 동안 그 여운이 가슴 속에 남게 만든다.

이 작품은 지금까지 국내에 소개된 인류의 진화를 소재로 삼은 그 어떤 과학소설보다도 문학적인 면에서 월등히 높은 수준에 도달해 있으며, 개인적으로는 어슐러 르 귄의 '어둠의 왼손'에 필적할만큼 탁월한 작품이라고 생각한다. 이 책을 직접 읽어보면 이런 과격한(?) 주장도 전혀 근거 없는 소리가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다만 권말 해설이 작품 자체보다는 작가 소개 쪽으로 지나치게 기울어져 있다는 점은 아쉬움으로 남지만, 이런 사소한 흠 정도로 이 작품의 가치를 깎아 내리는 것은 불가능하다. 아무튼, 자신을 진정한 과학소설 독자라고 생각한다면 이 정도 작품은 읽어둬야 되지 않을까? :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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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08-29 17:5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5-08-29 17:53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