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둠의 경로를 통해 구한 'Carrion Comfort'의 단편 버전을 읽었다. 1982년에 나왔으니까 진짜 초기 작품인 셈이다.

이 작품은 흡혈귀에 관한 이야기이다. 아니, 정확하게 말하자면 피를 빨아먹는 흡혈귀가 아니라 인간의 정신을 흡수하는 'mind-vampire'에 관한 이야기이다. 이들은 인간에게 감응한 다음 그들의 정신을 흡수해서 자신들의 젊음을 유지할 뿐만 아니라 인간을 기계처럼 조종하기도 한다(작중의 흡혈귀들은 그들 나름대로 이런 능력을 통한 인간 사냥을 'the Feeding', 'the Hunt' 등으로 표현하고 있다).

전반부는 정말 오래간만에 Willi와 Nina가 Melanie의 집에 모여서 만담을 나누는 것으로 시작한다. 넌 몇 명 잡아먹었느니, 내가 이겼느니 하는 둥... 그러다가 Melanie가 갑자기 the Game을 그만두겠다고 폭탄 선언(?)을 한다. 여기까지는 솔직히 좀 지루해서 도중에 때려치우고 싶다는 생각이 굴뚝 같았지만, 꾹 참고 계속 읽었다. 그런데 Willi가 돌아가는 길에 원인을 알 수 없는 비행기 사고로 죽고 Melanie에게도 그녀의 목숨을 노리는 마수가 뻗어오기 시작한다. 누가, 왜 이런 일을 꾸몄을까? 단지 the Game을 그만두었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이 대목에 들어서면서부터 재밌어졌다. Melanie가 살아남으려고 발버둥치는 과정에서 이들에게 조종당하는 애꿎은 인간들만 잔인하게 죽어나가기 때문에, 지루한 초반과는 달리 후반에는 유혈이 낭자하는 장면들이 많이 나오기 때문이다. 그리고 전반적으로 mind-vampire들의 성격이 굉장히 냉혹하게 묘사되어 있어서 꽤 그럴 듯했다. 하드보일드 소설의 주인공 같다는 생각이 들 정도. 영생의 무게에 지쳐버린 흡혈귀를 묘사하는 건 앤 라이스도 괜찮긴 하지만, 이쪽이 더 실감난다.

댄 시몬즈는 후일 이 단편을 fix-up해서 장편으로 출간했다. 제목은 그대로 'Carrion Comfort'인데, 분량이 물경 896페이지!! 시놉시스를 대강 읽어보니 단편 버전에 이들 mind-vampire를 추적하는 대적자들을 집어넣고 여기에다 2차 세계대전, 나치 등등의 역사소설적 내용을 입힌 것 같은데... 재미있을런지 확신이 안 선다. 설마 만담 부분도 왕창 늘어난 건 아니겠지? ^_^;;

그건 그렇고, 'Song of Kali' 이후에는 공포소설이 재미가 없다. 걸작의 후폭풍이라고나 할까... 앞으로는 지금까지 사 놓은 거랑 어둠의 경로로 구한 거 빼고는 당분간 공포소설은 제껴놓을 생각이다. 앞으로는 SF를 다시 읽어봐야지. 지금은 크리스 보이스의 'Catchworld'를 읽고 있는데, 꽤 재미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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