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에 나는 없었다 - 개정판
애거사 크리스티 지음, 공경희 옮김 / 포레 / 202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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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상류층 삶을 살던 한 여인이 우연한 기회로 혼자 머나먼 타국에 발이 묶인다. 말도 통하지 않는 사막 지대에서 혼자가 된 여인은 비로소 자신이 걸어온 길을 온전히 돌아보게 된다. 어떤 삶을 살아왔나? 나는 가족에게 타인에게 어떤 사람인가? 나는 누구인가? 그녀는 그렇게 머나먼 여행길에서 '나에게로 떠나는 여행'을 새로이 시작한다.

메리 웨스트매콧이라는 필명으로 애거서 크리스티가 발표한 심리 스릴러. 크리스티는 본격 추리의 스타일에서 벗어난 몇 개의 작품을 발표했는데 그중 하나가 이 작품이다. 놀라운 것은 본격 추리물이 아닌데도 한 여성의 심리 속을 집요하게 파고드는 것만으로도 팽팽한 갈등과 아슬아슬한 긴장감을 제공한다는 것이다.

국경 지대에 홀로 고립된 여성이 지난날을 돌아보며 몇몇 꺼림칙했던 순간들에 숨겨진 진실을 탐색한다. 가볍게 추억을 되짚고자 했던 그 일이 곱씹을수록 삶 전체가 송두리째 뽑히는 듯한 무시무시한 경험에 직면하게 되는데- 이 과정이 무척 섬세하면서도 위트 있고, 오싹하면서도 짙은 페이소스를 느끼게 한다. 애거서 크리스티의 필력이 신의 경지에 닿아있는 듯하다. 세대를 초월한 인간사 원형의 불안과 공포를 탁월하게 그려낸다. 과연. 현대 고전의 가치로도 손색이 없다.

제목이 주는 의미도 깊다. 봄에 나는 없었다. 틀림없이 함께, 그 화려했던 봄날을 누렸다고 생각했는데- 돌아보면 그 봄에, 나만 없었다. 나는 언제나 이곳, 추운 겨울 속에 홀로 견디며 나 없이 모두가 누리고 있는 봄날을 그립게 지켜보기만 했다. 내 봄날은 어디로 가버렸나? 어째서 그 시간, 나를 둘러싼 사람들과의 따뜻한 시간 속에 나만 없었던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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