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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라선 열차와 사라진 아이들
디파 아나파라 지음, 한정아 옮김 / 북로드 / 2021년 11월
평점 :
절판
빈민가 소년 자이는 마을 아이들이 하나둘 실종되는 사건에 의문을 품는다. 단짝 친구들 파리, 파이즈와 함께 소년 탐정단을 만들어서 실종 사건을 파헤치기 시작한다. 사라진 아이들의 집을 찾아가고, 중앙 시장과 골목을 돌며 탐문 수사를 한다. 사건의 실마리를 찾아 보라선 열차를 타고 먼 곳으로 모험을 강행하기도 하지만 수사는 늘 현실의 벽에 가로막힌다. 그러던 중 한 소녀가 또 실종된다.
'보라선 열차와 사라진 아이들'은 2021년 에드거 상 수상작이라는 타이틀과 아동 실종 사건을 수사하는 소년 탐정단이라는 설정이 매력적으로 다가온 책이었다. 하지만 책 속으로 들어가는 순간 '소년 탐정단의 활약'이라는 기대는 조심스럽게 접어야 했다. 이 소설은 명탐정 코난이나 '소년 탐정 칼레'처럼 아이들의 유쾌한 모험을 그린 미스터리 활극이 아니다. 인도에선 하루에 180명의 아이가 실종된다. 흔적도 없이 사라진다. 그런데도 인도의 부패 권력과 경찰은 이를 손놓고 있다. 빈민가를 뿌옇게 덮은 스모그처럼 인도의 아이들에겐 희망도 미래도 불투명하다. 작가가 천진한 아이의 시선을 가져온 것은 인도 빈민가의 어두운 현실을 보다 생생히 표현하고 싶어서였다.
이 소설의 가장 큰 미덕은 작가의 경쾌한 필력이다. 아홉 살 소년 자이의 시선으로 그려지는 빈민가의 일상을 눈에 보이듯 세밀하면서도 유머러스하게 그려낸다. 입체감 넘치는 캐릭터들, 허를 찌르는 표현력, 감칠맛 넘치는 대화, 생생한 묘사와 풍성한 서사. 이 마법같은 필력에 푹 빠져들어 초중반은 정신없이 책장을 넘기게 된다. 하지만 중반 이후부터 가독성이 조금씩 약해지는데 이유는 이 소설이 실종-탐문-실종-탐문으로 이어지는 병렬식 구조를 취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것이 반복되다 보니 뒤로 갈수록 서사가 힘을 잃는다. 다만 이 소설을 미스터리 소설로 볼 게 아니라 추리의 색을 띤 빈민가 소년의 성장기로 본다면 완성도 높은 작품으로 볼 수 있다. 작가는 지옥 같은 현실에 굴하지 않는 아이들의 유쾌한 발걸음에 작은 희망을 품는다.
아이들은 미래다. 아이들이 사라진다는 것은 미래가 사라진다는 말이다. 미래가 사라진다는 것은 종의 멸망을 의미한다. 우리는 그렇게 고속 열차처럼 멸망의 길을 향해 내달리고 있음에도 남의 집 불구경하듯 마냥 손 놓고만 있다. 소설 속 어른들은 무기력하다. 그래도 아이들은 활기차다. 어설프지만 탐정단을 만들어 아이들을 찾고자 노력한다. 소설 속에서 내내 언급하는 정령은 어쩌면 이 아이들의 눈물을 보듬어줄 위로이며 환상이다. 그것이 서글프다. 환상에 기대지 않고는 기도조차 할 수 없는, 숨이 턱 막히는 시간을 버티는 아이들이 전 세계의 절반을 차지하고 있다는 사실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