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식저택
고바야시 야스미 지음, 주자덕 옮김 / 아프로스미디어 / 202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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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적한 시골 마을 외진 연구소 옆에 오래도록 버려진 두 개의 드럼통. 민원 제기가 들어와 면사무소 직원은 연구소를 방문한다. 어딘지 기분 나쁘고, 뒤틀린 듯한 집 깊숙한 방에서 소장을 만난다. 소장은 지금 즉시 밖으로 나가 두 개의 드럼통을 이용해 집을 불살라버려야 한다고 말한다. 그러면서 그곳에서 벌어진 경악할만한 실험에 관해 이야기한다.


'장난감 수리공'으로 일본 호러소설 대상을 수상하며 화려하게 등단한 고바야시 야스미가 98년 발표한 '육식저택'은 4편의 중단편 모음집이다. 재미있는 것은 네 편 모두 '공포'를 테마로 하고 있지만 분위기가 다 다르다는 점이다. 사이코 스릴러, 괴수물, 잔혹 액션, 심리 미스터리- 한 편의 소설집에서 여러 장르를 맛볼 수 있는 것은 독자에겐 즐거운 일이다. 게다가 한 편 한 편 모두 작가의 뛰어난 상상력과 놀라운 플롯의 묘미가 살아있는 완성도 높은 작품이었다.


무엇보다 첫 번째 수록작인 '육식저택'이 가장 좋았다. 비밀 연구소에서 행해진 괴기스러운 실험이 걷잡을 수 없는 공포로 돌변하는 과정이 소름끼치면서도 다이내믹하게 전개된다. 이 한 작품에 미스터리, 공포, 액션이 모두 녹아 있고 나아가서 코즈믹 호러와 아포칼립스 세계관까지 담아낸다. 결말을 알고 난 후 다시 보면 시작부터 모든 장면 하나하나가 복선이었다는 것을 알게 된다.


사람 신체를 부품처럼 사용하는 무법 세계를 그린 '정크'는 '육식저택' 다음으로 흥미로웠던 작품인데, '인 외 서커스'에서 선보인 잔혹 액션이 이 단편에서도 작가의 그로테스크한 상상력과 어우러져 무척 잘 그려졌다. 세 통의 편지가 역으로 거슬러 올라가며 마지막에 잔혹한 진실을 공개하는 '아내에게 보내는 세 통의 편지'는 복선을 곱씹어 보는 재미가 탁월했다.


내 안의 다른 내가 살인마일지도 모른다, 라는 설정의 네 번째 작품 '짐승의 기억'. 어떻게 보면 꽤 흔한 설정의 심리 스릴러로 갈 수 있었는데 작가는 라스트에 생각지도 못한 방향으로 플롯을 비틀며 신선한 충격을 던진다. 다만 이 작품은 완성도와는 별개로 구성이 너무 번잡했다. 주인공의 번뇌하는 심리 상태, 내 안의 살인마와 주고받는 노트 대화, 정신과 의사와 나누는 심리 상담, 그리고 이것을 제3자의 입장에서 바라보는 서술 등- 독자에게 '비밀'을 숨기기 위해 지나치게 많은 연막전을 펼친 느낌이라 상당히 어지러운 전개였다. 이점이 조금 아쉬웠다.


사실 진짜 아쉬운 것은 이제 이 작가의 새 작품을 더는 볼 수 없다는 것이다. 그래서일까, 작가 후기가 특히 인상적이다. 후기를 보면 이 작품이 네 번째 출간작이었다. 95년 '장난감 수리공'으로 데뷔한 이후 매년 한 편씩 신작을 출간했다는 뜻이다. 이토록 재능있고, 부지런하고, 패기만만한 작가가 이제는 세상에 없다고 생각하니 당시, 젊은 작가가 쓴 후기가 더욱 긴 여운으로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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