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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은 좋다
채인선 지음, 김은정 그림 / 한울림어린이(한울림) / 2017년 4월
평점 :
딸아이 하나를 키우고 있는 엄마입니다.
제목을 보고나니 딸아이와 이 책을 함께 읽고 싶어서 구입을 했습니다.
그리고 책이 오자마자 즐거운 마음으로 책을 펼쳤습니다.
세밀하게 표현된 그림들은 마치 오래된 사진첩을 펼치듯 정겹더군요.
그리고 끝까지 읽기도 전에 눈물이 핑돌아서 결국은 울먹이다 못읽었어요.
영문도 모르는 우리딸은 저를 따라서 울더군요.
남편도 인정하던 일벌레였던 저는 '전문직 주부'가 되어보겠다며 과감히 가정과 아이를 위해
남편보다 많은 수입과 전문직을 포기하고 집으로 들어왔습니다.
하지만 주부에 대한 시선과 사회적인 편견은 정말 냉혹했으며 ,
곧 그것은 짱구엄마가 낮잠이나 자고 뱃살이나 늘어진 것처럼 표현되듯
개성과 이름을 잃어버린 '이젠 그저 아줌마'일 뿐이라고 뼛속깊이 새겨주었습니다.
그런 가운데 좌절하지 않고 흔들리지 않게 잡아준 것은 남편도 아니고
바로 자라나고 있는 딸아이를 지켜보는 일이었습니다.
예쁜 꽃봉오리처럼, 보살피고 아껴주는대로 아름답게 피어나는 아이의 모습은
그 모든것을 보상해주고도 남음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저도 딸로 태어나 딸로 성장하고 며느리가 되었고 엄마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느낀것은 '딸이니까'하는 편견보다도 여자로서 살아가는 것이 더욱 더 힘들다는 사실입니다.
이 책에선 그 모든 것들을 약간의 눈가림과 눈속임으로 아름답게 그려내었습니다.
제가 눈가림이라고 하는것은
친정엄마가 딸을 기다리고 '아들도 그런대로 좋으니 키워봐라'고 하실거란 대목입니다.
요 부분은 제가 딸하나를 키워서 아는데 이렇게 말하는 사람 한 명도 못봤기 때문입니다. 호홋...
하지만 아들 둘에 딸 하나인 나이드신 친정엄마는 이제서야 그렇게 말씀을 하십니다.
내가 너 없었으면 어쩔 뻔 했을까....
누구에게 이렇게 속내를 얘기하고 누구와 이런 오랜 친구가 될까...
그리고 저역시도 그렇게 좋은 벗을 둔 운 좋은 사람이지요.
뿐만 아니라 저도 딸을 키우고 있으니 저는 평생 벗을 둘이나 두게 되었습니다. 더블 럭키입니다.
그러나 제 딸이 성장하여 결혼을 하고 임신을 했을때 저는 자신있게 '딸이 좋다'고는 못할 것 같습니다.
제가 길러본 결과 (아들이 없어서 비교대상은 없지만) 분명 딸은 좋다는것을 자신있게 말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 딸이 성장을 하고, 또 사회적인 약자로서 살아가고, 여성의 취약한 권리를 위해 애쓰고,
남아선호사상과 싸우고 사회적인 편견을 이겨내고...
그런 어려움들은 근절되기 힘들다는 것을 알면서 버티어내야 하는 점들을 알면서
무조건 딸이 좋다고 우길만큼 세상이 녹록치 않기 때문이지요.
이책은 어떤 면에선 딸들의 마음을 위로해주기 위한 부분도 있지 않을까 생각이 듭니다.
저는 친정어머니가 남자와 똑같이 키웠습니다.
여자라고 부엌심부름을 시키지도 않았고, 공부도 똑같이 가르쳐주었습니다.
그리고 대입,졸업,취업까지 어려움없이 해결하며 직장생활까지도 괜찮다고 생각을 해왔는데
결혼을 하고보니 갑자기 '별 것아닌 사람'이 되어버렸습니다.
결혼 10년동안 남편이나 시댁 누구도 제가 어떤 음식을 좋아하는지 물어보는 사람도 없고
관심도 없으며 알려고 하지도 않더군요.
그저 저는 얼굴을 모자이크한채 어느 누가 그 자리에 와있어도 괜찮을 그런 위치에서
밥이나 차리고 일이나 하는 사람이 되어버렸습니다.
그런 삶을 대물림하면서까지 '딸이 좋고 아들도 그런대로 좋으니 키워봐라'고 말할 수 있을지 궁금합니다.
텔레비젼에 나오는 여자들은 심지어 '자신은 일도 잘하고 살림도 육아도 다 잘한다'며
슈퍼우먼을 강요하고 있는데, 슈퍼남편을 못만나봐서인지 그 말들이 너무 공허하게 들립니다.
아, 이 책을 읽고나니 너무 제 감정에 치우쳤네요.
이 책의 공허함이 너무 가슴으로 메아리치는 바람에 잠시 속이 상했었네요.
뱀발로 말하자면, 이책의 모델은 '주현미'가 아니냐 했을정도로 닮았습니다.
그림작가분의 얼굴일까요?
아마 자료 사진을 보고 그린듯한데, 자료사진이 있는듯한 몇몇 그림은 아주 생동감이 있고,
나머지는 동화책 그림처럼 3자적인 눈길이네요.(순전히 제 기분이지만...)
누가 내게 '딸이 좋냐?'고 묻는다면 제 대답은 언제나 '그렇다'입니다.
하지만 저는 딸이 딸로서 성장하여 살아가기를 기대합니다.
누군가의 얼굴없는 며느리나 이름없는 아줌마가 아니라,
이름과 개성과 얼굴을 가진, 딸로서 살아갈 수 있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