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일을 제외하고 5월 한 달 동안 처음 쉬는 날을 가졌노라 첫 문장을 완성했는데, 벌써 6월 6일 현충일이었다. 학기 후반부에 갑자기 여러 일거리가 몰려왔다. 지도교수님의 학부 수업에 주2회씩 들어가게 되었고, 다른 수업에서 원치 않은 발제를 대신 떠안게 되었고, 그와중에 페이퍼 발표 순번이 돌아왔다. 거기엔 두 달이나 준비기간을 줬으니 퀄리티를 높여오라는 엄포가 복리로 동봉되어 있었다. 공모전을 두어개쯤 나갔고, 기사 마감 하나와 등반대회 및 킥스 같은 자잘한 학과행사가 있었는데, 거기 있었던 나는 아마 내 본체가 아니라 그림자 분신 중에 하나였으며, 실체는 사회대 530호에 유폐되어 있었던 것이다.


한 달 동안 한 권의 이론 원서를 읽었고, 영어 논문 한 편, 선행 연구 10개 가량, 17개의 참고문헌을 살펴서 철야밤샘을 한 끝에 소논문을 하나 완성하였고 발표를 했다. 꽤 완성도있게 잘 썼으나 곳곳에 여기저기 빨간줄이 그였고, 수정해서 퀄리티를 높여오라는데, 내가 부족해서인 것인지 나에게 기대를 크게 걸고 있으신 건지, 여튼 지도교수님의 의중을 모르는 상태로 일단 오후 여섯시에 잠이 들어 다음날 오후 네시에 일어나서 보니까 6월 6일이었던 것이다. 가르마 펌을 새로 했고 피로가 가득한 초췌한 얼굴로 셀카를 찍었고, 용건은 없는데 마음이 시켜서 시 하나를 옮겨 적었고, 카페에서 마음 편히 독서를 했다. 두 문단으로 정리되는 한 달을 살았는데 왜 이리 나는 바빴던 것일까. 앞으로도 페이퍼 두 개와 학회 아르바이트, 면접 아르바이트, 원고 마감과 두 개의 기사마감, 서평 대회와 공모전 참가를 각각 하나씩 앞두고 있다. 스스로 자처한 일인데 누구를 탓하리오. 어떻게든 되겠지 하고 일단 이번주는 쉰다.

- 2018.06.06 @PrismMak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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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의 대북조선 기밀파일
어우양산 지음, 박종철.정은이 옮김 / 한울(한울아카데미) / 200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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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읽어보면 알 수 있듯이 농밀한 중북관계는 실제로는 매우 복잡하고 미묘하다. 그러나 일본에서는 중북관계를 '같은 팀의 우두머리와 부하'라는 식으로 파악한다. 이는 '중국이 뒤에서 북조선을 조종하고 있다', '중국이 마음만 먹으면 북조선을 저지할 수 있다'는 명료하고 단순하며, 어쩌면 그렇게 되기를 바라는 일본인만의 '염원'이 반영된 것인지도 모른다. 이런 점에서 보더라도 일본은 국제관계의 술수에서 완전히 소외되어 있다. 그래도 치명상을 피해왔던 것은 대륙과 바다를 사이에 두고 있다는 지리적 조건 덕분이다. 바다에 고마워할 일이다. p.20



현재의 북조선 미사일 발사 능력으로 추정해본다면 톈진(天津), 다롄(大連), 칭다오(靑島)를 포함한 화북지역 대도시에 사는 약 1억 8,000만 명의 중국인이 핵무기 사정권에 들어가게 된 셈이다. 그러나 북조선이 이렇게 중대한 의미가 내포된 핵실험을 감행하면서도 중국에는 겨우 20분 전에 통고했다는 사실은 참으로 놀랄 만한 일이다. p.31



중국은 지난번 미사일 발사 때와 마찬가지로 UN안전보장이사회가 주도한 대북 제재 결의안에 찬성표를 던졌다. 이때 중국은 미국, 일본과 같은 대북강경파 사이에 조건을 내건 투쟁이나 흥정 없이 오히려 적극적인 태도로 대북 제재에 찬성하는 자세를 취했다. p.41



중국에서는 일반적으로 중북관계를 '혈맹관계'라고 믿고 있으나, 이 말이 처음 불거진 조선전쟁 때부터 줄곧 깊은 불신과 경계심이 양국 사이에 놓여 있었다. 김일성은 조선전쟁 말기부터 정전 후까지, 자신의 권력 기반을 공고히 하려고 일찍부터 중국의 영향력을 북조선에서 배제하는 작업에 몰두했다. 이른바 '연안파 숙청'이다. p.53



조선반도의 남북은 서로 유사한 점이 하나 있다. 미국을 믿는 일은 있어도 중국을 신용하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p.67



근대사에서 중국이 조선에 발을 들여 잘된 적은 한 번도 없다. 갑오전쟁과 조선전쟁은 중국이 조선의 내정에 간섭한 것을 계기로 발발했다. 갑오전쟁은 중국에 막대한 손실을 입혔다. 중국은 타이완을 할양해야만 했고, 수억 냥에 해당하는 백금을 배상했을 뿐 아니라 이를 계기로 국력이 쇠약해지기까지 했다. 게다가 일본에 노출된 탓에 정복하기 쉬운 민족이라는 인상을 남겼다. 이것이 훗날 중일전쟁의 한 원인으로 작용했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미국은 제2차 세계대전 이후만 해도 중국의 내정에 간섭하려 들지 않았지만, 중국이 조선전쟁에 개입하게 되면서 중국에 대한 미국의 경계심이 높아졌다. 그 후 미국은 적극적으로 타이완 문제에 개입하고 있고, 지금까지도 대륙과 타이완의 통일은 실현되지 않고 있다. p.67



전쟁을 피하기 위해 미국과 직접 교섭을 통해서 강화(講和)를 해야 한다. 핵실험의 목표는 어디까지나 미국을 양자 간 직접교섭 테이블로 앉히려는 데에 있었다. p.266



불안정한 조선반도 정세는 중국의 안정과 성장에 있어 반드시 마이너스 요인이 되며, 심지어 타이완과의 통일에 악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본다. p.273


북조선은 최근 수십 년간 중국의 경제적 원조로 지탱해왔으면서도 앞에서만 중북우호관계를 외칠 뿐 뒤에서는 필사적으로 중국의 영향력을 배제하려고 했다. 궁극적으로 미국 등과의 관계를 개선하고 반대로 중국을 견제하는 힘을 키울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p.273





문장 발굴단


         본 코너에서는 제가 읽은 책에서 발견한 좋은 문장들을 기록합니다.

왜 선정했는지 뭐가 좋았는지에 관한 제 의견이나 코멘트를 따로 덧붙이지 않고,

단순하게 기록에만 집중합니다. 제가 추려낸 부분이 도움이 되었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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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명이다 (반양장) - 노무현 자서전
노무현 지음, 유시민 정리, 사람사는세상 노무현재단 엮음 / 돌베개 / 201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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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암처럼 일렁거리던 촛불 바다는 텔레비전 뉴스로만 보았다. 쉼터에서 그 소리를 들으며, 아내는 우리 편이 저렇게 많이 왔다고 좋아했지만 나는 겁이 났다. 저 사람들이 저렇게 밤마다 촛불을 들고 와서 나를 탄핵에서 구해 줄 것이다. 그리고 그 다음에는 내게 무엇을 요구할까? 저 사람들이 원하는 것을 내가 과연 해낼 수 있을까? 그런 두려움이 촛불 시민들의 함성에 실려왔다. pp.240-241



독재 시대 그 신문들은 국가 권력에 종속되어 있었다. 정부가 준 보도지침을 충실하게 따랐고, 그 대가로 여러 가지 특권을 받으면서 성장했다. 언론의 사회적 책임을 제대로 수행하려고 눈물겹게 노력하고 희생을 감수한 기자들이 그 시대 언론의 역사를 빛나게 했지만, 이 신문사들은 부당한 기득권의 성벽 안에서 정치 권력과 유착했다. 그런데 민주화가 이루어지면서 정치 권력의 지배에서 벗어난 보수신문들은 시장 권력과 유착되었고 그 자신이 새로운 사회적 권력이 되었다. 민주주의가 제공하는 언론 자유의 과실을 먹으면서, 누구의 견제도 받지 않고 어떤 비판도 허용하지 않는 절대권력이 된 것이다. p.276



비가 오지 않아도, 비가 너무 많이 내려도, 다 내 책임인 것 같았다. 아홉 시 뉴스를 보고 있으면 어느 것 하나 대통령 책임 아닌 것이 없었다. 대통령은 그런 자리였다. p.298




문장 발굴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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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ella.K 2018-05-24 14:5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책 읽고 엉엉 울었던 기억이 납니다.

그런데 서재 프로필 사진 바꾸셨군요.
좋네요.^^

프리즘메이커 2018-05-25 16:54   좋아요 0 | URL
저는 못 읽고 있다가 이제서야 읽습니다.. 가끔 그런 책이 있지요 ㅎㅎ 사진 바뀐 걸 알아봐주셔서 고맙습니다!!
 




※ 본 서평은 필자가 오마이뉴스에 송고한 기사입니다.

저작권은 글쓴이에게 있습니다. 

(원주소: 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24354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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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매 초기 증상을 앓고 있는 할머니가 처음으로 치매 학교에 갔다. 자원봉사자들이 목욕을 시키러 옷을 벗기는 데, 할머니가 너무도 완강하게 저항을 했다. 옷이 너무 불퉁거리고 무거워, 솔기와 마디들을 뜯어보니 현금이 가득했다. 반나절 옷을 다 터 찾은 돈이 무려 350만원 가량이었다. 자식들이 올 때마다 조금씩 쥐어주던 푼 돈을 소매소매 감춰놓고 바느질로 봉해뒀던 게다.



언제부터 기억을 잃고 돈을 모아두셨던 걸까? 목욕을 하는 할머니는 돈을 다 잃어버렸다며 목을 놓아 우셨다고 했다. 다 잃어버려도 괜찮다고 내가 또 줄거라고 우리 엄마가 그렇게 한참을 달랬다고 했다. 전화너머 엄마의 목소리가 깊게 잠겼다. 나는 하던 영어원서 해석을 멈추고 학교를 나갔다.


※ 본 에세이의 저작권은 글쓴이에게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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