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Art of Spirited Away -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
미야자키 하야오 지음, 서현아 옮김 / 학산문화사(만화) / 2002년 6월
평점 :
품절


수많은 아이들의 틈바구니에 끼여 다 큰(?) 어른인 내가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 이라는 영화를 극장에서 관람하면서 그리고 이 책을 읽으면서 가장 궁금하게 생각했던 것은 '센' 과 '치히로' 라는 이름이 갖는 의미였다. 이름. 사람에게 있어서 '이름' 은 과연 어떠한 의미를 갖는 것일까? 나에게도 국-한 혼용체로 이루어진 이름 석자가 있지만 평소 이름에 대해서는 그렇게 깊은 생각을 해본 적이 없었다. 가만히 내 자신을 반추해보니, 그냥 남들이 나의 이름 석자를 부르니까 그냥 그런가보다 하면서 무감각하게 받아들였던 것 같다.

일본이 이 땅을 점령하던 일제치하에 그들은 왜 이 땅의 국민들에게 창씨개명을 강요했을까? 이름이 뭐가 그렇게 중요하다고. 하지만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 이라는 만화영화와 그리고 제작과정이 담겨져 있는 이 책을 보면서 나는 역사적, 사회문화적인 관점에서 '이름' 이 갖는 의미를 그냥 쉽게 간과할 수 없었다. 치히로는 우연히 석상이 있는 터널을 지나 신비의 세계로 빠져든다. 그곳에서 치히로는 유바바라는 이름을 가진, 신들이 목욕을 하는 온천장의 주인으로부터 '센' 이라는 새로운 이름을 강요 받게 된다.

치히로는 자신이 처한 현실을 도피하려고 하지만 그렇게 말하는순간 자신의 몸이 점차 사라져가는 경험을 이미 했던 터라, 이 곳 세계에서 살아남기 위해선 강요된 이름을 갖고 순종하면서 살 수 밖에 없는 것을 경험하게 된다. 이름을 뺐기는 것은 단순히 그냥 말을 바꾸는 것이 아니라, 한 인간의 모든 것을 지배하는 것으로 장치적 기능을 하는 것이다.

그건 영화 <2009 로스트 메모리즈> 에서 나중에는 비록 한국인으로서의 정체성을 찾아가지만, 일본 경찰로서의 장동건은 '사카모토' 라는 일본 이름을 가진 것으로도 '이름' 이 갖는 함의와 관련해 상징적인 의미를 알 수 가 있다. 주체적 자아로서의 진정한 독립을 하기 위해선 비단 이 작품에서의 경우처럼 '이름' 뿐만 아니라 인간 존재의 존엄성을 저해할 수 있는 모든 요소가 방해 받아서는 안 된다는 것을 알 수 가 있다.

이 작품의 주인공인 10살짜리 소녀 치히로는 요즘 세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흔히 말하는 외동딸로 자랐다. 보통 우리나라에서도 10살 정도 된 어린 아이라면 부모에게 의존적이고 타자에 대한 관심보다는 자신의 것에 대한 소유욕과 집착이 더 많은 것을 쉽게 찾아 볼 수 있다. 이런 예는 어떨까? 나의 조카도 치히로와 같은 10살인데, 삼촌인 내가 과자를 좀 달라고하면 쉽게 안 주는 경우가 간혹 있다.

자기가 싫증이 나서 먹기 싫거나 아니면 다른 재미난 놀이를 할 게 있을 때, 자신이 가지고 있던 과자를 던져주고 가는 경우가 많은데, 치히로의 경우도 보통의 10살 소녀라면 보통의 아이들과 그렇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처음 신비의 세계에 들어섰을때, 체념하고 현실을 받아들이지 않으려고 하는 모습에서 치히로의 그러한 감정의 일면을 조금은 엿볼 수 있었는데, 이후 치히로는 어렵고 힘든 현실에 막상 직면하자 자신이 몰랐던 적응력과 인내력을 점차 발휘해서 하나하나씩 자신의 앞에 닥친 현실을 극복해 나가게 된다.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 을 보면서, 나는 치히로가 점차 주체적 인간으로서 소중한 경험을 해나가는 과정이 아주 인상에 남았다. 물론 이 작품에 대한 영화와 책을 보는 관점은 다 다를수가 있다. 하지만 나는 이 작품을 접하면서 10살짜리 소녀가 부모에게 의존하지 않고 그녀 스스로 자신의 삶 앞에 놓인 어려움을 개척해나가는 과정이 바로 나의 조카를 비롯한 이 땅의 어린아이들에게 소중한 대리경험을 제공해주는 핵심적인 포인트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한마디 더 첨언하자면, 이 영화는 결코 어린아이들만의 영화가 아니라는 것이다. 이 영화는 어른들에게도 '많은 생각할 거리' 를 주기 때문에 그러하다. 이와 관련해서는 이 독자서평을 읽으시는 각 개개인이 직접 한번 찾아보시길 바란다.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 이라는 영화속에 바로 그 해답이 있으니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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