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처음 | 이전 이전 | 1 | 2 |다음 다음 | 마지막 마지막
스님의 주례사 - 행복한 결혼생활을 위한 남녀 마음 이야기
법륜스님 지음, 김점선 그림 / 휴(休) / 2010년 9월
평점 :
구판절판


고등학교 야자 때 옆친구가 법정의 '무소유'를 읽더니 대뜸 눈물을 흘린 적이 있다.
짧은 머리에 동그란 얼굴, 여드름이 뽀송한 얼굴에 환한 미소로 눈물 두 줄기가 흐르는데
영락없는 부처님 상이었다.

웃는 눈물을 흘리던 녀석은
옆 친구에게 셔터칼을 빌리더니
입고 있던 체육복 주머니 안에 구멍을 내기 시작했다.

"나 이제 무소유로 산다"

별 미친놈 다보겠다고 했을지 모르지만, 눈물이 너무 진지했다.
'불교의 불'자도 모르는 사람이 봐도 "앗, 저것은 해탈의 미소?"라고 할 만 했다.

야자가 끝난 10시, 녀석은 차비가 없다며 나에게 1000원을 빌렸다가
체육복 주머니 속에 넣고 그대로 잃어버렸다. 집까지 터벅터벅 걸어갔다며
다음 날 짜증을 내는 녀석은, 다시 부처에서 속인이 돼 있었다,
(물론 구멍난 체육복 바지도 다시 알뜰하게 꿰맸다)

아무튼 스님들 책은 치명적이다.
있는 듯 없는 듯, 되든 말든, 내가 하든 남이 하든
정글같은 무한 자본주의, 이기심으로 똘똘 뭉친 한국 사회에 울림을 준다.

"결혼도 안 한 사람의 얘기다" "나도 절에 가면 그런 얘기할 수 있겠다"고
저평가되기도 했었다. 바람핀 배우자를 쉽게 용서하는 부분에선
고개가 갸우뚱해지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결혼을 앞두고
재고 따지고 헤아리고 계산하고 배경을 먼저 보는 세태에
'스님의 주례사'는 무릎을 탁탁 치게 만드는 구절이 참 많다.

인상적인 구절이 참 많은데 하나만 옮긴다.

"돈이 없어서 돈 있는 남자를 구하고,
외로워서 위로해 줄 사람을 구합니다.
이건 지극한 이기심에서 시작된 관계입니다....

내가 상대를 재게 되면 그 사람 역시 (나를) 재게 됩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정자전쟁 - 불륜, 성적 갈등, 침실의 각축전
로빈 베이커 지음, 이민아 옮김 / 이학사 / 2007년 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제목도 제목이지만 내용도 내용이다. 노골적인 형용사와 부사를 제외한 성행위 장면 묘사는 세미세미한 포르노그라피를 연상시킨다. 큰 흥분(?)없이 책장을 넘기면, 저자인 로빈 베이커가 생물학자다운 시각으로, 왜 인간이 이런 행동을 하는지 찬찬히 설명해준다. 태고적부터 인간의 유전자에 각인된 종족 보존의 욕구, 우성 유전자를 쟁취하기 위한 치열한 사투, 그리고 그 전쟁에서 이기기 위해 세밀하게 설계된 인간의 정자와 난자. 이 모든 것이 인간의 섹스, 불륜 등을 설명해준다. 영화나 소설에서 그냥 ‘짜릿함’ 정도의 이유로 언급되던 인간의 외도가 결국은 생물학적인 종족 보존의 본능에서 비롯되었다고 한다. 부부관계 중 태어나는 아이의 10%가 외도의 결과라는 주장은, 그래서 더 충격적이다.
 
  사람들은 모두 각자의 관점, 즉 일종의 ‘계(界)’로 세상을 본다. 저자는 생물학자답게 생물학적 관점으로 정자전쟁을 설명했다. 하지만, 조그만 다른 ‘계’로 이 정자전쟁을 본다면, 실제로 정자전쟁은 없다.
  먼저, 재력있고 몸이 건강한 남자에게 여자가 유혹되는 것은 이 책에서 쉽게 설명된다. 여자의 자손을 안정적인 환경에서 키우고 싶은 본능 때문이다. 이건 지금 우리에게도 어느 정도 통하는 코드다. 하지만, 재력가와 결혼하고 나서도 애를 낳을 생각이 없는 여자도 있고, 재력이나 건강 외에 다른 기준이 여자를 유혹하기도 한다. 남자가 형편없이 가난하고 키도 작지만, 로맨틱하다거나 똑똑한 면이 있어 여자의 선택을 받을 수도 있다. 감수성이나 지능의 발달은 사회적 요인에 의해서도 영향을 받는다. 선사시대부터 이어진 본능에 따라 배우자를 선택하는 것이라면, 앞으로 로맨스 영화에선 키작고 못생긴 애들인 프로포즈하거나 프로포즈받는 일이 절대 없어야 한다. 그 순간 공상과학영화가 돼 버리니깐.
 
  장면 묘사와 연관된 설명도 문제가 많다. 언뜻 보면 인간의 기묘한 바람기가 설명되는 듯도 하지만, 결정적으로 저자가 취사선택한 상황이라는 점에서 그 한계가 명확하다. 방법론적인 문제가 발생한다. 다른 말로 설명을 위해 인위적으로 상황을 조작했을 수도 있다는 얘기다. 물론 책에 묘사된 상황은 현실에서도 얼마든지 벌어질 수 있다. 하지만 말 그대로 존재(is)하는 것이 아니라 가능성(may)만 있을 뿐이다. 인간이 우성 유전자를 찾아 평생 황홀하게 방황하는 존재라면, 시골에서 평생 백년해로하는 부부는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비행기를 타고 다른 여자와 출장 갈 기회가 없어서? 집 앞에 잔디가 없어 건장한 정원사를 고용하고 유혹할 기회가 없어서?
 
   마지막으로 이 책을 읽으면서 내내 불편했던 전제가 있다. 인간이 자신의 유전자와 동일한 자손을 무수하게 많이 만들고 싶어하는, 어떤 탐욕적인 존재로 묘사된 전제가 마음에 걸렸다. 특히 남자의 경우 어디서나 총알을 난사하는 본능을 가진 것처럼 설명되곤 하는데, 이는 확실히 잘못된 전제이다. 그건 여자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적어도 로빈 베이커의 전제가 맞는다면, (세계 4위의 과밀국가이긴 하지만) 우리 나라에선 출산율 저하를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자손을 남기고자 하는 건 인간의 본능이니깐. 이와 대비되는 끔찍한 통계가 있다. 국내 모 자동차 회사의 직원들 출산율을 조사해보니, 정규직의 경우 평균 1명이 넘지만 비정규직의 경우 0.8명 정도에 머무른다는 것이다. 반대로 프랑스의 경우 동거혼을 합법화했더니 출산율이 급격히 상승했다. 또한 결혼을 하지 않고 골드미스로 살아가는 여자나, 매월 적자가 나는 잡지 발행을 위해 평생 혼자 사는 남자도 있다. 홍콩이나 싱가포르에는 과도한 회사일 때문에 섹스리스(sexless)로 사는 부부들도 많다. 이들의 유전자는 '평생 순결의 여신'이 내려준 것인가?
  
  결국 인간의 자손에 대한 욕심은 생물학적 시각을 넘어 체제나 경제 상황에 따라 달라질 수도 있다는 얘기다. 우리 주변에서 자본주의적인 제약이나, 전쟁 후의 불안과 같은 정치사회적 요인이 인간의 자손 번영에 훨씬 더 큰 영향을 끼치는 사례를 얼마든지 찾아볼 수 있다. 생물학적 관점 외에 다양한 변인이 인간의 성생활에 존재하는 것이다.
 
  정치적으로 올바른 시각이 아니겠지만, 인간의 외도가 생물학적이나 사회적으로 충분히 이해는 간다. 평생 한 식당에서 된장찌개만 먹고 살아야 한다면 지겨울 것이다. 그래서 가끔 외식도 하고, 최고 좋은 외식 메뉴로 뷔페 코스가 인기를 끌 수 있다. 그러나 인간은 또한 상황 판단이 냉철한 동물이다. 이성이 있어 미래를 내다본다. 뷔페를 먹고 싶지만, 당장 내일 차비와 커피값이 걱정돼서 안 먹는다. 그런 걱정을 하지 않기 위해선 일부러 된장찌개만 (좀 끔찍하지만) 평생 먹을 줄도 안다. 앞으로 다가올 위험과 곤란을 충분히 예측할 수 있기 때문이다. 온 세상이 우성 유전자를 찾아 다부다처제로 넘치지 않고, 그나마 대부분 일부일처제로 유지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지 않을까? 더군다나 ‘인생은 한 사람을 사랑하기에도 짧다.’는 말에 깊게 공감하는 나에게, 결국 정자전쟁은 법칙도 경향도 될 수 없다. 정자전쟁은 없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7)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화폐전쟁 화폐전쟁 1
쑹훙빙 지음, 차혜정 옮김, 박한진 감수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8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신윤복은 남자일까, 여자일까? 대부분 여자라고 단호하게 대답할 것이다. 영화 ‘미인도’, 드라마 ‘바람의 화원’에서 김민선, 문근영이 신윤복 역으로 등장하니깐. 하지만 실제로 남자인지 여자인지 사학자들 사이에서도 논란은 분분하다. 파급력이 큰 대중매체에서 여자로 설정하니 다들 여자로 알고 있는 것뿐이다. 그럼 왜? 재미있으니깐. 역사적 사실이나 논란은 조금만 쓰고, 거기에 작가의 상상력이라는 조미료를 팍팍 쳐주면 사람들이 그 맛에 쉽게 이끌리니깐, 그런 팩션(faction)을 쓰는 거다.

 이 책, 팩션이다. 사실(fact)에 허구(fiction)를 더했다는 말이다. 화폐 패권을 잡기 위해 로스차일드 가문부터 지금의 FRB까지 온갖 나쁜 짓들을 서슴지 않았다고 말한다. 보이지 않는 손들이 움직여, 링컨도 죽이고 심지어 1차 세계 대전도 일으켰단다. 그렇게 막대한 세력이 있다면, 그동안 있었던 역사의 진보는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금융 규제는 어떻게 생겨났고, 자본가보다는 노동자들에게 유리한 각종 정책은 어떻게 탄생할 수 있었던 것일까? 금융 자본에 좀 더 우호적일 존 케리가 당선되지 않고 오마바가 미국 대통령이 된 건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감수자의 서문에도 나와 있듯 책 곳곳에 ‘음모론’적 시각이 깊게 배어 있다. 음모론이라고 해서 폄하할 건 아니다. 나름 타탕한 근거와 논리를 갖추면 되니깐. 문제는, 감수자의 말처럼 음모론은 ‘폭넓은 시각을 갖게 해주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편협하고 근거 없는 낭설에 빠져들 가능성을 높게 할 뿐이다. 몸에는 좋지 않은 설탕이, 자꾸 단맛으로 유혹하듯 말이다.
 
 물론 책의 모든 내용이 음모론으로 가득한 건 아니다. IMF, IBRD같은 국제기구들이 위기에 빠진 한 나라의 경제를 살리기는커녕 어떻게 망쳐왔는지에 관한 사실이라든가, 달러를 기축통화로 선점하기 위해 미국 정부가 다른 나라에 부당한 압력을 행사한 것들은 모두 사실이다. 금융 자유화로 상징되는 신자유주의가 ‘워싱턴 컨센서스’에 의해 시작된 것도 그렇다. 그렇다고 해도 동전의 이면처럼 다른 사실이 존재함에도 이를 애써 외면하려 한 것은, 이 책의 객관성을 크게 떨어뜨린다. FRB가 미국 민간은행들의 연합체인 것은 사실이지만, 금리 결정 수행 등 실질적으로 미국의 중앙은행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무엇보다 국민의 투표로 선출되는 미국 대통령이 FRB의장과 이사 7명에 대한 임명권을 갖고 있다. 형식적으로나마, ‘정치’가 ‘경제’를 통제할 수 있는 구조다.

 제일 마음에 들지 않는 부분은 이 책의 결론이다. 그대로 옮겨보자.

p.433, "강한 부의 창조력과 안정적인 화폐 시스템은 중국을 세계의 부가 집중하는 중심이 되게 해줄 것이다.“
p.445, "황금을 기반으로 하는 중국 위안화는 과도한 채무의 욕심으로 무너진 국제 금융의 폐허를 딛고 우뚝 설 것이며 중화문명은 찬란하게 빛날 것이다.“
 
 베이징 올림픽이 다시 열리는 줄 알았다. 결국 이 얘기 하려고 그렇게 빙빙 돌아왔다. 미국은 안 되니, 중국이 전세계 금융의 ‘제왕’이 되자는 말이다. 글로벌 거버넌스(세계적인 협력과 협치)를 통해 탐욕스러운 금융자본을 공동으로 통제하자는 주장은 하지 못할망정, 자기 나라만 우뚝 세계의 중심에 서겠단다. 중국에서 왜 이 책이 그렇게 잘 팔렸는지 쉽게 이해간다.

 마지막으로 가장 웃긴 사실 하나. p. 229을 보면, 금융 자본의 이해를 대변하는 외교협회 회원들이 미국의 메이저급 매체에 포진해 여론을 왜곡한다고 한다. 저자가 지적한 매체 중 출판 업계에는 ‘랜덤하우스’라는 출판사도 있다. ‘화폐전쟁’은 ‘랜덤하우스 코리아’에서 나왔다. 금융자본을 위해 여론을 왜곡한다는 출판사의 한국 법인에서, 금융자본을 신랄하게 비판하는 책을 내주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세계사를 뒤흔든 16가지 발견
구드룬 슈리 지음, 김미선 옮김 / 다산초당(다산북스) / 2008년 3월
평점 :
품절


 책 제목만큼은 재미있다. 그런데 ‘발명’이 아니라 ‘발견’이다. 그것도 세계사를 뒤흔들었다는. 생물학부터 과학까지 다양한 분야의 발견이지만, 세계사를 뒤흔들었다는 데는 큰 공감을 표시하기 어렵다.

  먼저 지적하고 싶은 것은 저자의 국적이다. 저자는 독일대학의 교수인 ‘구크룬 슈리’다. 그리스 시대의 조각상부터 19세기의 X선이라 불리는 뢴트겐 광선까지 시대를 불문하고 다양한 소재를 다루고 있지만, 저자가 가진 국가주의적 한계가 책 곳곳에 드러난다. 3장의 괴테와 관련된 진화론의 증거는 무척 흥미로운 소재임에 틀림없을지 모르지만, 굳이 세계사를 흔들었다고 할 정도로 보기는 어려운 사건이다. 극히 예외적인 경우다. (저자의 다른 책에서 왜 괴테를 이렇듯 역사의 한 중심에 놓으려 했는지 미약하나마 짐작이 가능하다.)

  라오콘 군상과 관련된 논란도 마찬가지다. 굳이 이 군상과 관련된 수많은 논란 중 독일의 ‘요아힘 빙켈만’이란 사람의 주장만을 몇 페이지에 걸쳐 할애할 필요가 있었는지 의심이 든다. 미술사 속에서 훨씬 질 높은 다른 논란들도 있을 수 있는데 말이다. 10장의 ‘부활절 성극의 퍼즐을 맞추다’편도 당시의 독일 문학자들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저자가 무척이나 박식해보여도, 적어도 자신이 가진 한계, 즉 자국 역사에 함몰되어 세계사를 바라보고 있다면 지나친 비판일까?

  다음은 사례의 문제다. 그런 비판이 두려웠는지, 저자의 또 다른 한계인지, 세계사를 다룬다고 하면서도 동양의 사례는 진시황이 전부다. 하다못해 다른 사례들은 최초 발견자의 이름이 꼭 등장하는데 진시황릉을 처음 발견한 노인의 이름은 아예 나와 있지 않다(최초 발견 노인의 이름은 양취안이(楊全義)이며, 2003년도 시안에 갔을 때 황릉 옆에서 관광객들에게 사인을 해주고 사진을 함께 찍기도 했다). 굳이 억지로 끼워 맞추자면 실러캔스를 넣을 수 있을까? 이름은 서양에서 정했을지 몰라도 발견은 분명 동양인(인도)들이 먼저 했을 테니깐. 동양의 사례가 거의 없는 것은, 저자가 세계사를 유럽사로 인식하거나, 동양의 사례에 대해 거의 모르거나, 아니면 동양은 굳이 넣을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런데 도대체 무엇이 세계사를 뒤흔들었단 말인가?

  16가지 사례라는 것 자체가 설득력이 크게 없고, 그 외에 자국 시각과 서양중심적 시각이 크게 아우러져 그렇게 좋은 책을 보지 못한 것 같아 아쉬움이 켰다. 또 하나의 의문이 들었다. 저자는 도대체 어떤 용기로 ‘세계사를 흔들었다’고 책 제목을 정했을까? 외국서를 번역한 책들은 책 정보 페이지에 원서 제목이 나오는데, 이 책은 그렇지 않았다. 원서의 제목이 뭘까? 구글링을 해보고 아마존에 가보아도, 저자(GUDRUN SCHURY)의 다른 책들은 많았지만 이 책의 원제 비슷한 것은 아예 찾을 수가 없었다. 한국에서만 출판되었고, 한국에서만 특별히 ‘지어진 제목’이란 말이다.

자, 원서는 없다 치자. 도대체 제목은 누가 지은 것이며, 책 내용의 소재는 어디서 가져온 것인가?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생각의 오류 -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믿고 싶은 것만 믿게 만드는
토머스 키다 지음, 박윤정 옮김 / 열음사 / 2007년 11월
평점 :
품절


 

 토머스 기타의 ‘생각의 오류’는 고정관념을 깨고자 만들어진 책 같다. 저자는 크게 여섯 줄기로 우리가 종종 저지르는 생각의 오류를 지적한다. 1. 통계수치보다 이야기를 더 신뢰하는 속성, 2. 자신의 믿음을 확신시켜주는 증거들에만 집중하는 것(심리학에서 ‘선택적 지각’으로 설명되는 것), 3. 삶에는 운과 우연도 있는 것인데 지나치게 원인을 찾으려는 속성, 4. 지나친 오감을 확신한 나머지 부정확한 인식으로 생기는 오류, 5. 복잡한 세상을 단순화함으로써 심리적 안정을 추구하는 오류, 6. 시간이 지남에 따라 과거의 기억을 변형시키고 자신의 주관에 따라 기억이 변질되는 것 등이다. 

 동어반복적인 말이 많고, 미국 사례들이 많아 책장이 쉽게 넘어가질 않았다. 그럼에도 저자가 제기하는 여러 주장들은 꽤 설득력 있게 다가왔다. 자연과학이든 사회과학이든 논리적 타당성을 갖추어야 하는 학문 분야의 연구자라면 특히 더 그럴 것이다. 저자의 주장은 의외로 간결하다. 책에 제시된 기준에 따라 끊임없이 회의하고 의심해보는 사람이 되라는 것이다.

 허나 현실은 녹록치 않다. 매번 객관적인 조건으로 상황을 판단하기에는 불안정한 인간으로써 소위 ‘기회비용’이 많이 든다. 물건 하나를 살 때에도 불량률 통계를 인용하고, 간단한 판단을 내릴 때에도 여러 사례를 비교ㆍ분석 하면서 회의하고 의심만 한다면, 그것만큼 세상 피곤하게 사는 법이 없다. 정보의 홍수(overloading)에 빠져 재빨리 판단해야 할 일도 제쳐두고 말 것이다. 더군다나 과학자가 아닌 일반인들에게 이런 것은 더욱 힘에 부치는 일이다. 과학자들만큼 필요한 정보를 적절한 곳에서 얻을 수 없기 때문이다. 일반인들이 기껏 얻는 양질(?)의 정보라고는 인터넷, 뉴스와 같은 매스 미디어가 전부다. 저자도 책 곳곳에서 지적했듯 이런 미디어가 갖는 위험성은 굳이 크게 언급할 필요도 없다.

 특히 통계는 양날의 칼이다. 이야기보다 통계 수치에 의존하는 것이 좀 더 ‘과학적’으로 보일 뿐, 마크 트웨인의 멘트를 인용했듯 통계도 얼마든지 조작이 가능하다. 대선 여론 조사의 경우 천 명 대상 중 응답률은 20%정도에 불과하다. 같은 기관에서 시행한 설문 조사 결과도 문항 조작에 따라 얼마든지 원하는 결과를 낼 수 있다. 충분한 표본을 확보했는지, 적절한 문항으로 설문했는지, 표본의 보편성은 확보되었는지 하나하나 따지면서 살기에는, 이미 세상일은 충분히 복잡하고 다른 일에 힘을 쏟기에도 바쁘다.

 끊임없이 회의하고 의심하라. 틀린 말은 아니다. 그러나 힘든 말이다. 저자가 학자의 입장이 아니라, 좀 더 일반적인 입장에서 이 주제를 다루었다면 좋았을 것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처음 처음 | 이전 이전 | 1 | 2 |다음 다음 | 마지막 마지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