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폐전쟁 화폐전쟁 1
쑹훙빙 지음, 차혜정 옮김, 박한진 감수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8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신윤복은 남자일까, 여자일까? 대부분 여자라고 단호하게 대답할 것이다. 영화 ‘미인도’, 드라마 ‘바람의 화원’에서 김민선, 문근영이 신윤복 역으로 등장하니깐. 하지만 실제로 남자인지 여자인지 사학자들 사이에서도 논란은 분분하다. 파급력이 큰 대중매체에서 여자로 설정하니 다들 여자로 알고 있는 것뿐이다. 그럼 왜? 재미있으니깐. 역사적 사실이나 논란은 조금만 쓰고, 거기에 작가의 상상력이라는 조미료를 팍팍 쳐주면 사람들이 그 맛에 쉽게 이끌리니깐, 그런 팩션(faction)을 쓰는 거다.

 이 책, 팩션이다. 사실(fact)에 허구(fiction)를 더했다는 말이다. 화폐 패권을 잡기 위해 로스차일드 가문부터 지금의 FRB까지 온갖 나쁜 짓들을 서슴지 않았다고 말한다. 보이지 않는 손들이 움직여, 링컨도 죽이고 심지어 1차 세계 대전도 일으켰단다. 그렇게 막대한 세력이 있다면, 그동안 있었던 역사의 진보는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금융 규제는 어떻게 생겨났고, 자본가보다는 노동자들에게 유리한 각종 정책은 어떻게 탄생할 수 있었던 것일까? 금융 자본에 좀 더 우호적일 존 케리가 당선되지 않고 오마바가 미국 대통령이 된 건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감수자의 서문에도 나와 있듯 책 곳곳에 ‘음모론’적 시각이 깊게 배어 있다. 음모론이라고 해서 폄하할 건 아니다. 나름 타탕한 근거와 논리를 갖추면 되니깐. 문제는, 감수자의 말처럼 음모론은 ‘폭넓은 시각을 갖게 해주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편협하고 근거 없는 낭설에 빠져들 가능성을 높게 할 뿐이다. 몸에는 좋지 않은 설탕이, 자꾸 단맛으로 유혹하듯 말이다.
 
 물론 책의 모든 내용이 음모론으로 가득한 건 아니다. IMF, IBRD같은 국제기구들이 위기에 빠진 한 나라의 경제를 살리기는커녕 어떻게 망쳐왔는지에 관한 사실이라든가, 달러를 기축통화로 선점하기 위해 미국 정부가 다른 나라에 부당한 압력을 행사한 것들은 모두 사실이다. 금융 자유화로 상징되는 신자유주의가 ‘워싱턴 컨센서스’에 의해 시작된 것도 그렇다. 그렇다고 해도 동전의 이면처럼 다른 사실이 존재함에도 이를 애써 외면하려 한 것은, 이 책의 객관성을 크게 떨어뜨린다. FRB가 미국 민간은행들의 연합체인 것은 사실이지만, 금리 결정 수행 등 실질적으로 미국의 중앙은행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무엇보다 국민의 투표로 선출되는 미국 대통령이 FRB의장과 이사 7명에 대한 임명권을 갖고 있다. 형식적으로나마, ‘정치’가 ‘경제’를 통제할 수 있는 구조다.

 제일 마음에 들지 않는 부분은 이 책의 결론이다. 그대로 옮겨보자.

p.433, "강한 부의 창조력과 안정적인 화폐 시스템은 중국을 세계의 부가 집중하는 중심이 되게 해줄 것이다.“
p.445, "황금을 기반으로 하는 중국 위안화는 과도한 채무의 욕심으로 무너진 국제 금융의 폐허를 딛고 우뚝 설 것이며 중화문명은 찬란하게 빛날 것이다.“
 
 베이징 올림픽이 다시 열리는 줄 알았다. 결국 이 얘기 하려고 그렇게 빙빙 돌아왔다. 미국은 안 되니, 중국이 전세계 금융의 ‘제왕’이 되자는 말이다. 글로벌 거버넌스(세계적인 협력과 협치)를 통해 탐욕스러운 금융자본을 공동으로 통제하자는 주장은 하지 못할망정, 자기 나라만 우뚝 세계의 중심에 서겠단다. 중국에서 왜 이 책이 그렇게 잘 팔렸는지 쉽게 이해간다.

 마지막으로 가장 웃긴 사실 하나. p. 229을 보면, 금융 자본의 이해를 대변하는 외교협회 회원들이 미국의 메이저급 매체에 포진해 여론을 왜곡한다고 한다. 저자가 지적한 매체 중 출판 업계에는 ‘랜덤하우스’라는 출판사도 있다. ‘화폐전쟁’은 ‘랜덤하우스 코리아’에서 나왔다. 금융자본을 위해 여론을 왜곡한다는 출판사의 한국 법인에서, 금융자본을 신랄하게 비판하는 책을 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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