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인 오늘의 일본문학 6
요시다 슈이치 지음, 이영미 옮김 / 은행나무 / 2008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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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마부키 사토시, 후카쓰 에리 주연이 영화. 그리고 재일 3세 감독 이상일...
악인을 처음 알게 된 건 영화 예고를 통해서였다.
그리고 영화가 요시다 슈이치 소설 원작으로 만들어졌다는 걸 알고 무조건 책을 먼저 봐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렇게 잊고 있었던 영화와 소설....
지인에게 일본소설을 추천하면서 요시다 슈이치의 이름이 거론되면서 버뜩 떠올라 이제야 겨우 읽게 되었다.

요시다 슈이치는 [동경만경],[퍼레이드] 등의 소설도 익히 알고 있을텐데
나는 개인적으로 [랜드마트],[첫사랑온천]으로 그를 접했다.
그리고 그의 감성에 잠깐 빠졌던 적도 있다.
그는 도시의 일상과 그 속에 있을 법한 인간에 대한 묘사가 탁월하다.
과장도 포장도 없이 그냥 건조하면서도 가장 설득력있고, 오히려 독자의 마음을 흔들고 동감을 불러일으킨다.
배경과 풍경 등의 묘사도 영상을 보여주는 듯 섬세하고 감각적이다.
 동시대적인 감수성을 잘 포착해내고 있어 일본의 '팝 문학'의 정점이라는 평을 받고 있는데
같은 '팝 문학' 고수들인 무라카미 하루키와 무라카미 류와는 뭔가 다른 감성과 문체라는 점에서 흥미롭다.

그런 그가 자신의 작품중에 최고의 작품이라 자신있게 말한 것이 바로, [악인].
다 읽고 나서 그 이유를 조금 알 수 있었다.
그가 말하고자 하는 악인은 과연 누구일까??

 

사건...그리고 살인자. 뒤늦은 만남

후쿠오카와 사가를 연결하는 263번 국도의 미쓰세 고개에서 한 여자의 시체가 발견된다.
그녀는 살해되던 날 밤, 친구들에게 남자친구와 만난다고 거짓말을 하고 그녀들과 헤어졌다.
그러나 실제로 그녀가 만나기로 한 상대는 만남 사이트에서 알게 된 남자였다.
경찰은 남자친구로 알려진 대학생이 행방불명 상태인걸 알게되자 그를 강력한 용의자로 지명수배하게 된다.
그리고 그녀와 문자를 주고 받던 이들을 상대로 조사를 해 나간다.

그 속에서 밝혀지는 새로운 사실들.
결국 범인은 만남 사이트에서 알게 된 건설노동자 유이치인게 밝혀지면서 사건은 새롭게 변모해간다.
무참히 목이 졸려 유기된 가여운 피해자였던 여성은 가볍게 남자를 만나 관계를 가지고 돈을 요구하는 그렇고 그런 여자가 되버린다.
사랑했던 딸을 졸지에 잃은 부모는 그 아픔과 함께 세상의 비난과 따가운 눈초리까지 견뎌내야만 한다.

그리고 그. 부모에게 버림 받고 어릴 적부터 조부모와 함께 살며, 동네 노인들 심부름이나 하며 따분한 청춘을 보내고 있는 유이치.
자동차 잡지에도 실릴 정도로 자동차를 멋지게 개조하고 드라이브로 일상을 탈피해 보려하지만
언제나 마음 속 깊은 곳의 상실감은 채울 수가 없다. 단지 누군가와 만나 뭔가를 나누고 싶다. 함께해 나가고 싶다.
그런 마음이었건만 현실에서 왜곡되고 좌절되며 그는 결국 살인을 저지르게 된다.

그리고 또 다른 그녀 미쓰요. 한적한 도로 양복매장에서 반복되는 일상 속, 변할 수 없는 자신의 처지에 우울해하는 여자가 있다.
사랑을 해본지도 오래다. 삶의 희망도 행복도 없다. 우울하고 소심했던 그녀는 유이치를 만나고 새로운 용기를 얻게 된다.
이 사람과 함께라면 변할 수 있다. 스스로도 놀랍고 행복하다. 그를 놓치고 싶지않다.

유이치와 미쓰요는 서로를 만나는 순간 알게된다. 이제껏 자신들이 원한 누군가...그리고 무언가...서로를 채울 수 있는 유일한 존재.
하지만 왜 이제야 나타났나....이미 그는 세상 모든 이들에겐 용서 받을 수 없는 악인이 되어 버린 후다.

 

진정한 악인은 누구인가

글을 읽는 내내 무거운 마음을 감추 수가 없었다. 한 사건을 둘러싸고 있는 인간 심연에 있는 '악의'.
'선과 악','강자와 약자'에 대한 작가의 날카로운 묘사와 인간 본성에 대한 물음.
작가는 이글을 통해 진정한 악인은 누구인가 다시금 생각하게 만든다.

사건을 조사하는 과정에서 피해자의 친구들, 피해자와 만남을 가졌던 이들의 심리,
그리고 살인의 원인을 제공한 피해자가 짝사랑한 대학생의 행동과 피해자 가족의 심정....
오로지 서로를 채워줄 사람을 필요로 했던 두 남녀의 엇갈린 만남과 욕정.
이 모든것을 어루만지다 보면 누가 가해자인지 누가 피해자인지 모호해진다.
자신이 악인인 줄도 모르고, 끔찍한 악행을 저지르고 마는 이들. 죄는 짓지 않았다. 그렇다면 그들은 악인일까 아닐까.
작가는 유이치를 변호하지 않는다. 다만 그가 악인이 되어가는 과정, 사회의 시선과 통념을 그대로 보여줄 뿐이다.


약자가 악인이 되어가는 지금의 현실. 진정한 악인은 누구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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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든 슬럼버 - 영화 <골든슬럼버> 원작 소설 Isaka Kotaro Collection
이사카 고타로 지음, 김소영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08년 6월
평점 :
절판


온 세상이 추격하는 남자...
그리고 두려운 듯, 그러나 왠지 모를 강인함과 슬픔이 느껴지는 남자의 눈.
골든 슬럼버는 표지의 글귀와 사진이 우선 나를 사로잡았다.
이사카 코타로의 작품이자, 내가 한창 일본에 있을 때 영화화 되어 관심을 갖고 있던지라 꼭 읽어보려고 벼르고 있던 작품이기도 했다.

서면에 알라딘 오프매장이 생기고, 목요일마다 읽고 싶던 아이들을 한 권씩 뽑아들 때마다의 그 즐거움...
그 즐거움을 두번째로 느낄 때 내 손에 쥐어진게 이 골든 슬럼버다.
 

사건은 새로운 총리가 그의 출신지인 센다이에서 기념퍼레이드를 하기로 한 날 시작된다.
센다이 역을 가득채운 환영인파들 사이에서 폭탄을 장치한 무선헬기가 나타나고
총리가 탄 차를 향해 돌진...그리고 총리는 그 자리에서 목숨을 잃고, 온나라가 발칵 뒤집힌다.

그리고 총리암살범으로 수면에 떠오른 남자.
난데없이 총리암살범으로 지목된 한 남자가 누명을 벗기위해, 살아남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3일간.
그리고 사건 직후와 사건 20년 후, 석달 후를 각각 그 시점에 놓여진 인물들의 시선을 통해 서술해 나간다.

특별한 장점도 뒷배경도 없는 평범한 한 남자. 그가 가진 무기라고는 대학 친구에게 배운 밭다리후리기 기술 뿐이다.
그런 그를 온 세상이 주목하고 추격한다.
순식간에 암살범으로 지목 된 그의 일거수 일투족, 과거의 모든 기록들이 매스컴에 노출되고
하나하나 짜맞춰진듯 그를 범인으로 몰아가는데.....

졸지에 도망자가 된 그는 최근 일어난 이상한 일들이 그를 암살범으로 몰고가기 위한 음모였다는 걸 깨닫게 되고
살아남기 위해, 세상을 향해 자신의 무고함을 알리기 위해 모든 걸 걸고 모험에 뛰어든다.
그리고 그 속에서 등장하는 지원군들....옛애인, 옛친구와 후배, 직장 선배, 예전 알바 사장, 그가 도와준 아이돌...
그를 기억하며 신뢰하고 있던 이들과의 교감. 그 믿음들이 그를 버틸 수 있게 도와준다.

과연 그는 누명을 벗고 살아남을 수 있을까?
총리 암살과 관련된 무서운 음모....그 뒤엔 누가 있는 것일까?

 


이야기는 사건의 시작- 사건의 시청자- 사건 20년 뒤- 사건- 사건의 석달 뒤의 구성으로 진행된다.
그리고 각 시점에서 여러 인물의 입을 통해 사건이 서술되기 때문에
이야기에 대한 몰입도도 높아지고, 흥미있게 책을 넘길 수 있다. 
과거의 말, 행동들이 그를 이끌어주고 사건 해결의 실마리가 된다는 점에서
소설 곳곳에 숨어있는 복선들을 찾아내는 재미도 솔솔하다.

최근 일본에서 촉망받는 차세대 작가 이사카 코타로...
내가 알고 있는 책만해도 몇편이나 영화화 될 정도로 그는 인기작가이자, 이야기꾼이다.
구성의 치밀함과 그 속에 숨어있는 사회에 대한 문제의식.
사건을 풀어가는 스릴 속에서 그는 항상 사회의 어둡고 추한 단면을 끄집어내 독자들을 생각하게 만든다.
골든 슬럼버 속에서도 거대한 힘(정부, 조직...등의)과 매스컴의 추악함을 가감없이 보여주고 있다.
이사카 코타로...앞으로도 그의 작품을 기대해봐도 좋을 것 같다.

영화는 이 이야기를 어떻게 풀어갈 지 궁금하다. 조만간 찾아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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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신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 창해 / 200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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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오랜만에 히가시노 게이고의 작품 하나를 손에 들었다.
그가 다루는 주제들과 캐릭터설정, 문체스타일을 제법 좋아하면서도
정작 그의 작품은 그다지 많이 읽지 못한 걸 깨닫고, 그의 예전 작품을 탐독해보기로 했다.
그 중 우연히 서점에서 뽑아든게 <변신>...

책 표지에 써 있던
'내 머릿속에 다른 사람의 뇌가 들어 있다. 나는 과연 여전히 나인가" 라는 글귀가 날 이끈 이유다.
제법 오래전에 쓰여진 소설임에도 불구하고 그 설정이 파격적이었고, 역시 히가시노답다는 생각이 들었다.


평범하고 소심한, 현실에 순응하고 만족하며 살고 있던 20대 청년인 나루세 준이치.
어느 날 뜻하지 않은 사건에 휘말려 머리에 총격을 당하고 쓰러진다.
다시 눈을 뜬 순간, 그는 세계 최초로 시도된 뇌 이식 수술을 통해 기적적으로 살아난 영웅이 되어 있었다.
하지만 하루하루 지날수록 그에겐 이해하기 힘든 변화가 계속되는데....
 그토록 사랑스럽던 여자친구 메구미에 대한 감정의 변화,
그의 유일한 취미이자 삶의 활력소였던 그림그리기는 더 없이 고통스러운 작업으로 변해버리고
순응적이고 소심했던 그의 성격 또한, 폭력적이고 비판적이며 거칠게만 변해간다.

자신의 이런 변화에 의문을 가지기 시작한 준이치. 하지만 자신을 수술한 도겐박사는 그의 의문을 부정하고 숨기려고만 한다.
자꾸만 변해가는, 내가 아닌 자신에게 조종 당하며 불안감을 느낀 준이치는 스스로, 숨겨진 고리들을 풀어나가기 시작한다.
그리고 밝혀지는 진실들...그에게 대체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인가...


알 수 없는 무언가에 의해 자신의 인격이 점점 변해가는 것을 느낀다....얼마나 두렵고 슬픈 일일까?
"오늘의 나는 어제의 내가 아니야. 내일 눈을 떴을 때 거기에 있는 건 또 오늘의 내가 아니겠지.
내가 그동안 만들어온 삶의 발자국들이 모두 사라지고 있어."
세계 최초의 뇌 이식 수술...
혁명적인 성공이 될 수 있었던 그 수술은 결국 인간의 그늘진 욕망과 허영에 의해 한 인간을 괴물로 만들어버린 것이다.
히가시노 게이고의 소설의 매력은 이런 부분이다. 단순한 사건과 해결이 아닌 사회의 단면과 인간의 군상을 작품 속에 녹여 보여주는 것.
이공계 출신다운 과학적 소재들과 철저한 조사들을 토대로 이음새 강한 스토리를 이끌어낸다.
그리고 소설 속에 여러가지 장치들로 인해 독자들에게 이해와 관심을 더욱 불러일으킨다.
<변신>에서도 주인공이 점점 변해가는 과정을 도겐박사와 메구미의 메모(일기)등을 통해 정리해주는 게 색다른 느낌이 들어 좋았다. 
이러한 히가시노 소설의 매력, 뚜렷한 캐릭터들과 놓여진 상황들 때문인지 히가시노의 소설은 드라마나 영화화 되는 게 많은데,
<변신> 역시 타마키 히로시와 아오이 유우 주연으로 영화화 되었다고 한다.
소설에 비해 러브스토리에 편중 한 듯 하지만, 기증된 뇌로 인해 기증자의 인격으로 점점 변해 간다는 설정은 영화 속에서도
충분히 극적인 재료가 될 수 있었을 것이다.더 이상 이전에 내가 아닌 나. 그리고 사랑했던 여인...변해가는 감정들...두려움..
기회가 되면 한번 봐야겠다. 


히가시노의 소설은 역시 스토리 설정이나 아이템 면에서는 정말 매력적이고 헉! 하게 만드는 뭔가가 있다.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역시 마무리는 항상 조금씩 기운이 빠진다.
이렇게까지 달려가서 대체 어떻게 마무리를 지을까? 즐거운 상상을 하며 숨가쁘게 추격하다보면
어느순간 마지막 장이 돼버린다. 또 다른 방향을 나 조차 제시할 수는 없지만...뭐랄까...좀 더 쌈빡(?)한 걸 원한다는...ㅎㅎ

 

 


+
역시 빠뜨릴 수 없는 표지 비교

한국표지는 한 남자의 사진을 미묘하게 흐트러놨는데, 첨에 봤을때는 솔직히 촌스럽다는 생각이 들었고
내용을 살펴보면서 나름 무엇을 의도하는 지는 알 수 있었다. 그래도 역시...쫌...

일본표지는 뇌 수술이라는 설정을 형상화해서 디자인을 한 거 같은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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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타민 F - 제124회 나오키상 수상작
시게마츠 기요시 지음, 김난주 옮김 / 양철북 / 201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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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요즘 너무 추리소설이나 어두운 소설을 많이 읽은 것 같아 기분전환 겸 가볍고 소소하게 미소지어지는 책이 없을까 둘러보다가 제목과 표지, 그리고 소개글이 마음에 들어 집어든 책이다. 거기다 나오키 수상작이니 작품성은 있겠구나 싶었고, 언제 수상한거지 싶어서 발행 날짜를 보니 2010년이길레 얼마 안된 것 같아 '오~라키다네~~(럭키네)'하며 흐뭇하게 집으로 돌아왔다. 

그런데 이 책, 나오진 꽤 된 책이었다. 2000년도 나오키 수상작이었고, 2003년 소담출판사에서 출간되었다가 이번에 양철북에서 새롭게 편집되어 나온 것이다. 왠지 속은 것 같은 기분....하지만 다시 편집되어 나올 정도면 작품적인 면에서는 인정 받은 것이라는 생각에 쿨하게 받아들이고 책장을 넘겼다.


작가는 Family,Father,Friend,Fight,Fragile,Fortune....F로 시작되는 다양한 말을 각 이야기의 키워드로 삼았다고 한다. 탄수화물이나 단백질, 칼슘 같은 소설이 있다면, 다른 한편에 비타민 같은 작용을 하는 소설이 있어도 좋지 않을까하는 생각을 담아 일곱 편의 짧은 이야기를 빚어보았다는 작가후기가 인상적이었다. <시게마츠 기요시>의 작품은 처음으로 접했다. 그는 현대사회를 살아가는 개인의 모습을 섬세하게 그려내며, 특히 청소년과 어른이 겪는 성장통을 테마로 한 화제작을 꾸준히 발표해 대중성과 작품성을 동시에 인정받고 있는 일본의 중견작가라고 한다. 그래서인지 일상적 공간에서 일어나는 사건을 꾸밈없이, 과장없이 묘사한 이 작품은 심심한 듯 하지만 그 속에 현대인들의 고독과 서글픔이 잘 녹아나 있는 것 같다. 

소설은 모두 일곱개의 짦은 이야기로 이어진다. 거칠고 반항적인 젊은 애들 앞에서 주눅이 들어 몸을 사리는 중년 남자, 어린 줄로만 알았던 딸아이가 어느새 여자가 되어버린 것을 깨닫고 당혹스러운 중년의 아빠, 아내의 입원으로 아들과 단둘이 되어버리자 어색하기만 한 중년의 아버지, 모두에게 완벽하고 여유롭게 보이기 위해 노력하지만 그로 인해 오히려 소외받는 중년의 가장, 지금의 현실에 답답함을 느끼며 첫사랑과의 추억속에서 갈등하는 중년의 남편, 밝기만 한 딸 아이가 학교에서 왕따라는 사실을 알면서도 선뜻 나서지 못하는 중년의 가장, 어느날 늙은 아버지를 버리고 집을 나가버린 어머니를 이해하지 못하고 반듯한 자신의 가정이 옳고 행복하다고 생각하는 가정적인 남자. 이렇게 각각 일곱명의 남자들의 이야기다.

열거했듯이 모두 남편, 가장이자 아버지. 즉, 이 시대 중년 남성들이 주인공들이다. 그들은 남편, 가장, 아버지이기 이전에 하나의 인간으로서 현실과의 문제에 부딪치고 있다. 남들에게 뒤쳐지지 않으려고, 내 가족과, 이제껏 살아온 인생을 지켜나가기 위해 노심초사 발버둥치는 고단한 중년... 하지만 어느 순간 일상에서 나약한 자신을 깨닫고 쓸쓸해하며, 가족들에게서 소외받고 허탈해하는 신세로 전락해버릴 위기에 처해있다. 왜 이렇게 되버린걸까? 그들은 이제 어떻게 해야 하는 것인가? 원인도 해결책도 없다. 그냥 그들의 이야기가 담담하게 서술되어 있을 뿐. 작가는 그들의 애달픈 어깨를 조용히 연민의 눈길로 바라볼 뿐이다. 그리고 그들이 스스로 일어나길 기다린다. 그래서일까 그렇게 흥미롭지도 신나지도 않은 이야기였지만, 마지막 페이지를 덮고 난 후, 그냥 가는 한숨 한번 쉬어주고 "으싸!" 하며 어깨에 힘을 싣고 있는 나를 발견했다. 상큼하진 않지만 비타민 같이 일상에 조그마한 응원이 되는 소설이다.

솔직히 에피소드 전체가 30대 후반의 남성의 이야기라 나에게 큰 공감을 불러일으키거나 하진 않았지만, 왠지 중년 남성들의 마음을 조금은 알 수 있게 된 것 같다. 작가가 1963년 생이니까 이 작품을 쓴 게 딱 30대 후반의 나이다. '그래서 그랬구나. 너무 감정이입하신 거 아닌가? ㅎㅎ'  라고 생각할 정도로 작가는 그 나이의 남성에게 연민의 감정을 토해내고 있다. 10여년전 작품이라 지금은 또 조금 달라진 상황도 있겠지만 그래도 중년 남자들의 소외감을 오늘부터 조금은 어루만져주련다. 지하철에서 더이상 기분 나쁜 변태아저씨로만 쳐다보진 않을께요. 힘내세요 오야지!!



 

+ 일본 표지

역시 일본 표지를 확인 안 해보면 서운할 것 같아서 또 찾아봤습니다!!!



엥? 뭔가 심심하네요. 이야기의 내용에는 부합하는 듯 하지만 뭔가 제목과는 도통 융합되지 않는게
이번에는 한국 표지에 한 표 주겠습니다. 한국 표지는 약간 코믹한 느낌으로 제목의 상큼함과 조화를 이루고,
중년남성을 수퍼맨과 비유한 것에서 참신함도 돋보이네요. 일러스트님 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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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탐정의 저주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이혁재 옮김 / 재인 / 201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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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학교 시절, 유일하게 혼자만의 공간일 수 있었던 조그마한 다락방.
제대로 다리를 펴지도 일어서지도 못하는 수납창고만한 다락은, 소녀에게는 더 없이 편안하고 비밀스러운 곳이었다. 그 곳에서 소녀는 미래의 꿈을 상상하고 혼자만의 독서에 심취해서 시간이 가는 줄도 몰랐다. 그때 그 소녀가 한창 빠져 있었던 것이 셜혹홈즈 시리즈, 뤼팡 시리즈였다. 얇은 문고본으로 끊임없이 이어지는 그 시리즈물이 어찌나 긴장되고 흥미로웠던지, 마치 스스로 탐정이나 된 양 함께 사건을 풀어가려고 이리저리 머리를 굴러봤지만 그게 가당티나 했나. 늘 마지막 반전에 와와~~감탄만 했었다.

나에게 탐정물은 그런 애잔한 그리움을 불러일으키는 장르다.
하지만 역시나 시대는 변하고 추리소설은 더 이상 탐정놀이만으로 인기를 끌지 못한다. 모든 것을 꽤뚫는 해결사가 이리저리 머리를 굴려 수수께끼를 풀고, 범인이 쓴웃음을 지으며 모든 정황을 실토해버리는 상황은 작위적이고 현실성없다고 까다로운 독자들에게 점점 외면 당하고 있다. 좀 더 스릴과 긴장감을 불러일으킬 사건과 캐릭터. 비틀어진 현실세계에 대한 반영, 더 이상 해피엔딩이 아닌 반전, 또는 톡톡 튀는 새로운 설정과 재미 등. 지금의 추리소설은 복잡미묘하게 여러부분이 얽혀있는 듯하다. 아니 어쩌면 내 시야가 이제는 다락이 아닌 좀 더 넒은 세상으로 펼쳐졌기에 이렇게 느끼는 건지도 모르겠다. 내 생각을 비웃듯 탐정의 세계는 언제까지나 건재할지도 모른다.
 
히가시노 게이고의 소설에서는  비극적인 사건과 수수께끼같은 인물들이 등장한다. 그리고 그 속에서 뜨거운 인간성을 느낄 수 있어 좋아한다. 그들은 단순히 악인도 선인도 아닌 살아가기 위해 발버둥치는 인간이며, 그렇기에 원치않는 많은 비극들과 맞닿게 된다. 작가는 사건의 발생과 그 해결과 결말에 달려가는 듯 하지만 이야기 속에서 조금씩 흘러나오는 인간에 대한 애정과 연민이 느껴져 그의 소설이 마음에 들었다.

그렇다면 그가 그리는 탐정세계는 어떨까? 많은 독자들의 호불호가 극명하게 갈리는 소설이라는 건 얼핏 알고 있었다. 솔직히 책장 사이에서 이 제목이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면 일부러 찾았을 일도 없었을거다. 전작 <명탐정의 규칙>을 읽어보지 않아 망설여졌지만 가벼운 마음으로 읽어보자 생각하고 뽑아들고는 집으로 돌아왔다.

에필로그를 읽고 나름 기대감을 안고 책장을 계속 넘겼다. 하지만...읽으수록 '어? 이거뭐지?' '.....장난하냐?' 조금씩 배신감이 밀려들어왔다. 과거 봐왔던 탐정물(그는 이 소설에서 본격 추리라고 명했지...)의 패턴을 보란듯이 나열해 놓았다. 마치 작가가 의도적으로 대놓고 적었다는 생각밖에 들지 않았다. 밀실 살인이니 폐쇄된 산장이니...거기다 이건 그냥 탐정소설마을이다. 그 속의 인물들만 모르고 있다. 하지만 후반에 접어들면서 작가가 어떤 마음으로 이 책을 썼는지 짐작할 수 있었다. 그리고 책을 읽고 나서야 알았는데, 히가시노 게이고는 <명탐정의 저주>를 쓴 1996년을 기점으로 본격 추리의 상투성을 모두 배제하고 추리소설의 새로운 방향을 모색하였다는 기사가 있었다. 한 마디로 이 책은 히가시노 게이고가 본격 추리 소설에 마지막을 고하는 자전적 소설인 셈이었다. 다시는 이곳에 돌아오지 않을 작정이라며 “명탐정 따위의 우스운 캐릭터는 이쯤에서 죽어 줘야겠어”라고 등장인물의 입을 통해 자신의 마음을 고백한 그. 그는 시대가 변하는 걸 한발 앞서 깨닫고 자신의 길을 모색한 것이다. 글 속에서 "리얼리티,현대적 감각,사회성 이 세가지를 큰 축으로 삼고 싶어요. 그러지 않으면 앞으로 추리 소설계는 살아남을 수 없어요, 트릭이라든지 범인 알아맞추기 따위로는 어렵습니다."라고 직접 말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는 여전히 본격 추리를 사랑했고 그 세대 사람들처럼 그 속에 추억을 잔득 가지고 있었던 것일테다. 이 소설은 그가 가진 본격 추리에 대한 애증이 고스란히 드러나있다. 그 마을에서의 마지막 시간...그는 어떤 마음으로 이 글을 썼을까?


간단한 소설의 줄거리는 이렇다. 주인공인 소설가는 어느날 도서관에서 길을 잃고 어떤 세계로 이끌려간다. 그곳에서 자신은 덴카이치라는 탐정으로 알려져있고, 그 역시 이상하게도 자신이 탐정으로서 해결해온 사건들을 기억하고 있다. 그는 마을의 시장을 만나 도굴당한 마을의 중요한 무언가를 찾아달라는 의뢰를 받게된다. 그는 도굴품과 연관된 사람들을 한명씩 만나기로 하는데 번번히 그와의 약속장소에서 차례차례 죽음을 당한다. 사라진 도굴품은 마을의 비밀을 풀 열쇠임에 틀림없고 그 비밀은 마을에 엄청난 파장을 일으키게 된 것인데...사건의 관련자들과 모두 모인 별장에서의 밤. 차례차례 의문의 살인을 당하고, 결국 사건의 진상을 알게 된 덴카이치는 마지막 해결을 위해 직접 나선다. 그리고 오래 전 숨겨왔던 마을의 진실이 밝혀진다.


소설의 마지막, 작가의 마음을 느낄 수 있었던 대목이 이어진다.
[꽤 오래전 나는 내 마음에 드는 세계를 만들려고 했다. 그것이 행복이었다. 그 세계가 다른 사람들에게 어떻게 보일지에 대해서는 관심없었다. 나 자신이 기분 좋게 놀 수 있는 곳이기만 하면 그만이었다. 그런 감정을 잊어버린 게 언제부터인지 생각해 보았다. 너무도 아득한 옛날의 일이라 정확히 기억나지 않는다. 하지만 분명 나에게도 그런 시절이 있었다. 모래 사장에 성을 쌓고 있는 아이들은 다른 아이들의 눈 같은 건 개의치 않는다. 그 아이의 성은 그 아이에게만 보이는 것이다. 나는 지난날 내가 만들었던 몇 개의 모래성을 떠올렸다. 슬프게도 나는 그 성들을 모조리 내 발로 밟아 무너뜨렸다. 그때 내가 내뱉은 말들이 지금도 기억난다. "이 형편없는 것들, 이 유치한 것들, 이 비현실적인 것들, 이 부자연스러운 것들...." 그렇게 고함쳤다. 나는 내 스스로 애써 만든 성을 마치 과거의 수치인 양 느꼈다. 그리고 나 자신의 모습까지도 모두 잊어버리려고 애썼다.]
 

이야기 자체의 긴장도나 구성에서는 실망한 소설이지만, 히가시노 게이고라는 작가에 대해 좀 더 알게 된 소설이었다. 급변하는 시대, 변해가는 건 패션과 기술, 기계들 뿐만이 아니다. 문학 또한, 아니 문학이야 말로 시대의 흐름에 한 발 앞서 걷지않는다면 도태되어버릴지도 모른다. 그런 현실에서 자신이 나아가야 할 곳은 어딘지 모색하고 협상할 줄 아는 작가이기에 지금의 자리에 설 있을 수 있는 것일테다. 또 다른 면에서 많은 것을 배운 소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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