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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타민 F - 제124회 나오키상 수상작
시게마츠 기요시 지음, 김난주 옮김 / 양철북 / 2010년 11월
평점 :
품절
요즘 너무 추리소설이나 어두운 소설을 많이 읽은 것 같아 기분전환 겸 가볍고 소소하게 미소지어지는 책이 없을까 둘러보다가 제목과 표지, 그리고 소개글이 마음에 들어 집어든 책이다. 거기다 나오키 수상작이니 작품성은 있겠구나 싶었고, 언제 수상한거지 싶어서 발행 날짜를 보니 2010년이길레 얼마 안된 것 같아 '오~라키다네~~(럭키네)'하며 흐뭇하게 집으로 돌아왔다.
그런데 이 책, 나오진 꽤 된 책이었다. 2000년도 나오키 수상작이었고, 2003년 소담출판사에서 출간되었다가 이번에 양철북에서 새롭게 편집되어 나온 것이다. 왠지 속은 것 같은 기분....하지만 다시 편집되어 나올 정도면 작품적인 면에서는 인정 받은 것이라는 생각에 쿨하게 받아들이고 책장을 넘겼다.
작가는 Family,Father,Friend,Fight,Fragile,Fortune....F로 시작되는 다양한 말을 각 이야기의 키워드로 삼았다고 한다. 탄수화물이나 단백질, 칼슘 같은 소설이 있다면, 다른 한편에 비타민 같은 작용을 하는 소설이 있어도 좋지 않을까하는 생각을 담아 일곱 편의 짧은 이야기를 빚어보았다는 작가후기가 인상적이었다. <시게마츠 기요시>의 작품은 처음으로 접했다. 그는 현대사회를 살아가는 개인의 모습을 섬세하게 그려내며, 특히 청소년과 어른이 겪는 성장통을 테마로 한 화제작을 꾸준히 발표해 대중성과 작품성을 동시에 인정받고 있는 일본의 중견작가라고 한다. 그래서인지 일상적 공간에서 일어나는 사건을 꾸밈없이, 과장없이 묘사한 이 작품은 심심한 듯 하지만 그 속에 현대인들의 고독과 서글픔이 잘 녹아나 있는 것 같다.
소설은 모두 일곱개의 짦은 이야기로 이어진다. 거칠고 반항적인 젊은 애들 앞에서 주눅이 들어 몸을 사리는 중년 남자, 어린 줄로만 알았던 딸아이가 어느새 여자가 되어버린 것을 깨닫고 당혹스러운 중년의 아빠, 아내의 입원으로 아들과 단둘이 되어버리자 어색하기만 한 중년의 아버지, 모두에게 완벽하고 여유롭게 보이기 위해 노력하지만 그로 인해 오히려 소외받는 중년의 가장, 지금의 현실에 답답함을 느끼며 첫사랑과의 추억속에서 갈등하는 중년의 남편, 밝기만 한 딸 아이가 학교에서 왕따라는 사실을 알면서도 선뜻 나서지 못하는 중년의 가장, 어느날 늙은 아버지를 버리고 집을 나가버린 어머니를 이해하지 못하고 반듯한 자신의 가정이 옳고 행복하다고 생각하는 가정적인 남자. 이렇게 각각 일곱명의 남자들의 이야기다.
열거했듯이 모두 남편, 가장이자 아버지. 즉, 이 시대 중년 남성들이 주인공들이다. 그들은 남편, 가장, 아버지이기 이전에 하나의 인간으로서 현실과의 문제에 부딪치고 있다. 남들에게 뒤쳐지지 않으려고, 내 가족과, 이제껏 살아온 인생을 지켜나가기 위해 노심초사 발버둥치는 고단한 중년... 하지만 어느 순간 일상에서 나약한 자신을 깨닫고 쓸쓸해하며, 가족들에게서 소외받고 허탈해하는 신세로 전락해버릴 위기에 처해있다. 왜 이렇게 되버린걸까? 그들은 이제 어떻게 해야 하는 것인가? 원인도 해결책도 없다. 그냥 그들의 이야기가 담담하게 서술되어 있을 뿐. 작가는 그들의 애달픈 어깨를 조용히 연민의 눈길로 바라볼 뿐이다. 그리고 그들이 스스로 일어나길 기다린다. 그래서일까 그렇게 흥미롭지도 신나지도 않은 이야기였지만, 마지막 페이지를 덮고 난 후, 그냥 가는 한숨 한번 쉬어주고 "으싸!" 하며 어깨에 힘을 싣고 있는 나를 발견했다. 상큼하진 않지만 비타민 같이 일상에 조그마한 응원이 되는 소설이다.
솔직히 에피소드 전체가 30대 후반의 남성의 이야기라 나에게 큰 공감을 불러일으키거나 하진 않았지만, 왠지 중년 남성들의 마음을 조금은 알 수 있게 된 것 같다. 작가가 1963년 생이니까 이 작품을 쓴 게 딱 30대 후반의 나이다. '그래서 그랬구나. 너무 감정이입하신 거 아닌가? ㅎㅎ' 라고 생각할 정도로 작가는 그 나이의 남성에게 연민의 감정을 토해내고 있다. 10여년전 작품이라 지금은 또 조금 달라진 상황도 있겠지만 그래도 중년 남자들의 소외감을 오늘부터 조금은 어루만져주련다. 지하철에서 더이상 기분 나쁜 변태아저씨로만 쳐다보진 않을께요. 힘내세요 오야지!!
+ 일본 표지역시 일본 표지를 확인 안 해보면 서운할 것 같아서 또 찾아봤습니다!!!
엥? 뭔가 심심하네요. 이야기의 내용에는 부합하는 듯 하지만 뭔가 제목과는 도통 융합되지 않는게이번에는 한국 표지에 한 표 주겠습니다. 한국 표지는 약간 코믹한 느낌으로 제목의 상큼함과 조화를 이루고, 중년남성을 수퍼맨과 비유한 것에서 참신함도 돋보이네요. 일러스트님 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