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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인 ㅣ 오늘의 일본문학 6
요시다 슈이치 지음, 이영미 옮김 / 은행나무 / 2008년 1월
평점 :
쓰마부키 사토시, 후카쓰 에리 주연이 영화. 그리고 재일 3세 감독 이상일...
악인을 처음 알게 된 건 영화 예고를 통해서였다.
그리고 영화가 요시다 슈이치 소설 원작으로 만들어졌다는 걸 알고 무조건 책을 먼저 봐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렇게 잊고 있었던 영화와 소설....
지인에게 일본소설을 추천하면서 요시다 슈이치의 이름이 거론되면서 버뜩 떠올라 이제야 겨우 읽게 되었다.
요시다 슈이치는 [동경만경],[퍼레이드] 등의 소설도 익히 알고 있을텐데
나는 개인적으로 [랜드마트],[첫사랑온천]으로 그를 접했다.
그리고 그의 감성에 잠깐 빠졌던 적도 있다.
그는 도시의 일상과 그 속에 있을 법한 인간에 대한 묘사가 탁월하다.
과장도 포장도 없이 그냥 건조하면서도 가장 설득력있고, 오히려 독자의 마음을 흔들고 동감을 불러일으킨다.
배경과 풍경 등의 묘사도 영상을 보여주는 듯 섬세하고 감각적이다.
동시대적인 감수성을 잘 포착해내고 있어 일본의 '팝 문학'의 정점이라는 평을 받고 있는데
같은 '팝 문학' 고수들인 무라카미 하루키와 무라카미 류와는 뭔가 다른 감성과 문체라는 점에서 흥미롭다.
그런 그가 자신의 작품중에 최고의 작품이라 자신있게 말한 것이 바로, [악인].
다 읽고 나서 그 이유를 조금 알 수 있었다.
그가 말하고자 하는 악인은 과연 누구일까??
사건...그리고 살인자. 뒤늦은 만남
후쿠오카와 사가를 연결하는 263번 국도의 미쓰세 고개에서 한 여자의 시체가 발견된다.
그녀는 살해되던 날 밤, 친구들에게 남자친구와 만난다고 거짓말을 하고 그녀들과 헤어졌다.
그러나 실제로 그녀가 만나기로 한 상대는 만남 사이트에서 알게 된 남자였다.
경찰은 남자친구로 알려진 대학생이 행방불명 상태인걸 알게되자 그를 강력한 용의자로 지명수배하게 된다.
그리고 그녀와 문자를 주고 받던 이들을 상대로 조사를 해 나간다.
그 속에서 밝혀지는 새로운 사실들.
결국 범인은 만남 사이트에서 알게 된 건설노동자 유이치인게 밝혀지면서 사건은 새롭게 변모해간다.
무참히 목이 졸려 유기된 가여운 피해자였던 여성은 가볍게 남자를 만나 관계를 가지고 돈을 요구하는 그렇고 그런 여자가 되버린다.
사랑했던 딸을 졸지에 잃은 부모는 그 아픔과 함께 세상의 비난과 따가운 눈초리까지 견뎌내야만 한다.
그리고 그. 부모에게 버림 받고 어릴 적부터 조부모와 함께 살며, 동네 노인들 심부름이나 하며 따분한 청춘을 보내고 있는 유이치.
자동차 잡지에도 실릴 정도로 자동차를 멋지게 개조하고 드라이브로 일상을 탈피해 보려하지만
언제나 마음 속 깊은 곳의 상실감은 채울 수가 없다. 단지 누군가와 만나 뭔가를 나누고 싶다. 함께해 나가고 싶다.
그런 마음이었건만 현실에서 왜곡되고 좌절되며 그는 결국 살인을 저지르게 된다.
그리고 또 다른 그녀 미쓰요. 한적한 도로 양복매장에서 반복되는 일상 속, 변할 수 없는 자신의 처지에 우울해하는 여자가 있다.
사랑을 해본지도 오래다. 삶의 희망도 행복도 없다. 우울하고 소심했던 그녀는 유이치를 만나고 새로운 용기를 얻게 된다.
이 사람과 함께라면 변할 수 있다. 스스로도 놀랍고 행복하다. 그를 놓치고 싶지않다.
유이치와 미쓰요는 서로를 만나는 순간 알게된다. 이제껏 자신들이 원한 누군가...그리고 무언가...서로를 채울 수 있는 유일한 존재.
하지만 왜 이제야 나타났나....이미 그는 세상 모든 이들에겐 용서 받을 수 없는 악인이 되어 버린 후다.
진정한 악인은 누구인가
글을 읽는 내내 무거운 마음을 감추 수가 없었다. 한 사건을 둘러싸고 있는 인간 심연에 있는 '악의'.
'선과 악','강자와 약자'에 대한 작가의 날카로운 묘사와 인간 본성에 대한 물음.
작가는 이글을 통해 진정한 악인은 누구인가 다시금 생각하게 만든다.
사건을 조사하는 과정에서 피해자의 친구들, 피해자와 만남을 가졌던 이들의 심리,
그리고 살인의 원인을 제공한 피해자가 짝사랑한 대학생의 행동과 피해자 가족의 심정....
오로지 서로를 채워줄 사람을 필요로 했던 두 남녀의 엇갈린 만남과 욕정.
이 모든것을 어루만지다 보면 누가 가해자인지 누가 피해자인지 모호해진다.
자신이 악인인 줄도 모르고, 끔찍한 악행을 저지르고 마는 이들. 죄는 짓지 않았다. 그렇다면 그들은 악인일까 아닐까.
작가는 유이치를 변호하지 않는다. 다만 그가 악인이 되어가는 과정, 사회의 시선과 통념을 그대로 보여줄 뿐이다.
약자가 악인이 되어가는 지금의 현실. 진정한 악인은 누구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