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학자가 보여주는 새 이야기, 인간 이야기
서정기 지음 / 지식의날개(방송대출판문화원) / 202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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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방송통신대학교에서 조교로 일할 때 인연을 맺은 선생님이 쓰신 책이다. 우리나라와 세계 곳곳에서 만난 아름다운 새들이 선생님의 정감 어린 글과 함께 실려 있다. 

학과 조교와 TA를 합치면 꽤 오랜 세월 선생님을 뵈었는데, 그 오랜 시간보다 이 한 권의 책으로 선생님에 대해 더 많은 것을 알게 된 것 같다. 혜화동에서 파주로 근거지를 옮기면서 한 번도 연락을 드리지 못해서 근황을 알지 못했는데(얼마전에 은퇴하셨다는 것만 알았다), 이렇게 멋진 제2의 삶의 살고 계실 줄이야. 새로운 시작에 망설임이 없고 열정을 쏟아붓는 모습은 저 이국의 신비로운 극락조보다 더 감동적이고 존경스러웠다.

이제껏 도감에 실린 사진들을 볼 때 아무 감정이 없었는데, 이 책의 사진들이 어떤 지난한 기다림과 인내를 거쳐 선생님의 카메라에 담겼는지 그 과정을 알고 나니 사진 한 장 한 장이 소중하고 페이지를 넘기기가 아까울 정도였다. 이제 도감을 대할 때는 항상 그 사진을 찍은 이의 노고를 기억하고 넘어가게 될 것 같다. 

평소 까만 글자들만 잔뜩인 책을 읽을 때는 별 관심을 보이지 않던 우리 막내도 나와 함께 이 책을 두 번이나 읽었다. "엄마는 무슨 새가 제일 좋아?" "이건 암컷이야 수컷이야?" "(동물의 세계에서는 수컷이 암컷보다 아름답다고 설명해주자)난 암컷이 수컷보다 예뻤으면 좋겠어." "이 새는 어디에 살아?" 귀여운 뱁새처럼 어찌나 조잘대는지, 막내 손이 안 닿는 높은 칸에 책을 숨겨놓기도 했다. 

언젠가 탐조하는 사람들에 관한 소설을 읽은 적이 있다. 제목이며 저자는 도무지 기억이 안 나는데, 무슨 탐조 대회 이야기가 나왔던 것 같다. 누가 어떤 새를 얼마나 많이 보는지 내기를 하는 것이어서, 그들간의 경쟁이 무척 치열하고 모인 사람들 간에 본 새의 수와 종류를 놓고 온갖 실랑이가 벌어지는 게 탐조의 세계를 모르는 사람으로서는 좀 이해되지 않는 면도 있었다. 거기서 누군가 희귀한 새를 봤다는 얘기가 돌면 모두들 우르르 카메라를 들고 뛰는데, 선생님도 그러셨을 것을 생각하니 살짝 웃음이 나기도 했다. 반면 낯선 땅에서 벌레에 물려 고생하셨다는 대목에서는 안쓰럽고 걱정이 되기도 했다. 

탁란 이야기도 나오는데, 여기서 언급하신 다큐인지는 모르겠으나 나도 EBS에서 뻐꾸기가 탁란하는 방송을 본 기억이 있다. 남의 둥지에 알을 놓는 것도 어이없는 참이었는데, 글쎄 그 알에서 깬 놈이 원래 주인의 알이나 새끼를 둥지 바깥으로 밀어버리까지 했다. 뭘 알고 하는 짓이 아니라 한들 그 잔인함이 잘 용서되지 않았다. 하지만 우리 인간은 뭘 알고도 이보다 더한 이기적인 생존 본능을 다른 종에게, 같은 인간에게 망설임 없이 휘두르고 있지 않은가. 뻐꾸기 욕할 일이 아니었다. 새들의 서식지를 파괴하고 무분별하게 개발하는 것이야말로! 난개발로 여기저기 파헤쳐지고 있는 제주도, 예외는 아니다. 정말 슬픈 일이다. 자연을 조심스럽게 대할 줄 아는 탐조처럼, 그저 먼발치에서 바라만 보는 애틋한 마음과 예의바른 마음가짐이 필요하다. 

세상에 참새, 까치, 비둘기만 있는 줄 알았던 무지렁이가 이 책을 통해 얼마나 많은 아름다운 것들이 있는지 눈호강을 했다. 지금도 어딘가에서 열심히 새를 기다리고 있을 선생님이 늘 건강하시기를 진심을 담아 기도하며, 다음 이야기를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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