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디어 라이프 (무선) ㅣ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113
앨리스 먼로 지음, 정연희 옮김 / 문학동네 / 2013년 12월
평점 :
보통의 단편은 인생의 한 시점에서, 한 개 또는 두 개 정도의 사건이 엮이며 생기는 감정적 파동을 그린다. 그러나 앨리스 먼로의 단편은 종종 인생 전체까지 조망하기도 한다. 어떻게 짧은 분량에 인생을 다 담을 수 있느냐, 그건 장편의 영역 아니냐,라고 묻는다면 분명 그 말은 사실이다. 장편으로도 인생을 다 담을 수 없으니까.
작가가 인생을 조망한다고 해서 그것을 모두 농밀하게 담았다는 이야기는 아니다. 내가 말한 조망의 의미는 대략 이렇다. 한 시점에서 시작해 얼마 지나지 않은 시점에서 결말을 짓는 보통 단편들과 다르게, 그의 단편은 짧은 이야기 안에서 여러 시간을 흘려보낸다는 것. 중요한 부분조차 과감히 생략한다. 그러나 생각해보면 중요한 부분은 생략되는 게 아니라 원래 알 수 없던 부분이다. 알 수 없는 부분을 그대로 알 수 없게 서술할 뿐이다. 그는 이런 형식으로 인생을 말하고 싶었던 게 아닐까. 단편 「자갈」은 작가의 이야기 형식과 형식 자체가 주는 메시지가 잘 드러나는 단편이다.
한 여성이 과거를 회상하며 이야기가 시작된다. 어머니는 아버지와 이혼하고 새로운 남자와 채석장 옆의 트레일러에서 새살림을 차린다. 화자와 언니는 아버지를 따라가지 않고 어머니를 따라와 새 남자와 같이 산다. 그의 언니는 키우던 개를 친부의 집에 가져다 놓기도 하며 친부와 친모 모두의 관심을 바라지만, 양쪽 모두 큰 관심을 갖지 않는다. 많은 비가 내린 후에 채석장에 물이 깊게 고여 호수가 생긴다. 언니는 개와 함께 호수에 빠질 것이라 말한다. 그리고 자신이 물에 빠지면 화자에게 집에 돌아가 엄마와 엄마의 애인에게 이 사실을 알리라고 어린 화자에게 부탁한다. 화자는 트레일러까지 헐레벌떡 뛰어가지만, 정작 문 앞에서 1-2분을 망설인다. 도대체 왜?. 어머니가 호수로 뛰어간다. 언니는 죽는다.
화자는 평생 이 기억에 붙들려 산다. 심리 상담가는 엄마와 애인이 섹스하느라 문이 잠겨있었을 거라고, 화자가 문을 쾅쾅 두드렸으면 둘이 화냈을 거라고 상담을 유도하고 만족스러워한다. 그러나 그건 살아있는 사람의 죄책감을 덜어줄 뿐이지 결코 사실이 아니다. 언니는 무슨 생각으로 호수에 빠졌을까. 어머니의 관심을 돌리려던 극단적인 행동이었을까?. 많은 시간이 지나 만난 엄마의 애인은 말한다. "그런 건 중요하지 않아" 수영을 잘 해서 엄마가 올 때까지 버틸 수 있으리라 생각했을 수도 있고, 젖은 겨울옷이 얼마나 무거워질 수 있는지 몰랐을 수도 있고, 도울 수 있는 사람이 아무도 없다는 걸 몰랐을 수도 있고, 어쨌거나 아직도 이걸 생각하는 건 시간 낭비라고 말한다. 중요한 건 지금 네가 행복해지는 거라고. 화자는 그가 무슨 뜻으로 말하는지 안다. 그러나 여전히 화자는 기억에 붙들려 있고 엄마는 가끔 채석장 근처를 배회한다. 죽은 언니의 마음은 영원히 모를 것이고, 살아남은 사람들은 영원히 무거운 기억에 붙들려 살 것이다.
논리적으로 정합한 인생을 사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내가 '지금의 나'가 되는 과정에서 어떤 사건이 있었는지, 그게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정확하게 알 수 없다. 모든 기억은 파편화됐고 우리는 그 파편을 논리적으로 짜 맞추려 애쓸 뿐이다. 그런 면에서 우리의 과거란 합리화된 과거라고도 할 수 있다. 불완전한 기억에 대한 대처란 '잘못 알았을까 두려워 모르는 척(122)'하거나 '무거운 사건을 애써 지워버리는(137)'것 정도다.
다른 단편 「기차」의 남자는 중요한 순간마다 여자를 떠나는 데 이유는 끝까지 모호하다. 「아문센」의 의사는 왜 결혼을 앞둔 결정적인 순간에 그녀를 버렸을까? 「디어 라이프」에선 네터필드 부인의 사정을 먼 훗날 알게 되지만 누구보다도 그걸 알아야 할 어머니는 이미 세상을 떠난 후다. 진실은 끝까지 알 수 없거나 너무 늦게 밝혀진다. 진실을 알 수 없는 우리는 진실과 화해할 수 없고 스스로 용서한 자신과 화해할 뿐이다. 「자갈」의 화자처럼 기억에 붙들려 받는 고통은 도리어 윤리적이다. 끝까지 알 수 없지만 적어도 잊지 않았으므로.
이 책은 쉽게 읽히지 않는다. 시간과 사건을 휙휙 건너뛰는 서술 방식이 불친절하다. 그러나 빈칸은 빈칸으로 남을 때 더 중요한 의미를 가질 수 있다. 인생이 정답을 채워 넣는 괄호빵 시험지는 아니다. 결국 빈칸 채우기란 내 마음이 편한 답을 채우는 방식으로 이뤄질 것이다. 그게 아니라면 남은 삶의 양식은 채울 수 없는 공백지에 평생 붙들려 사는 것이나, 쉽게 잊고 남은 부분을 추스르는 것뿐이라 조금 슬프지만. 어쨌거나 알 수 없는 건 끝까지 알 수 없다는 것만이 작가가 말하는 진실이다. 작가는 마지막 소설 마지막 문장으로 이렇게 말한다. "사람들은 말한다. 어떤 일들은 용서받을 수 없다고, 혹은 우리 자신을 결코 용서할 수 없다고. 하지만 우리는 용서한다. 언제나 그런다." 하, 이것 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