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남자는 왜 이상해졌을까? - 부끄러움을 모르는 카리스마, 대한민국 남자 분석서
오찬호 지음 / 동양북스(동양문고) / 2016년 7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어느 날엔가 집 앞 곰탕집에서 점심을 먹는데 다른 테이블의 중년 남성 두 명이 낮술을 마시는 걸 봤다. 낮술은 전혀 문제 되지 않는다. 술은 사람을 기분 좋게 만들고 낮부터 기분 좋다고 나쁠 건 없으니까 ㅎㅎ. 게다가 곰탕에 소주라니 참 좋은 조합이다,라고 생각했지만 거기까지였다. 그 둘은 남들 신경 안 쓴다는 듯 굉장히 큰 목소리로 떠들어댔으며, 소주를 추가 주문할 때마다 여자 종업원에게 꼬박꼬박 반말이었다. "여기 소주 한 병 더 줘!"


최근에 이런 이들을 정확하게 표현하는 단어가 생겼다. 개저씨다. 그들이 평소에 어떤 권위를 지니고 살았더라도(대단해 보이지도 않았지만) 자신과 일면식도 없는 사람들에게 그 권위를 내세울 권리는 전혀 없다. 그러나 그들은 평소 자신이 직장이나 가정에서 누리던 '중년 남성'의 권위를 일상에서 안하무인격으로 쏟아낸다. 이들에게 피해를 입는 대상은 주로 여성이지만, 젊은 남성들도 개저씨들 때문에 피해 받긴 마찬가지다. 


대학병원에서 수술하는 과의 구성원은 남초인 경우가 많고, 그런 과의 분위기는 대략 이렇다. 그 과에 예쁜 여자 인턴이나 피케이가 들어오면 그들은 그녀들을 데리고 술을 마신다. 그 사이 힘들고 거친 일들은 남자 후배 의국원이나 인턴에게 쏠린다. 그 순간 역할 상 술집 여급이나 다름없는 여의사와 여학생도 피해자고 그 틈바구니 속에서 혼자 노동하는 젊은 남자 의사도 피해자다. 비릿한 중년 남자 교수들이나 고년차 레지던트들만 좋다. 그 외에도 민폐 해병대, 지잡대 카카오톡, 영상 통화범 등 여러 사례가 있다. 모두 다 부당한 권위의식으로 남을 짓누르려 하는 개저씨의 연장선상에 있다. 난 남자지만 개저씨들은 다 죽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국공 합작처럼 남녀 합작으로 개저씨들을 격퇴해야 한다.


이 책은 제목처럼 왜 남자가 이상해졌는지만 말하지 않는다. 여자가 이상해진 이유도 말한다. 가령 한국 기독교의 기도 풍경은 아줌마들의 열성적인 기도로 대표되는데, 이유는 이렇다. 엄마들은 지금껏 가정에서 노동은 끊임없이 했지만 공식적인 생산성은 인정받지 못했다. 남편이 생산성 있게 살도록 내조하고 자녀들이 생산성 있는 사람이 되도록 뒷바라지해야 했다. 그러니 자녀들의 성공은 '엄마 덕택'이라는 말을 꼭 들어야 한다. 이런 엄마들의 유일한 성취는 자녀의 성공이다. 이들이 기도를 하는 건 하느님과의 소통 때문이 아니라 오로지 자신의 이유에서다. 내 행복이나 다름없는 자녀의 성공. 이렇게 병든 사회의 병든 종교가 완성된다. 


난 완전한 남녀평등주의자는 아니다. 남녀 간에 신체적 능력 차이가 존재하기에 서로가 더 잘 할 수 있는 분야가 있다고 생각한다. 여군 하사들이 행군 안 하는 것이나, 남자 경찰이 죽은 고라니를 치울 때 SNS에서 드립 잘 친 여경이 승진하는 것, 경단녀 동행면접 기사 따위를 보면 짜증이 난다. 그런 게 진정한 남녀평등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런 상황의 이면에 남자들의 부당 이득은 숨겨져 있지 않은지도 살펴봐야 한다고 생각한다. 미숙한 여자 운전자가 김여사라는 단어로 지목될 때 왜 난폭한 남자 운전자는 딱 집어서 남성으로 지목되지 않는가? 왜 딸바보만 있고 아들바보는 없는가? 왜 식당 아주머니를 부르는 호칭은 고모가 아니라 이모인가? 저자는 말한다. 똑같은 잘못을 해도 남자라면 사람 문제가 되고 여자라면 여성 문제가 된다고.  


간혹 저자가 말하는 군대의 보상 문제나 노키즈 존 같은 부분은 조금 나이브하다고 생각했지만, 여전히 좋은 이야기들이다. 성차별의 실제가 남자 입에서 이렇게 생생하게 나오기란 쉽지 않다. 비판의 목소리보단 자성의 목소리가 더 깊게 울리는 법이다. 정말이지 개저씨나 꼰대 안 되는 게 내 삶의 목표다. 그런데 정작 개저씨들은 이 책 거들떠도 안 볼 것 같네.

어떤 이는 굳이 그렇게까지 나쁘게 표현해야 하냐면서 한탄한다. 김치녀, 된장녀, 맘충 등을 언급하면서 내게 "너는 그런 단어들에는 입에 거품을 물면서 호명된 이를 보호해주더니 왜 개저씨는 그렇게 호명하는 이들의 편에 서냐?"면서 타박을 준다. 그럴 수밖에 없다. 모든 아저씨를 개저씨라 한다면 문제지만 개 같은 아저씨를 개저씨라고 표현하는 건 일종의 혁명이다. 없었던 존재를 악의적으로 지어낸 것이 아니라 원래 악랄한 것을 이제야 발견했기 때문이다. 꽃을 이제야 꽃이라, 아니 똥을 이제야 똥이라 부른 셈이다. 개저씨는 `신조어`일 뿐이지 새로운 인간의 등장을 뜻하지는 않는다. 개저씨는 김치녀, 된장녀, 맘충과는 성격이 완전 다르다. 이 용어들은 주로 약자를 향한 강자들의 낙인이다. 하지만 개저씨는 정반대다. 오랫동안 짓눌린 자들의 미세한 저항이 모이고 모인 이유 있는 반항이다. 96p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