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모든 극적인 순간들 - 윤대녕 산문집
윤대녕 지음 / 푸르메 / 201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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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 윤대녕을 좋아한다. 사실 윤대녕은 요즘 젊은 독자들에게 많이 읽히는 작가는 아니다. 그의 소설은 꽤나 전형적이다. 주인공은 시크한 남자 인텔리고, 흡연하고, 혼자 허름한 횟집에서 소주를 마시고, 특별히 노력 안 해도 여자랑 잘 엮이곤 한다 (한마디로 아재 감성). 특히 시대와 무관한 개인의 역사와 상실에 천착한다는 점에서 점에서 통속적으로 느껴지기도 한다. 하물며 소설 속 대사는 구어체가 아닌 문어체. 그러니 소설 읽는 사람들 사이에서 윤대녕은 호불호가 확실히 갈리는 작가가 아니겠소? 


이기호는 단편 소설 <나쁜 소설>에서 이런 윤대녕 소설의 특징을 짚어낸 바 있다. 윤대녕 소설에 빠져있는 남자 주인공이 춘천 가는 기차에서 맞은편에 앉은 여자에게 말을 건다. 소설 속에서 떨리던 목소리로 대답하던 여자와는 달리 현실의 여자는 그냥 무시하고 창밖이나 쳐다본다. 소설과 현실은 다르다. 또 이런 장면도 있다. 주인공은 옛 여자친구에게 "상처에 중독된 사람"이란 대사를 치고 밖으로 나온다. 그걸 듣는 여자친구의 어이없는 표정은 독자의 폭소를 자아낸다. 이처럼 윤대녕 소설은 확실히 현실과 소설 사이의 벽 같다. (<나쁜 소설>이 윤대녕을 비판하는 건 아니다. 소설이 현실에 적용되는지를 다룰 뿐이다. 정말 재밌으니 한 번 읽어보시길 ㅋ) 


그러나 나는 그런 '벽' 때문에 윤대녕 소설을 좋아한다. 해학을 기대하고 이기호를 읽듯이 가끔은 현실에서 쉽게 지나치는 쓸쓸함을 느끼고 싶어 윤대녕을 읽는다. 


그렇다면 그의 산문은 어떨까. 제목과는 달리 글 속의 이야기들은 전혀 극적이지 않다. 제대하고 절간에 처박혀서 소설이나 썼던 이야기나, 끊임없이 내면으로 침잠하던 시절의 이야기나, 동료들과의 사소한 만남 이야기가 주를 이룬다. 결국 그가 하고 싶었던 이야기는 지나간 사소한 순간을 돌이켜 보면 극적인 순간일 때가 있었고 그걸 그때는 모른다는 말이다.


소설가들의 산문을 읽으면 그들의 글과 삶이 닮았다는 걸 알 수 있다. 윤대녕의 산문엔 김연수의 능청스러운 유머도, 김훈의 깊은 사유의 문장도, 젊은 작가들의 쿨함도 없다. 단지 그의 글은 정갈하고 글 속의 그는 이곳저곳을 떠돌다가 머물다가 할 뿐이다. 나도 그렇게 현실로부터 자신을 철저히 격리하고 싶은 때가 종종 있다. 딱히 글을 쓰기 위해서가 아니더라도 가끔은 그런 방식으로 (혼자 허름한 횟집에서 소주를 까며 ㅋㅋ) 세상과 독대하고 싶은 것이다. 세상은 너무 사소하게 나를 지치게 하니까. 그러나 그런 극적인 일탈을 하기엔 지금 먹고살기도 너무 바쁘네 하핫.

대저 사랑이란 무엇인가. 그것의 시작은 거의 예외 없이 자기애의 집착이다. 자신과 닮은꼴 찾기. 숱한 물고기들이 그러하듯 사람도 원래 암수 한몸이었다가 남, 여로 각기 쪼개진 다음 잃어버린 다른 한짝을 찾아 영원히 헤매고 다닌다는 이 진부하기 짝이 없는 속설에는 누구도 예외가 없다.. 첫사랑인 경우에 더욱 그러하고 맨 마지막 사랑도 그렇게 완성된다. 그래서 무릇 나이 든 부부들은 남매지간처럼 닮아 보이는 것이리라. 그러므로 모든 사랑은 편애의 속성을 띄게 마련이며 작별할 때는 성격차가 주 원인이 된다. 너는 나와 닮지 않았다는 뜻이리라. 그리고 또한 사랑은 계속된다. 프랑스 어느 여류 작가의 말처럼 `모든 사랑은 첫사랑, 다음 사랑도 첫사랑`이라는 명제에 따르는 것이다. 171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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