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고양이로소이다 문학사상 세계문학 14
나쓰메 소세키 지음, 유유정 옮김 / 문학사상사 / 1997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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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대문호 나쓰메 소세키의 데뷔작. 1900년대 초반 근대 일본 지식인의 허위를 풍자하는 소설이다. 고양이가 화자로 등장해 주인 구샤미와 친구 일당의 일화를 들려준다. 남들은 재밌다 하는데 난 솔직히 큰 재미를 느끼진 못했다. 그냥 일본 근대문학의 고전이란 이런 거구나 정도에 그쳤달까. 그러나 짐짓 시트콤 같은 이야기엔 인간을 향한 철학적 질문이 담겨있다.

작중 구샤미 선생은 나쓰메 소세키의 페르소나다. 작가 스스로 고양이에게 웃음거리가 되는 자아비판(?)적 소설이다. 그럼 고양이는 어떠한가? 고양이 또한 작가가 창작한 캐릭터이므로 나쓰메 소세키의 숨겨진 페르소나라 할 수 있다. 여기서 소설의 진가가 드러난다.

인간은 남을 바라볼 땐 고양이가 된다. 저건 우습고, 저건 이해 안 되고, 저 인간은 정말 구제불능이고. 남을 비판하기는 쉽다. 그러나 거리를 두고 자신을 바라보긴 어렵다. 인간은 양면적이다. 고양이인 동시에 관찰 당하는 구샤미 선생이다. 양면성을 자각하지 못할 때 인간의 희비극이 시작된다. 양보해서 당신은 고양이라고 해줄까? 고양이조차 가끔은 우스운 짓을 한다 (ㅎㅎ). 비판자도 완벽할 순 없다. 고양이든 구샤미 선생이든 자신을 착각하면 꼴이 우스워진다. 작가는 인간의 허위를 조롱하는 듯하면서 자각하지 못하는 양면성을 말한다. 자신을 착각하는 인간의 무지를 비웃는다. 작가는 묻는다. 당신은 고양이입니까, 구샤미 선생입니까? 작가는 말한다. 당신 착각하고 있군요!

한가해보이는 사람들도, 마음속을 두드려 보면, 어딘가 슬픈 소리가 난다. 507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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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육장 쪽으로
편혜영 지음 / 문학동네 / 200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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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 편혜영이 2006년부터 2007년 사이 문예지에 기고한 단편 소설들을 모은 소설집.

소설에서 두드러지는 정서는 단연 불안이다. 소설 안의 인물들은 늘 불안해하며 막연한 폭력에 짓눌린다. 불안과 폭력은 여러 가지로 은유된다. 이를테면 자욱한 안개와 앞 길을 막는 탱크로리, 사육장에서 뛰쳐나와 아이를 무는 개들, 무엇이든 빨아들이며 벌레와 악취를 내뿜는 습지, 폭력적인 직장 상사 송 등이 그렇다.

이 불안들은 맹목적인 것으로도 보이지만 한편으론 인간이 만들어낸 것이기도 하다. 동물원을 탈출한 늑대와 새들, 개발과정에서 오염된 습지, 사육장에서 기르는 개들. 이것들은 인간의 압제를 벗어났거나, 인간이 망가뜨려놓은 것들이다. 폭력은 인간에서 시작되어 다시 인간에게 돌아온다.

이것저것 나쁜 것 투성이지만 그중에서도 궁극적인 불행은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는 그들의 삶이다. 모든 소설의 주인공들은 가난에 찌들어 있다. 표제작 『사육장 쪽으로』에선 파산 직전의 남자가 나온다. 남자는 철거장을 받고 남자의 아이는 사육장에서 뛰쳐나온 개들에게 물린다. 아이를 병원으로 옮겨야 하는데 병원은 사육장 쪽에 있다. 이처럼 폭력에서 벗어나려 애쓰지만 소시민들에게 결코 출구는 없다. 작가는 이 어두운 이야기들을 통해 진정 폭력적인 것은 삶이라 말한다.

그는 자신의 이력만으로는 도시에 있는 직장에 취업할 수 없다는 걸 알고 있었다. 지금보다 더 많은 이력서를 써서 보내도 마찬가지일 거였다. 그는 여전히 변두리의 구직자로 남을 것이다. 그나마 신도시가 완공되면 그가 사는 곳도 도시의 일부처럼 보일지도 모른다는 게 위안이 될 때가 있었다. 한편으로는 그래도 반지하방을 전전하는 생활이 나아질 리 없을 거라는 생각에 치욕스럽기도 했다. 그게 뭐든 달라지는 것은 없었다. 치욕이나 위안이 인생을 바꾸지는 못했다. 215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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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만적인 앨리스씨
황정은 지음 / 문학동네 / 201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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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소설은 온통 폭력적이다. 재개발 예정의 가난한 마을에서 자란 형제는 걸핏하면 어머니에게 손찌검을 당한다. 두 아이는 걸핏하면 씨발이라고 한다. 어머니의 폭력은 씨발됨으로 표현한다. 두 형제의 아버지는 이런 어머니의 폭력은 방관하고 재개발에서 그저 조금이라도 더 많은 보상을 받는데에만 집중한다. 툭하면 형제를 때리던 어머니는 어렸을 때 아버지에게 맞고, 추운 겨울에 발가벗겨진 채 집 밖으로 쫓겨났다. 어머니의 어머니는 그 폭력을 방관했다. 형제의 어머니를 망가트린 가정 폭력은 그렇게 대물림된다.

앨리시어는 친구를 때리던 친구의 아버지를 몽둥이로 흠씬 두드려 팬다. 그의 손에는 폭력의 촉감이 생생하게 남았고 그는 그것이 뿌듯하다. 키우던 개의 새끼를 어미 앞에서 잡아먹는 잔인한 사람들이 살던 마을에선 부실 공사로 하수 처리장의 하수가 넘친다. 마을엔 온통 악취가 배고 동생은 사라진다. 자 여기서 야만적인 건 누구일까요.

폭력의 대물림은 문학에서 흔히 등장하는 클리셰로 여겨질지도 모르겠지만, 이건 클리셰가 아니라 적나라한 현실이다. 얼마 전에 가스 배관을 타고 탈출한 16kg 체중의 11살 소녀의 이야기를 기사로 읽었다. 소녀를 굶기고 때리던 아버지는 자신도 어렸을 때 비슷한 학대를 당했다고 진술했다던가. 가끔 소설보다 더 소설 같은, 영화보다 더 영화 같은 일들이 벌어지는 게 세상이라지만 이건 좀체 믿을 수 없어 몇 번을 다시 읽었다. 야만적인 세상이다.

형제가 똑같이 저능하다고 대놓고 뒷말을 한 이웃들, 허락도 없이 감을 따먹는다고 욕을 퍼부었던 이웃, 사탕을 훔쳤다고 손목을 비틀고 눈을 부라렸던 이웃, 지나가는 척하며 앨리시어의 집에서 나는 소리를 몰래 듣고 간 이웃들, 앨리시어는 그들의 열매, 물건을 향해 돌을 던지고 난폭한 새끼가 된다. 저능한 새끼에서, 저능한 것도 모자라 난폭한 새끼가 된다. 저능한 것도 모자라 난폭한 새끼는 좋다. 저능하지도 않으면서 난폭하거나, 무능한데다 난폭하지도 못한 새끼보다는 좋다고 앨리시어는 생각한다. 가시처럼 뾰족한 인간이 되어 고모리를 돌아다닌다. 116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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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의 목소리가 들려
김영하 지음 / 문학동네 / 201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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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소설 제목은 델리스파이스의 노래 『챠우 챠우』의 반복되는 후렴구에서 따왔다고 한다. 아무리 애를 쓰고 막아 보려 하는데도, 아무리 애를 쓰고 막아 보려 해도, 너의 목소리가 들려. 계속 반복된다. 이게 가사의 전부다 (ㅎㅎ). 고아를 곧잘 주인공으로 내세우는 김영하는 검은 꽃, 퀴즈쇼에 이어 또 고아를 주인공으로 내세웠다.

 

『너의 목소리가 들려』는 아주 특별했던 제이라는 소년의 이야기다. 교감하는 능력이 있는 것처럼 보였지만 때론 엉뚱한 상상으로 동규의 행동을 예측하고 자신의 분노를 사물에 투사시킬 수 있을 뿐이었다. 하지만 사람과 동물의 고통에 반응하고 이해하려고 애쓰는 그 진실한 태도 자체가 공감이 부족한 시대에서 제이를 특별한 사람으로 만들기에 충분했다. 에필로그에서는 Y가 소설가에게 "그냥 들어"라고 말한다. 소설 안의 인물들이 하는 말을 입을 다물고 들으라 말한다. 소설가는 소설을 뒤엎으며 소년들의 분노에 다시 귀 기울였다. 소년들의 목소리를 들었다. 요즘은 타인의 고통에 쉽게 공감하지 못하는 걸 넘어 그것을 냉소하는 걸 마주하기까지 한다. 나도 그랬다. 환자와 보호자에게 말뿐인 위로를 건네고, 말뿐인 공감을 하려 한 적이 얼마나 많았던가. 타인의 고통을 끌어안으려 아무리 애쓴다 한들 결코 고통이 내 것이 되는 게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렇게 합리화하면서 목소리를 들으려 애쓴 적조차 없을 때가 많았다. 나는 '척'만 하는 의사일 때가 많았다. 친절한 척. 안타까운 척.  

 

김영하는 아이들의 분노에 대한 어른의 미안함을 이 소설로 전한다. 『너의 목소리가 들려』는 마음의 목소리를 듣지 못하는, 들으려 하지 않는 사람들에게 그래도 귀 기울여 목소리를 들어 보라 말한다.  

"난 이해받고 싶은 게 아니야. 열받게 하려는 거지. 세상은 우리를 미워해. 왜냐하면 우리가 존나 부럽거든. 우리가 배달이나 다니고 검정고시 공부나 하면서 찌그러져 있어야 마음이 편안데, 신호도 차선도 무시하고 꼴리는 대로 달리잖아. 밤늦도록 집에도 안 들어가고. 꼰대들이 그렇게 침 흘리는 어린 여자애들 뒤에 태우고 다니고. 그러니 죽이고 싶은 거지. 걔들이 우리를 이해 못 하는 것 같아? 아니야. 이해 잘해. 그래서 미워하는 거야." 163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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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는 모른다
정이현 지음 / 문학동네 / 200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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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종종 어떤 것, 혹은 어떤 사람에 대해 잘 알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가끔 그것들의 이면을 발견하고 나서야 나의 이해가 실은 오해였음을 깨닫는다. 그렇다면 가장 가까운 가족들의 이면을 발견했을 때의 당혹감은 어떨까. 아버지가 하는 일이 이런 거였어? 어머니에게 숨겨진 애인이?? (ㅎㅎ)

 

이 소설은 이런 당혹감들을 말한다. 부유한 강남의 한 가정에서 어느 날 막내 아이가 사라진다. 막내 아이를 찾는 과정에서 가족 구성원들이 서로 감추고 살았던 과거와 이면을 알게 된다. 생명 윤리는 고려되지 않는 장기 밀매. 질척거리는 첫사랑과의 관계. 어긋난 첫째와 둘째. 결정적으로 촉망받던 바이올린 유망주 막내에겐 아무도 바이올린을 좋아하느냐 물어본 적이 없었다. 그렇게 이 콩가루 집안은 파국으로 치닫는다.

 

돌이켜보면 이런 진실들은 감춰진 것이 아니다. 그 실체를 마주하기 두려워 애써 외면해버린 것에 다름 아니다. 너는 모른다 나를. 나는 모른다 너를. 이 소설은 통속적이고 뻔한 플롯을 취하고 있지만 읽는 자신과 그 주변, 가족을 돌아보게 하는 힘이 있다

하지만 엄마는 짱깨였고 엄마의 딸인 아이도 짱깨였다. 짱깨가 아닌 사람들이 그렇다고 하면 그런 거였다. 그것이 폭력이 세상을 지배하는 법칙이었다. 맞서 싸우기 위한 완벽한 준비가 돼 있지 않다면 어금니를 꽉 물고 참는 편이 더 나을지도 몰랐다. 섣부르게 주먹을 내질렀다가 제풀에 위태로이 비틀거리는 꼴을 목격당하는 건 더 치명적이었다. 시간이 흐르면서 아이는 내면의 동요를 감추는 기술을 조금씩 배워갔다. 지상의 모든 아이들이 결국 그러하듯이. 158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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