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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담 ㅣ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29
밀란 쿤데라 지음, 방미경 옮김 / 민음사 / 1999년 6월
평점 :
노벨상 문학상 후보로 매년 이름을 올리지만 아직 수상을 하지 못한, 노벨상을 기다리는 사이 너무 늙어버려 자칫하단 노벨상 받기 전에 돌아가실 것 같은(흑흑) 밀란 쿤데라 할배의 처녀작입니다. 1967년 작품이니 무려 49년 전이네요. 밀란 쿤데라는 체코에서 태어났으나 1970년엔 공산주의 체제하 체코에서 추방당합니다. 추방의 발단이 된 작품이 바로 『농담』입니다. 소설이 전통과, 종교와, 자유를 통제하는 공산주의를 풍자했기 때문이죠. 500페이지가 넘으니 책에 대해 할 말은 많지만 제목이 왜 '농담'인지만 말해야겠군요.
소설에서 가장 많은 목소리를 내는 중심인물은 루드비크입니다. 루드비크는 공산당원이었지만 자유로운 사상을 가졌고 유머를 즐길 줄 아는 대학생이었습니다. 그에겐 마르게타라는 여친이 있었는데 그의 마음을 잘 몰라줍니다. 왜 그런 것 있잖습니까? 마음에 드는 여자아이의 치마를 아이스케키 한다든지, 고무줄놀이 가서 훼방을 놓는 헤헤헿... 아앗 정신 차려야지 아무튼 철없는 루드비크는 여친한테 삐쳤습니다. 그래서 자기 딴엔 농담이라고 짓궂은 말을 적은 엽서를 보내는데 내용이 이렇습니다. '낙관주의는 인류의 아편이다! 건전한 정신은 어리석음의 악취를 풍긴다. 트로츠키 만세! 루드비크'라구요. 루드비크의 인생은 이 농담 엽서 한방에 훅 갑니다. 마르게타가 진지충인줄은 알고 있었지만 이 정도일 줄은 몰랐거든요. 마르게타는 엽서를 고자질했습니다. 다행히 인민재판의 주재자는 절친 제마네크네요. 어라, 그런데 갑자기 제마네크 요놈아가 씹정색을 하며 루드비크의 당원 자격을 박탈합니다. 아아 불쌍한 루드비크. 그는 정치범들이 모인 특수 (노가다) 부대에 징집되어 곡괭이질만 죽어라 합니다. 다행히 그곳에서도 외출과 월급이 있군요. 루드비크는 외출에서 아름다운 여자 루치에를 만나게 됩니다. 정신과 신체의 자유 모두 속박당한 젊은이의 몸이 얼마나 끓겠습니까. 그런데, 루치에는 몸을 허락하지 않는군요. 이런... 루드비크는 자기가 어떻게 위험을 무릅쓰고 한밤중에 빠져나왔는데 허락을 하지 않는 거냐고 묻습니다. 결국 루치에가 처녀라서 자신에게도 몸을 허락하지 않는 걸로 혼자 결론 내리고 폭발합니다. 뺨을 때리고 헤어지네요. (체남충 out!)
사회로 나와 정신 차려보니 벌써 30 중반입니다. 인생 넘나 비정한 것. 루드비크는 자신을 나락으로 몰았던 제마네크에게 복수하려 합니다. 제마네크의 부인을 꼬셔서 자빠트리면 멋진 복수가 될 것이라 생각하죠. 루드비크는 도도한 도시남자의 매력을 물씬 풍기며 완벽하게 헬레나를 제압합니다. SM 플레이까지 하네요. 쿤데라 할아버지 오래 살아서 야한 거 계속 써주세... 아앗 저도 모르게 음란마귀가! 죄송합니다.
그런데 이걸 어쩝니까. 거리에서 만난 제마네크는 이미 수년 전부터 부인 헬레나에게 관심이 1도 없는 상태였네요. 게다가, 축 처진(...) 헬레나와는 다르게 그의 옆엔 팽팽한 20대 초반 여친이 있네요. 이미 옆구리에 낀 여자의 차이로 완패인데, 제마네크의 반응은 거의 이런 식이네요. 루드비크 풉... 너 헬레나랑 풉ㅂ... 잤다며? 풉! ㅋㅋㅋ. 더 나쁜 건 제마네크는 자신이 루드비크에게 저질렀던 짓을 기억도 잘 못 하고, 루드비크가 젊어서 그랬던 것처럼 자유로운 사상으로 대학생들에게 인기몰이를 하고 있다는 거지요. 얄궂은 운명의 차이에 기가 막힐 지경입니다. 그 와중에 헬레나는 영문도 모른 채 루드비크에게 하트 뿅뿅을 날리고 있고요. 루드비크는 복수는커녕 거의 울고 싶은 기분입니다. 제마네크는 루드비크 너 ㅋㅋ 잘 해봐라 ㅋㅋ 하며 떠나는군요... 이제 이 사건은 평생 이불킥 감입니다.
루드비크는 패배감에 휩싸이고, 헬레나에게 너를 사랑하지 않는다고 고백합니다. 헬레나는 절망에 휩싸입니다. 헬레나는 기자였는데, 그녀를 따라다니는 20대 초반 카메라 기사가 있습니다. 요 카메라 기사는 세 보이려고 가죽잠바나 입는 얼치기 허세남인데 헬레나를 좋아합니다. 가죽잠바 청년은 그녀를 위로해주기 위해 숙소로 데려가죠. 헬레나는 이 마당에 정신 못 차리고 그래도 널 사랑했다며 루드비크에게 마지막 편지를 쓰고 나선 가죽잠바 청년에게 나가서 편지를 루드비크에게 전해달라고 부탁합니다. 가죽잠바 청년은 헬레나에게 멋지게 키스하고 내 다녀오리다! 하는군요. 순정만화 캐릭터 같습니다. 여기까진. 헬레나는 가죽잠바 청년이 나간 사이 그의 옷 주머니에서 진통제 약통을 찾아내고 약통에 든 약을 모두 먹습니다. 비련의 여주인공 같습니다. 지금까진.
식당에서 패배감에 젖어 낮술 마시던 루드비크는 가죽잠바 청년에게 편지를 전해 받습니다. 내용이... 이런 그녀가 자살할 것 같습니다! 루드비크는 가죽잠바 청년과 황급히 숙소로 뛰어들어와 헬레나를 찾습니다. 이런, 어디에도 그녀가 없군요. 점점 더 그녀가 시체로 발견될 것 같은 예감입니다. 이제 숙소의 마지막 장소에 도달하는데, 화장실이네요. 문이 잠겨있고 대답이 없습니다. 절망적인 예감에 화장실 문을 강제로 따고 들어갔는데 헬레나는. 이런...
똥을 싸고 있네요. 어떤 은유도 아닌 실재하는 똥 말입니다 똥. 헬레나는 다 꺼져버리라며 속옷도 올리지 못한 채 풀밭으로 뛰어갔다가 위장이 요동치는 바람에 다시 화장실로 들어가서 폭풍 설사를 합니다. 가죽잠바 청년이 변비약 들고 다니기 쪽팔리다며 진통제 약통에 그것을 담아 다녔던 것이죠. 이 소란이 다 뭐랍니까. 이 셋 모두에게 인생이란 짓궂은 농담 같군요.
여기까지 주요 스토리였습니다. 주말 내내 지겹게 읽고 또 이렇게 쓰려니 정말 지겹네요. 왠지 다 읽고 나니까 설사 얘기만 한 것 같은데, 그렇진 않습니다. 이 소설은 챕터마다 인물이 바뀌며 1인칭 시점으로 서술되는데, 주요인물 중 루드비크가 사랑했던 루치에만이 목소리를 내지 않습니다. 그녀는 오로지 남들에게 관찰된 모습으로 서술되죠. 루드비크는 루치에가 자신에게 몸을 허락하지 않은 게 처녀성의 상실을 두려워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루드비크의 친구 코스트카의 이야기를 들어보니 그건 사실이 아니었습니다. 그녀는 16살 때 6명에게 강간당했고 그로 인한 성적 트라우마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이 트라우마를 끈기 있게 들어주고 보듬어 안아준 코스트카에겐 몸을 허락하죠. 타자를 이해한다는 건 어디까지나 자신의 입장에서 해석한 것에 지나지 않습니다. 루드비크는 이런 사실을 전통 축제인 '왕들의 기마행렬'을 보고 깨닫습니다. 젊었을 적 '왕들의 기마행렬' 구성원으로 참여해 말위에 올라타 있을 땐, 내부에서 바라봤기 때문에 정작 아무것도 보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나이 들어 관람객의 입장에서 행렬을 바라보니 비로소 그 행렬을 제대로 볼 수 있게 됐다고 느낍니다. 이 말도 안 되는 소동에서 모두 빠져나와 인생을 바라봤을 때 비로소 어떤 삶의 비의를 깨닫게 된 것이지요. '인생 전체가 철회 불가능한 농담 속에 포함되어 있'다고 말입니다.
밀란 쿤데라는 농담 쳤다가 당에서 추방당한 루드비크처럼, 이 농담 같은 『농담』을 썼다가 체코에서 추방당합니다. 그러나 어찌 됐건 자유의 나라 프랑스에 정착했고, 활발한 작품 활동을 했으니 그다지 비극적인 결말은 아니네요. 밀란 쿤데라가 500페이지 넘게 공들여 문장을 쓰다 화려한 설사 마무리로 공산주의를 까는 걸 보고 있자면, 인간에게 자유란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 새삼 깨닫게 됩니다. 이상 설사, 아니 농담에 대한 이야기였습니다.
내가 당신을 이해는 할 수 있다 해도, 사람들에 대한 그런 식의 증오는 끔찍한 것이고 죄악이라는 사실은 조금도 바뀌지 않습니다. 그 증오는 당신의 저주가 되어 버렸어요. 아무것도 용서되지 않는 세상, 구원이 거부된 세상에서 산다는 것은 지옥에서 사는 것과 같으니까요. 382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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