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냥한 폭력의 시대
정이현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1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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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의 책임이 있는 곤란한 사건에 사람들은 어떻게 대처할까. 쉽게 생각하면 인정 또는 부정의 방법으로 나눌 수 있겠다. 전자는 사건의 책임을 인정하며 마무리 짓지만, 사실 그 자신에게 문제 상황의 해결은 아니다. 곤란함을 그대로 껴안게 되므로 일종의 체념이나 포기에 가깝다. 그러나 적어도 비겁함은 남지 않는다. 후자는 곤란함에서 벗어날 수 있으므로 그야말로 문제 상황의 해결이지만 윤리의 문제는 남는다. 자신이 외면한 곤란함은 타인의 몫으로 남을 것이다. 비겁하다. 더 생각해보면 우리에겐 좋은 방법이 있다. <아무것도 아닌 것>의 지원은 16살 딸의 출산에 절망하지만 한 줄기 희망 같은 말을 듣는다. 24주 미숙아는 동맥관 개존증을 가지고 있어 수술을 하지 않으면 살 수 없다는 말이다. 지원은 딸의 아이의 수술을 자꾸 미룬다. 지원은 문제에 직면하여 인정도 부정도 아닌 방법을 택했다. 못 이기는 척 상황을 종결하는 방법이다. 문제 상황은 자연스럽게 해결되고 겉보기에는 윤리의 문제도 남지 않는다. 어쩔 수 없었어. 그러나 이 방법을 선택할 때 우리는 가장 비겁해진다.

이런 속된 삶의 방식은 소설 곳곳에서 보인다. <우리 안의 천사>의 화자는 동거하는 남자친구와 헤어질 것을 마음먹었다가 그의 돈가방을 본다. 처음 본 배다른 형이 준 것이다. 남자친구는 배다른 형에게 간접 살인 제안을 받는다. 자신은 알리바이를 위해 일본 학회에 가 있을 동안 친부의 인슐린을 바꿔치기 해달라고. 그렇게 빠른 상속을 받으면 그것을 나누겠다고. 화자는 망설이는 남자친구의 등에 뺨을 대며 말한다."내가 같이 가줄게"

사랑의 포즈가 몹시도 부정한 각오에 포개어진다. 감정까지 동원하여 죄를 합리화한다. 가장 질 낮은 감정과 가장 고상한 감정이 동일시되려 할 때 윤리적 직관은 말한다. 이건 역겹다고. 그러나 한편으론 두렵기도 한 장면인데 이런 비윤리에 대한 방관, 동조, 합리화는 실제 삶에서 여러 모습으로 나타나기 때문이다. 내가 그렇게 살지 않았다는/않을 거라는 확신이 없기 때문에 두렵다.

정이현 소설에선 흔한 자기반성이나 성찰이 잘 보이지 않는다. 다만 속된 고민을 계속 보여줄 뿐인데 그걸 바라 보는 독자는 끊임없이 자신의 윤리를 시험당한다. 과연 나는 쉬운 선택을 하지 않고 살 수 있을지 자문하는 것이다. <우리 안의 천사>의 화자는 독백한다. '단죄가 또 유예되었다는 사실에 나는 안도하고 절망했다. 극적인 파국이 닥치면, 속죄와 구원도 머지않을 텐데.' 죄는 피할 수 없고 일상은 여전히 변함없을 거란 사실, 그걸 잘 알고 있다는 사실이 우리를 속물로 만든다.

메이 옆의 침상에서 진정제 링거를 맞다가 나는 그들이 들어오는 것을 보았다. 그들은 메이에게 다가가 먼저 예의를 갖추어 인사했다. 그들은 메이에게 높임말을 사용해 정중하게 말했는데, 그 애의 예후를 진심으로 염려하지만 진심으로 사랑하지는 않는 것 같았다. 누구를 사랑하는 건 감출 수가 없는 일이었다. 126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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