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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보집권플랜 - 오연호가 묻고 조국이 답하다
조국.오연호 지음 / 오마이북 / 201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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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웰컴 투 동막골>에서, 인민군 리수화는 동막골의 노촌장에게 의아해하며 묻는다.
"큰소리 한번 내지 않는 위대한 영도력의 비밀이 뭡네까?"

"뭐를 마~이 멕예야지 뭐."




예나 지금이나, 사람이 사는 곳 어디서건 '잘 먹고 잘 살기' 위해 온갖 방법들이 시도되었다.
혼자만 잘 먹는 것에서 → 다함께 잘 먹는 것으로,
다함께 잘 먹기 위해서는 전체 자원을 어떻게 나누고 운용하는가 하는 것이 대략의 내용이었다.

마찬가지로 경제·정치 모델에서는
골고루 나누는 것에 더 신경 쓰자는 쪽을 '진보-개혁-좌파'의 입장,
키우고 유지하는 것에 우선 집중하자는 쪽을 '수구-보수-우파'의 입장이라고 대략 정의내려 왔다.


◆ 무엇을 묻고 무엇을 대답했나

<진보집권플랜>에서 오연호-조국 듀엣이 대화를 통해 짚어내는 현실적 문제는 시의 적절하고,
전달하려는 메시지는 대체로 명확하다.

책은 크게 6개의 마당으로 2010년 현재 대한민국이 직면하고 있는 사회 정치적 현실을 되짚어본다.

(1) 성찰                  : 왜 진보가 집권해야 하는가
(2) 사회·경제 민주화 : 특권과 불공정의 시대를 넘어
(3) 교육                  : 청년들의 미래에 투자하라
(4) 남북문제            : 그래, 통일이 밥 먹여준다
(5) 권력                  : '괴물' 검찰 어떻게 바꿀 것인가
(6) 사람                  : 잔치는 다시 시작이다


'진보·개혁'이라는 시각을 통해
과거 반성 + 현재 분석 + 더 나은 미래에 대한 해법을 모색해본 것이다.


책 제목에서부터 정치적 입장이 뚜렷하니 어쩌면 삐딱한 시선으로 바라볼 수도 있겠지만,
이 남자들의 입방아에 오르내리는 다음과 같은 주제들이 과연 정치적 편향에서만 비롯된 것이겠는가?

언론 통제, 재벌로 대표되는 경제권력, 무상급식 논쟁, 여성의 출산 부담, 노동시간과 여가활용, 
  복지 확대와 세금 증가, 청년 실업, 4대강 토목공사, 비정규직 확대, 양극화된 기업 환경, 세습경영,
부동산 거품과 주택 문제, 뉴타운과 용산참사, 국가보안법 폐지 논란, 복지 정책별 차이, 
  대학 교육의 질, 외고 논란과 입시 제도, 대학간 서열화와 채용 정책, 학벌에 의한 차별,
핀란드 교육, 빚쟁이 낳는 대학 등록금, 사립 재단 비리, 햇볕정책과 북한 핵실험 논쟁, 천안함, 
  한미동맹, 주한미군, 개방과 세계화, 한미 FTA의 불공정 조항, 식량주권, 이중국적과 병역문제,
외국인 노동자, 노무현 대통령과 검찰 권력, 고위공직자 비리 수사, 검찰 개혁, 코드 인사 논란, 
  2012년 대선, 야권 통합, 선거제도 개정, 20대의 보수화, 유시민/정동영/안희정/이광재/김두관/
이정희/송영길/원희룡/나경원/박근혜/김문수 등 유력 정치인에 대한 인물론과 비평, etc.


책을 읽으면 지난 3년, 나아가 지난 10년 동안 대한민국을 관통했던 주요한 이슈들을
재빨리 훑어보며 쟁점이 되어왔던 부분들을 간략히 정리해볼 수 있다.
여러 가지 주제를 일반인들이 정리할 수 있도록 쉽게 설명하면서도 중요한 대목을 놓치지 않는다.

멋있는 용어나 개념을 내세워 그걸 잘 모르면 무슨 소리인지 선뜻 감이 잡히지 않는다거나,
읽는 사람이 자신의 교양수준을 자책하게 만드는 현학적인 표현도 별로 등장하지 않는다.

시사주간지 정도의 난이도에 토크쇼 수준의 재치, 거기에 지식인으로서의 문제 분석이 곁들여져 있다.
지극히 상식적인 문제 제기이고, 그에 대한 논의 또한 대체로 고루하지 않다.
대화속에 인용되는 책이나 시, 노래, 영화 이야기들은 그 내용에 말랑한 온기를 더해준다.


 


◆ 어떻게 하자는 소리일까?

나름대로 정리해본 이 책의 논리 전개 구조는 다음과 같다.

(1) 역시 "뭐를 마~이 멕여야 한다"는 것에서 시작한다. '밥의 문제', 복지 정책.
      먹고 자고 입고, 보육과 교육, 일자리, 주택, 건강에 대한 문제 해결은 필수적이다.
      대중의 관심이 정치 영역에서→ 경제 영역, 생활 영역으로 이동하고 있기 때문에
      무상급식, 준 무상의료와 같은 구체적인 '생활경제' 어젠다를 찾고,
      제대로 된 '대안 경제모델'을 제시하는 데서 출발해야 한다고 이야기한다.

(2) 그러기 위해, 정치권에서는 진보·개혁 진영의 '연대'를
     20대, 30대, 40대들에게는 '정치'에 대한 관심을 환기시킨다. 

      현실적으로 힘겨운 '정당 통합' 보다는, 소통합과 상설협의체 등의 협의기구를 통해
      '하나로 합치지 말고 하나인 것처럼 연대하자'는 제안이다. 동시에
      무관심한 20대, 분노하는 30대, 이중적인 40대들에게는 정치에 대한 관심을 촉구한다.

(3) 그래서 정치권과 시민들이 함께 '판을 바꾸고 인물을 키워보자'고 이야기한다.
      여기에는 '드림팀'과 같이 새로운 판에 대해 함께 구상하고 참여할 수 있는
      새로운 가능성의 '놀이터'가 제시된다. 앞으로 더 생각하며 키워나가야 할 영역이다.

(4) 그렇게 해서 바꿔야 할 것은 바로 '제도'이다.
      제도가 바뀌지 않으면 어떤 정의도 철학도 근사한 담론들도 아무 소용이 없기 때문.
      현실 생활에서 효력을 발휘하고, '마~이 멕일 수 있는' 살맛 나는 세상으로 이끌어 주는
      실질적인 장치는 '제도'와 그것에 기반을 둔 '사회구조'.

(5) 그리고, '제도'를 바꿀 수 있는 것은 결국 '정치'이다.
      정치를 위한 정치가 아니라, 대다수 시민을 위해 '제대로 잘 하는' 정치.


   
  오연호 : 우리 삶에 중대한 영향을 미치는 제도는 정치인들이 바꾸는데, 우리 사회는 정치인에 대한 불신이 상당히 높은 편입니다. 정치인이 만든 틀 속에서 우리가 살고 있는데, 시민들이 그들에 대한 견제와 압박을 게을리 하고 나아가 그들을 냉소적으로만 바라보고 있으면 그 피해는 결국 국민들이 보는 셈이겠죠.

조국 : 현재 대중들이 고통을 받고 있는 일자리, 교육, 주택 문제 등을 제대로 해결하려면, 즉 사회·경제적 민주주의를 성취하려면 정치가 제대로 서야 합니다. 제도를 바꿔야 하는 일이기 때문이죠. 물론 아래로부터 운동이 일어나고 대중의 의식이 바뀌어야 합니다. 그렇지만 마지막 '꼭지'는 정치가 따줘야 합니다. 어떠한 법과 제도를 만드는가는 정치인이 결정합니다. (중략)
  그렇다면 정치인들에게 그저 맡겨두면 될까요? 물론 아닙니다. 시민들이 풀뿌리 수준에서, 그리고 각자의 영역에서 참여의식을 가지고 뛰어들지 않으면 정치인은 자신과 자기 정당의 이익에 부합하는 것을 우선순위에 두게 됩니다. 정치인 개인이 나빠서가 아니라 그렇게 구조화되어 있다는 거죠. 정치권 바깥에서 정치인과 정당에게 압박을 가해야 합니다. -p.38~39
 
   



◆ 무시못할 정치의 힘, 그래서 집권이 필요한 건가

개인적으로 와닿은 이 책의 미덕은 크게 3가지였다.

첫째, 지난 몇 년 동안의 사회적 이슈들을 적절한 난이도로 돌아볼 기회를 제공한다는 것.
둘째, 솔직히 무시해왔던 '정치'의 중요성을 달리 인식하게 된다는 것.
셋째, 이 내용을 계기로 어떤 식으로든 다른 논의들이 가능하다는 희망을 가질 수 있게 된 것.


두 사람의 분석이나 제안에는 다른 의견들이 충분히 있을 수 있다.
아마 자칭 '진보·개혁·좌파'라는 사람들이 더 그럴 것이다. ㅎㅎ;
그 재능을 나누고 쪼개는 쪽으로 쓰기 보다는, 통합하고 연대하는 쪽으로 집중하면 어떨런지.
구체적인 정책을 만들고 일반 시민들이 쉽게 공감할 수 있는 방안을 찾는 쪽으로도 말이다.

정치의 중요성에 대한 이야기는 최근에 책으로 접한 것만도 여러 차례 되었던 것 같다.
조지 오웰부터 조국-오연호에 이르기까지
"정치에 무관심한 것도 정치적 행위" 라는 똑같은 요지의 멘트를 날리지 않나,
미셸 푸코는 대놓고 "젠장, 어째서 당신은 정치에 관심이 없다는 거요?" 라고 하지를 않나...

오연호-조국 두 사람이 나누는 대화를 통해서는 그 당위성이 차근차근 접수되는 느낌이다.
'제도'로 만들어야 변화가 일어날 수 있고, 그 제도를 만드는 것은 결국 '정치'라는 이야기.

워낙에 '철학'도 없고 '정의'나 '도덕성'은 찾아보기 힘든 '그들만의 정치'를 목격하고 있는지라
그럴싸한 정치철학과 정의론, 투철한 윤리의식 같은 것이 먼저 그리워지는 현실이지만,
일단은 씹어대고 무시해왔던 '정치'와 '정치인'에 대해 그들의 역할을 새롭게 인식하고
간편한 손가락질 보다는 가능한 방법을 한번 더 생각하게 되었다는 것이 내게 일어난 분명한 변화이다.

   
  조국 : 마지막으로 덧붙이고 싶은 것은 권력혐오증에서 벗어나자는 것입니다. 막스 베버Max Weber는 "정치인은 악마적 힘과 손잡는 사람"이라고 갈파한 바 있어요. 정치권력은 다름 아니라 악마적 힘입니다. 이 힘과 손을 잘못 잡으면 악마에게 내가 넘어가죠. 이 힘을 포기하면 반대 정파가 이 힘을 사용하여 나를 억누르죠. 그러나 그 힘을 정확히 사용하면 세상을 바꿀 수 있습니다. 바로 이러한 능력이 정치인에게는 필요한 겁니다. 정치권력에 대한 비판에 능한 것을 넘어, 그 권력을 잡았을 때 이를 잘 다루어 목표를 달성해야 한다는 거죠. 진보·개혁 진영의 사람들은 권력 행사를 혐오하는 경향을 버려야 하며, 권력을 유능하게 행사하는 기술을 배우고 익혀야 합니다. -p.253~254  
   

 


 


◆ 어떻게 골고루 마~이 멕일까?

무상급식에서 촉발된 '복지' 논쟁은 이 책의 출간을 전후로 진보/수구 모두의 핵심 이슈가 되었다.

그동안 인상깊은 플레이를 펼치지 못했던 진보·개혁 정당은 책 내용 그대로
무상급식에 이어 의료 등 다른 분야로까지 '보편적' 복지 간판을 계속 밀어부칠 기세이고,
부자 감세, 소외계층 지원 삭감 등 기득권 배불리기만 '선택적'으로 세심하게 배려하면서
복지 이슈를 싸잡아 '포퓰리즘'이라 평가절하했던 수구·보수 정당은 뒤늦게 눈치를 살피면서
역시 '선택적'으로 수정된 복지 정책을 원래 자신들의 것이었던 양 들고 나타나는 모양새다.


   
  조국 : 그리고 진보·개혁 진영이 주의할 것은 복지가 진보·개혁 진영의 전유물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과거 비스마르크와 드골이 독일과 프랑스에서 복지국가의 기초를 놓았고, 골수 신자유주의 정당이던 스웨덴 보수당도 전격적으로 복지국가를 수용하며 집권했죠. 복지국가 모델은 사회민주주의의 비전과 투쟁의 산물이었지만, 이후 보수 진영도 이를 채택, 활용하고 있습니다.
  사실 어떤 정책이건 먼저 주장했다고 해서 그 과실果實이 자기에게 떨어지지는 않습니다. 우리의 예를 보더라도 무상급식 정책의 원조는 민주노동당이었지만, 지난 6.2 지방선거에서 그 과실은 민주당이 대거 가져갔죠. -p.294
 
   



모두가 '복지'의 중요성을 알게 된 이 시점에서 진보/수구/개혁/보수의 아웅다웅 편 가르기에 의해
시민들의 소중한 삶의 질이 정치적 소모품이 되어서는 안될 일이다.

정치와 제도를 통하지 않고서는 복지국가를 이룰 수 없다는 엄연한 사실을 염두에 두면,
이제는 '5세' 훈이식 치졸한 광고보다는 구체적인 정책 논쟁을 통해 미래 세대를 책임지려는
발전적인 경쟁의 모습을 한번쯤 지켜보며 밀어주고 싶어진다.

생뚱맞은 생각이 하나 불쑥 솟아오른다. 더 좋은 정책을 겨루는 '복지 정책 배틀 대회'...
버스값, 배추값도 모르는 철없는 사회지도층(?)들이 정당의 이익만 내세워 입씨름 벌이기 보다는,
'심시티' 개념의 소셜네트워크 온라인 게임 같은걸 공개적으로 진행하여
다수의 유저들이 각자의 정책을 미리 시뮬레이션을 통해 경쟁적으로 검증해본 다음,
정권이 바뀌더라도 이를 통해 도출된 최적의 솔루션을 제도화하여 수정 보완해 나가면서
공공의 이익을 최우선에 두고 몇 년간 꾸준히 추진해 나가는 모습...
민주사회의 '21세기 정치'라면 이런 것도 한번쯤 대안으로 생각할 만한 때가 되지 않았을까?
(... 적어도 4대강 '로봇물고기' 보다는 접근 방식이 낫지 않나 하는 확신을 가지고 있다는 생각을~  ㅎㅎ;)


 

현재의 대한민국이 만족스럽고 잘 돌아간다고 느끼는 사람이라면?
굳이 이 책을 손에 들 필요가 없을 것이다. 그러나 만일,
뭔가 불만족스럽고 변화가 필요하다고 생각된다면?
함께 고민하고 참고할 만한 '이야깃거리'가 여기에 있다.

거창한 의미 따질 것도 없이
'진보'나 '개혁'이라는 말의 의미가 원래 이런 마음에서 비롯된 것 아니었을까. 

모든 이론은 회색이며 영원한 것은 저 푸르른 생명의 나무다. (파우스트)
- 조국 교수의 트위터(@patriamea) 프로필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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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오기 2011-02-05 23: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런 책은 어려울거라고 지레 겁먹는 저같은 사람도 읽어보고 싶게 만드는 리뷰네요.
동막골 대사로 설명해주니 쉽게 이해되고 공감이 되네요.^^

herenow 2011-02-06 22:31   좋아요 0 | URL
고맙습니다. 어렵지 않게 쓴 것 같고 책 만듦새도 괜찮으니
서점 가시는 길에 부담없이 한번 살펴보세요. ^ㅅ^

잘잘라 2011-02-07 12: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니깐요. 진보두 좋구 진보가 집권하는 것두 좋구 진보 집권 플랜두 좋구,
다 좋은데 말이죠. 정권을 잡고 나서 딴소리 하지 않을, 그런 사람을 원한단 말이죠.

모든 이론은 회색이다...
모든 과정은 회색이다... 라는 말로 들려요.
(너무나 무책임한 회색, 석달 열흘쯤 쨍쨍한 햇빛에 널어두면 하얗게 표백되려나? 때 타서 더 짙은 회색 되겠지. 대기 오염 심각한 도시에서라면..)

herenow 2011-02-07 22:14   좋아요 0 | URL
Both Sides Now



Both Sides Now - Hayley Westenra



Both Sides Now - Joni Mitchell


herenow 2011-02-07 22:15   좋아요 0 | URL
아마도... Never ending story ? ^^



Never ending story - 윤상현

herenow 2011-02-16 17:18   좋아요 0 | URL
예전에 메리포핀스님 이 댓글에 대해 직접적 답변을 안올렸는데,
다른 분이 저 인용문의 의미를 다시 언급하셔서 외람되이 긴 댓글 하나 달았습니다.
이론이 회색이니 과정이 회색이니 하는 것보다, '딴소리 하지 않을 사람' 원하신다는 말씀이
메리포핀스님이 이 댓글을 다실 때 강조하려던 본뜻이라고 생각했었거든요.

그래도 '모든 이론 = 모든 과정'이라고 치환하기에는 무리가 있기에, 아래 설명에 함께...
시간되시면 참고 바랍니다.

2011-02-08 14:06   URL
비밀 댓글입니다.

herenow 2011-02-09 13:31   좋아요 0 | URL
나이와 서열을 가린다고 '보수적'이고
나이 서열 따지지 않으면 '진보적'이라고 간단히 구분지어 말할 수는 없겠죠.
어떤 상황과 전제가 그런 판단에 깔려있었을테니 그걸 모르고는 단정지어 말하기 어렵네요.
예의도 모르고, 말꼬리 애매하게 내려 까는 사람이 '진보적'이라고 생각되지는 않거든요. ㅎㅎ;

진보니 보수니 하는 것은 불변 부동하는 '실체'가 아니라
상황에 따라 변할 수 있는 '상태' 내지 '자세/태도' 같은 것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제아무리 '진보'라도 한 자리 차지하면 어딘가 '보수'적인 성향을 가지게 되지 않던가요.
(어려운 철학 이론 들먹일 필요 없이 陰陽의 이치로만 봐도 그러하잖아요.)

불변 부동하지도 않는 '진보↔보수'라는 개념을 미리 굳게 정의내리고
그 개념을 여러가지 잣대로 섬세하게 쪼개고 나누어
그 '차이'에 초점을 맞추면서 각자가 잘난 척 분열되어 있기 보다는
일이 되는 쪽으로, 가능한 방법 쪽으로, 의견을 모을 수 있는 쪽으로 지혜를 모으는 것이
진정 '진보'적인 태도가 아닐까 싶습니다..
결국은 진보와 보수가 win-win 할 수 있는 방법이기도 하구요.

이런 논의를 솔직하게 나눠볼 수 있다는 것도 '진보'된 것이겠죠? ^ㅅ^


마녀고양이 2011-02-09 14: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항상 늦은 댓글을 달게 되는군요. ^^
설 지내고, 감기 앓다보니 그렇게 되네요... 자칫했으면 너무 좋은 리뷰 놓칠뻔 했습니다.

너무나 쉽게 들어오네요. 아직도 손대지 못 한 책에 더욱 욕심이 가구요.
거기다 진짜 공감되는 부분 있네요. 결국은 '정치'로 귀결된다는 것. 제 생각도 그렇습니다.
순수함도 좋고 이상도 좋지만, 아무리 올바른 것이라도 실행력이 없으면 소용없다는 겁니다.
또한, 모든 사람들이 다 깨달아서 변혁해야 한다지만, 그것은 교육과 생활의 차이가 있는한 어림없는 이야기거든요.
그렇다고 예전 공장에 가서 교육시킨 것처럼 농촌과 공장을 교육한다? 그것도 아닌거 같구요...

빨리 읽어봐야겠어요. 히어나우님, 새해 복많이 받으세요. 인사가 늦었습니다.

herenow 2011-02-10 00:24   좋아요 0 | URL
마녀고양이님, 방가방가~
왜 이케 오랜만에 뵙는 것 같죠? (^ㅅ^)m

늦게라도(?) 좋은 댓글 남겨주셔서 고맙습니다. ㅋ
실행력이 없으면 소용없다는 말씀, 이게 바로 '정치'라는 걸, 정치를 무시하면 안된다는 걸
이제껏 피상적으로만 이해하고 있었던 것 같아요. 에공... ^ ^;

햇빛눈물 2011-02-13 12: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보관함에 보관만하고 언제 읽어야지 마음만 있던 책이었는데 히어나우님 덕분에 아주 일목요연하게 책 내용이 들어옵니다. 그런데, "모든 이론은 회색이며 영원한 것은 저 푸르른 생명의 나무"다라는 말에서 전 '저 푸르른 생명의 나무'는 동의하지만, '모든 이론은 회색'이라는 말은 이해하기가 힘드네요. 제가 받아들이기에는 이 말의 진심은 '모든 이론은 처음에는 푸르지만 회색일수 밖에 없다'라고 들립니다. 그래서 그런지 더 어렵네요. ㅋㅋ

herenow 2011-02-14 20:17   좋아요 0 | URL
전에 메리포핀스님도 그러시더니, 이 말에 걸리는 분들이 더러 계시나 봅니다..
저 멘트를 내뱉은 메피스토펠레스나 괴테가 직접 설명을 해주셔야 할 듯. ^ㅅ^;
사실 저는 참 공감하며 옮겨온 말이라서요.
(1+2=3처럼 본인에겐 당연하게 생각되는 것을 설명한다는 게 제일 힘들죠. ^ ^;)


herenow 2011-02-14 20:30   좋아요 0 | URL
"모든 이론은 회색이며 영원한 것은 저 푸르른 생명의 나무다." (파우스트)

주제넘게 잠시 사족을 달아본다면, 저 말은 뇌과학으로 보아도 사실(fact)에 해당하고
'이론'이나 '생각', '개념화', '추상적 사고'라는 것의 본질을 들여다보아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의 생각, 개념, 사고라는 것은 '과거'의 재료들로 만들어져 있습니다.
이미 지나가 버린 과거의 경험들, 개념들, 말들, 상징들 같은 것이죠.

뇌과학에서는 이걸 간단히 '기억'이라고 해버리더군요.
'미래의 기억'이라는 용어도 있는데, 그 내용을 들여다보면
모든 생각은 '과거'이고 '기억'이라는 사실(fact)에서 시작하고 있습니다.

맞다, 틀리다, 좋다, 싫다는 것도 경험한 어떤 과거의 조합들이나
내가 제대로 인지하지 못하는 어떤 과정을 통해 도출되는 것이구요.
(이런 과정에 개입해 새로운 정보를 적절히 넣어주면 인지와 판단에 변화가 생기게 되죠.
그리고, 이런 과정 자체를 자세히 들여다보면 '자유의지'를 가진 독립된 실체로서의 '나'라는 것이
과연 존재하는가라는 의문을 당연히 가질 수 밖에 없게 되구요. 유물론 같은건 아닙니다.)

대부분의 '생각'은 '언어(내적언어)'로 구성되어 있는데,
언어를 사용한다는 것부터가 이미 실제의 무언가를 하나의 기호나 상징으로 대체하는 행위입니다.
즉, 살아있는 것을 죽어있는 '개념'으로 대체해버린 결과, 이렇게 말과 글을 쓰고 있는 것이거든요.

당장, 한국말이 아니라 우간다말 같은걸 써서 '생각'을 해보라고 하면 할 수 있는게 거의 없죠.
(이미지? 기억 또는 기억의 재구성에 의해 만들어지지 않는 이미지를 떠올릴 수 있을까요?)

'회색'이라는 표현은 그것의 본질이 '과거', '기억'이라는 절묘한 은유로 볼 수 있습니다.
처음에 녹색으로 태어났다가 어떤 과정을 거쳐 회색으로 변질되는 그런 '개념적'인 것이 아니라,
(그렇게 머리속에 그려지는 이미지나 판단의 본질을 보면 그 또한 과거의 지식/기억이 바탕이지요)
그 '개념'이라는 것 자체의 본질을 꿰뚫어본 것이죠.

여기까지는 뇌과학, 인지과학, 불교, 명상, 일부 철학과 사상에서 거의 동일한 말을 하고 있습니다.
(딴것들은 이걸 직관이나 논리로 풀어내는데, 뇌과학은 신경세포의 재조합으로 간단히 보여주구요.)

조금 더 나아가면, 모든 '생각'이나 '개념', '이해', '추상적 사고'의 바탕이 되는
'아는 작용'은 '대상'을 '한정짓는' 것에서 기인한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되므로,
제 아무리 거창한 사상이나 철학, 개념이라고 해도 한정지워진 어떤 것,
결코 '있는 그대로'를 묘사하거나 설명해줄 수 없는 창백한 대체물에 불과하다는 것이 드러납니다.

괴테의 말에서 '생명의 나무'는 위의 글에서 '있는 그대로' 쯤이 되겠네요.
길게 적었습니다만, 앞부분의 몇 가지 내용만 찬찬히 확인해 보신다면
비슷한 결론에 이를 수 밖에 없을 것 같습니다.

사실, 이렇게 구질구질한 설명보다 단 한줄로 본질을 아름답게 노래해버리고 있으니
파우스트가 역시 명작은 명작이라는 생각이 드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