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제역 때문에 나라가 온통 시끄럽습니다.
차도남/차도녀가 사는 서울에서는 멀고 먼 아프리카 소식이나 다름없을지도 모릅니다.
서울을 벗어나면 분위기 좀 심각합니다.
소 키우던 집 주인이 자살을 했다느니, 이웃사촌들끼리 서로 의심하여
동네가 갈라섰다느니 어수선한 얘기들이 들립니다.
소 교배 해주는 걸로 먹고사는 형님 한 분은 요즘 자발적으로 갇혀 삽니다.
돌아다닌 지역에 구제역이 발생했다는 의심을 받을까봐 거의 문 밖에 안 나갔답니다.
고깃집 하는 분은 매출이 떨어져서 걱정입니다. 호주산 스테이크인데도 '왠지' 잘 안팔린다네요.
작년 이맘땐 신종플루 때문에 장사가 힘들더니 올해는 구제역 때문에 힘들다는 한숨...
무엇보다
소, 돼지들이 "살아있는 채로" 하얗게 비닐 깔린 구덩이 속에서
바글바글 생매장을 앞두고 있는 장면은, 사진만으로도 미칠 것 같은 기분이 듭니다.
멀쩡한 정신을 가진 사람이 저걸 감당할 수 있겠습니까?
나와 똑같이 숨 쉬고 공포에 떨 줄 아는 생명이
살아있는 채로 땅 속에 파묻히는 모습을...???
너무 끔찍하니까 고개를 돌려 외면해서라도 그 감정을 느끼지 않으려고 합니다.
농촌에서 자랐거나 적어도 아는 집이 축산업에 종사하는 분이 있다면
그런 동물 한 마리의 가치와 그에 대한 가족들의 애착이
도시에서 나고 자란 사람이 느끼는 것과는 차원이 다르다는 걸 아실 겁니다.
기르던 개나 고양이를 산 채로 땅에 파묻는다면 쉽게 와닿을까요?
다르지만 차마 비교할 수 없는 말 못할 끔찍함과 고통이 거기에 있습니다.
...... 뭐, 한 두어 시간 같이 한숨만 쉬다가 돌아 왔습니다.
외국에선 새와 물고기가 영문없이 떼죽음을 당하고 있다는데,
한국에선 소와 돼지가 사람들 손에 떼죽음을 당하고 있습니다.
참.. 이렇게 넋두리 밖에 못하는가 싶네요.
이런 학살이 즉각 멈출 수 있도록, 저 생명들이 한을 풀고 편안해질 수 있도록
기도라도 하는 수 밖에요.
오늘 교회와 성당과 절에서도 한번쯤 이들을 생각하는 마음들이 있었기를...
동물도 사람도 견디기 힘든 겨울이 새삼 지나가고 있었습니다.
주말 오후, 가까운 아파트 단지를 산책하다가 만난 풍경.
발은 시리지 않을까요?
한쪽 날개에 머리를 포옥 파묻고
둘레에서 겨우 2~3미터쯤 떨어진 인공연못 안에 모여 앉아있던 오리들. (왜 여기서?)
나 춥다고 까맣게 잊고 있다가
이제서 생뚱맞게 도시의 비둘기와 참새와 고양이들에게 감상적인 안부인사를 건넵니다..
너희들,
겨울이 되면은 무얼 먹고 사느냐?
흰 눈이 내리면은 무얼 먹고 사느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