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할머니에게
윤성희 외 지음 / 다산책방 / 202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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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할머니에게]라는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할머니'를 주제로한 6명의 작가들의 작품집 입니다.

그 첫번째 이야기는 윤성희 작가님의 '어제 꾼 꿈' 입니다. 제사 전날밤이면 늘 꿈에 나타나는 남편이 이제 제사상을 차리지 않겠다고 선언한 이후 첫 제삿날 전일엔 신기하게도 꿈에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대신 돈 문제로 관계가 멀어진 아들과 딸, 처제의 꿈에 나타나 먼과거를 보여주며 외롭지만 당당한척을 하는 남겨진 부인의 곁에 누구라도 다시 다가가 주길 바랍니다.

제 기억속의 할머니 모습을 가장 많이 닮아 있는 주인공이라 마음에 그리움이 차서 읽고 또 읽었습니다.

두번째 이야기는 백수린 작가님의 '흑설탕 캔디' 입니다. 화자는 손녀딸인 '나'이고, 남동생의 뜬금없는 이야기와 할머니의 유품들을 꺼내어 읽게 된 일기 속에서 있는 줄도 몰랐던 할머니의 로맨스를 알게 됩니다. 교통사고로 엄마 잃은 둘째 아들네 손주들을 키워주기 위해 함께 살게 된 가족은 프랑스 까지 함께 가야 했고 그곳에서 아는 이도 없고, 말도 통하지 않는 답답함을 견디던 중에 들려오는 피아노 소리에 이끌린 인연이었습니다. 젊은 이들의 불타오르는 사랑이 아닐지라도 조금씩 익숙해져가고 엉뚱한 모습에 웃을 수 있는 관계로 나아갈 때 쯤 다시 이별하게 된 할머니 박난실과 프랑스 할아버지 장 폴 브뤼니에의 잔잔한 황혼 로맨스(?)가 멋스럽습니다.

세번째 이야기는 강화길 작가님의 '선베드' 입니다. 행복요양원에 있는 할머니를 만나러 가는 진서와 우연히 친하게 되어 자신보다 더 친손녀 같은 명주의 이야기 입니다. 알츠하이머인 할머니의 기억에서 자신들은 지워졌지만 진서는 할머니가 늘 말씀하시던 '선'을 지키기 위해 노력합니다. 참...직설적인 진서의 말투에도 인연의 끈을 놓지 않는 무던한 명주의 모습이 아련합니다. 본인도 유방암으로 수술을 받고 또 재발한 상황에서 혈연관계도 아닌 누군가의 할머니를 진심으로 생각하는 모습이 아름답습니다.

네번째 이야기는 손보미 작가님의 '위대한 유산' 입니다. 부유한 삶을 살았으나 남편도 아들도 일찍 떠나보내고 남겨진 손녀딸을 키웠던 할머니의 남겨진 커다란 집과 할머니를 옆에서 도와주고 챙겨주던 아주머니를 만나게 되면서 잊혀졌던, 아니 잊고 살았던 어린날의 진실들을 깨달아갑니다. 불길 속에 타들어가는 그 집에 남겨진건 누군가의 부러움과 기억의 잔재였을 것입니다.

다섯번째 이야기는 최은미 작가님의 '11월행' 입니다.
나(은형)과 엄마 규옥, 그리고 딸 하은은 11월 9일에 예산에 있는 절로 템플스테이를 갑니다. 삼대가 함께 간 여행은 마지막이 되었지만 두고두고 11월이면 예산여행은 회자 됩니다. 절 앞에서 사진을 찍어 주시던 스님이 '엄마 둘에 딸 둘 이네' 라는 말에 울컥했습니다. 오래전 돌아가신 엄마도 생각나고, 마지막으로 갔던 절에서의 모습도 기억나 마음이 아려옵니다.

마지막 이야기는 손원평 작가님의 '아리아드네 정원' 입니다. 유닛 D에서 살고 있는 '민아'가 주인공입니다. 아리아드네의 정원으로 불리는 유닛 D는 노인 요양시설의 네번째 단계 시설입니다. 가장 보편적인 죽음이 안락사인 이 도시에서 늙은 여자, 가족이 없고 경제적 여력도 낮아진 노인들은 점점 아래로 아래로 떨어지며 죽음을 기다려만 합니다. 결혼을 안하고 직장생활만 하다보니 어느새 나이든 민아와는 달리 잘나가는 자식들과 재산이 있음에도 결국 유닛 D에서 사는'지윤'의 모습에 허탈해지기도 합니다. 미래사회에서 진짜 일어날 수 있을까 생각하는 도중에 일본의 젊은이들이 SNS에 올린 그림이 떠올랐습니다. 초고령사회로 접어들자 젊은 층에서 노인들을 부양하는데 부담을 느낀 나머지 이번 코로나19로 노인들이 사라지면 행복해질 것이라는 그림 속 이미지가 떠올라 한숨이 나왔습니다.

6개의 이야기 속에 할머니들은 각자 다른 이야기, 시대에 살고 있었지만 과거의 할머니를 떠올리게 하고 미래의 내가 될 할머니의 모습을 상상하게 하였습니다. 이 시간 동안의 추억여행이 오래 기억 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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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도 혼자가 아닌 시간
코너 프란타 지음, 황소연 옮김 / 오브제 / 202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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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랫만에 누군가의 진솔한 고백을 들은 듯한 느낌이 물씬나는 책을 접했습니다. 자신의 방황과 아픔을 직관하는 모습을 통해 그 용기 있음을 칭찬해 주고 싶어집니다.

저자 코너 프란타는 현재 스물여덟 살의 유명한 미국 유튜브 크리에이터이자 기업가이며, 인권 운동가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신념을 가진 사람의 특징처럼 늘 행동하는 모습이 당연하다 여겼는데 책 속에 어린 시절 코너는 여리여리한 소녀감성 처럼 느껴질 만큼 소심하고 우울했습니다.

조금씩 조금씩 자신을 인정하고, 자신만의 방법으로 두려움을 이겨나가며 상처에 반창고를 붙여 나갑니다.

p.83~84
감성은 내 마음속 나침반의 바늘을 움직이고, 나는 그 감성의 지휘에 따른다. 감성이 하는 말을 경청한다. 귀담아 듣는다. 지금도 그 속삭임과 아우성이 들려온다.

자신의 성정체성에 대해 숨기려고만 하던 시기를 지나 '커밍이웃'을 하고 홀가분 했다는 글 속에서 어쩔 수 없는 엄마의 입장이 되어 응원은 못하지만 본인의 삶은 그 누구도 대신 살아 줄 수 없으니 옷장을 탈출 한 것에 응원은 해야겠다는 생각을 해 봅니다.

p.286 되고 싶은 내가 바로 나 자신이다 - 중
자신감은 누구나 거칠 수 있는 옷과 같다. 한번 믿어보기를.

이 문장을 보며 개성 넘치고 자기 자신을 사랑하는 열정적인 청년의 글이 왜 즐거움을 주었는지 알게 되었습니다.

친애하는 지난날의 나에게 한마디 해주고, 친애하는 미래의 나에게 칭찬 받는 그런 나날들을 약속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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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둠의 눈
딘 쿤츠 지음, 심연희 옮김 / 다산책방 / 202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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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지금의 사태로 인해 역주행 중이라는 유명한 소설 [어둠의 눈]을 꼭 읽어 보겠다는 다짐을 한 순간 운명처럼 기회가 주어졌습니다.

'우한-400' 이라는 바이러스를 이용한 스릴러 소설이라는 이야기를 이미 알고 있었음에도 초자연적인 현상들이 크리스티나 에반스(엄마)의 상상이나 병적인 환상에 불과한건 아닌지 몹시 불안했습니다. 이미 1년전에 사고로 죽은 12살 소년을 끄집어내어 왜 그 아이의 엄마를 힘들게 하는지 화도 났습니다. 만으로 12살이 된 아들을 키우는 입장에서 책을 읽다보니 가슴이 너무 먹먹해졌습니다.

'죽지 않았어'

책 여기저기에 비명처럼 떠돌아다니는 이 문장의 슬픈 메아리가 비극으로 끝나지 않아 참 다행입니다.

엄마 티나 에반스에 비하면 아빠인 마이클은 정말 ...그럼에도 조금은 불쌍한 캐릭터 입니다.

티나가 제작한 쇼의 이름이 [매직!] 인 것 처럼 12월 30일 부터 1월 2일까지 단 사흘만에 일어난 이 엄청난 기적 같은 일이 대니의 살고자하는 갈망과 그것을 느끼고 행동하는 엄마라는 존재 덕분에 대니는 고통을 이겨내고 그야말로 죽음의 문 앞에서 걸어나올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대니의 능력이 앞으로 어떤 결과를 가져 올지는 열린 상태로 책은 끝났지만 인간의 능력을 초월하게 하는 그 힘의 원천은 사랑이었다고 단정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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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입자들
정혁용 지음 / 다산책방 / 202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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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이 책을 선택하게 된 계기는 '세계문학상 최종심 후보작'이라는 문구 때문이었습니다. 어중간한 경계에 있는 사람에게 선 위의 책들도 자신과 비슷하게 느껴져 동병상련처럼 손 안에 움켜잡고 싶어지기 때문입니다.

책을 다 읽고 나서야 주인공의 이름이 'K' 였었나 싶어 다시 맨 첫장으로 넘어가 몇장을 읽었지만 이름은 딱히 안보여 포기 했습니다.

선전 문구처럼 "택배가 도착하는 순간, 인생이 뒤틀리기 시작했다!"에 대한 기대감으로 미스터리한, 숨 막히는, 그런 이야기들을 기다렸으나 딱히 없었습니다. 그래서 잠시 덮고 뒷표지를 보는 순간 '한국형 하드보일드 소설'이라는 글에 웃었습니다. 어떻게 '하드보일드'를 '하드코어'라고 마음대로 읽었나 싶어집니다. 스릴은 없는게 정상인 소설을 읽으며 하드코어적 강타!를 찾았으니 허탈해서 끝까지 읽었습니다.

그런데 반전은 늘 있습니다. 모든 것에 무심한 행운동 담당자 '행운'은 자기만의 유머감각을 늘 실천합니다. 가끔은 아재개그 같을 때도 있지만 어려운 말로 경계선을 치는 듯 할 때도 있지만 진심은 늘 있습니다.

p.120

"다른 사람의 이름을 빌리고 그 말을 인용하면 자신이 근사해 보이나요?"
"설마요. 그 사람이 그 말을 했을 때 음, 이런 심정이었겠군, 하고 유추하면서 즐거워하는 정도죠...."

정해진 시간에 택배를 시작하고 맡은 구역을 마무리하고 상경해서 집이 없어 택배일을 하는 곳에 컨테이너에서 지내며, 가끔은 우울증 환자의 이야기 벗이 되어주고 어려운 동료들의 수다에 시간을 내 주는데 말은 저렇게 한다면...정말 특이한 유형의 사람을 주인공으로 한 장르를 찾게 되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참 읽을 수록 주인공의 모습에 담겨진 자신을 발견합니다.

관계에 관한 부분을 읽으며 가족에게도 관계만 사라지면 정말 타인인건가? 하는 의문이 들었습니다. 심지에 부모와 자식 관계 역시 말입니다.

토요일 저녁 8시에 택배를 늘 부탁하는 주점 '코카인'이 게이바 일 때도 설정이 참 다양하다고 느꼈습니다. 그 주점의 주인 '제니' 때문에 망치를 사랑하게 되었다는 표현은 절정이었습니다.

책의 마지막 장을 넘겨야 속속들이 숨겨진 단서들의 의미를 이해하게 됩니다. 읽을 땐 그냥 그렇구나 하는데 나중에서야 그게 일반적인 상황은 아니었구나 싶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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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리심리학 - 사는 게 내 마음 같지 않을 때
양창순 지음 / 다산북스 / 202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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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처럼 불안하고 힘든 시기를 겪다보면 사람들은 이런 시대에 살게 된 자신의 운명을 탓하거나 힘든 시기를 이겨내고나면 보다나은 내일이 있을것이라고 긍정적 사고를 하는 방향으로 나아갑니다.
그 중간의 선택으로 운명이지만 이길 수도 없으니 자포자기 하는 사람도 분명 있을 것 입니다.

읽고 있는 책 [명리심리학]은 딱 지금의 시간을 예견 한 듯 저에게 다가 옵니다. 소위 말하는 '운명'론 적인 가치를 추구하는 동양사상 '명리학'과 고난한 현실의 심리적 압박감에 자꾸만 숨어들고 싶어지는 마음을 위로 해주는 정신의학적 심리치료와 같은 글들이 말입니다.

아마도 이책의 저자가 정신과 전문의가 아니었다면 또 어디서 사이비교주 같은 사람이 혹세무민 한다며 편견에 사로잡혀 읽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런데 이 책을 읽고 있으니 이 또한 운명 아니겠습니까.

흔히 '사주팔자'라 불리는 태어난 연도, 달, 일자, 시간이 어떻게 운명을 좌지우지 하는지, 또 그런 비과학적인 학문(?)을 왜 알아야 하는지 의문문으로 시작한 독서는 그 시작부터 편견이고 우물안에 갖혀 있는 사고 였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어떤 사건을 바라보는 시점이 꼭 앞에서 바라봐야 정답이라고 할 수는 없습니다. 한발자국 떨어져봐야 윤곽을 알 수 있는 경우도 있고 뒤에서 봐야 그 사건의 원인을 찾을 수도 있습니다. 아직 우리는 세상에 대해 아는 것보다 모르는 것이 많습니다. 우주 역시 존재하는 우리의 영역 이외의 것에 첫발을 내딛었을 뿐입니다. 운명이 모든 것을 결정한다고 하면 그것은 잘못입니다. 인간이 인간다운 이유는 운명을 수용하기도 하고 자기 스스로 바꾸려 노력하는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명리심리학]을 통해 가보지 못해 늘 마음 한구석에 남아있던 아쉬움 너머에 현재의 '나'에게 그보다 큰 존재들이 있게 해준 선택한 길의 보물들을 떠올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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