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벽을 따라 걷다보면 나타나는 붉게 칠한 나무문들. 그것들은 모두 똑같이 생겼지만 어떤 문은 열 수 있고 어떤 문에는 빗장이 걸려 있다. 팻말들. 들어가지 마시오. 출입엄금. - P71
오후 두시 반에 냉장고 문을 여는 우울한 여자가 있다. 막걸리 병을 천천히 흔드는 여자가 있다. 처형당한 러시아인의 시를 미처 다 읽지 못하고 밥공기에 막걸리를 따르는 여자가 있다. 막걸리를 꿀꺽꿀꺽 삼키는 여자가 있다. 신김치를 꺼낼까 생각만 하다가 의자에 붙박인 여자가 있다. 훤한 대낮에 처형당하는 우울한 여자가 있다. - P59
이곳 사람들은 아직 이 나무에게 소원을 비는구나. 나무가 오래오래, 인간과 인간의 소원보다 더 오래 살길 기원하며 눈 감고 손도 모았다. 가족의 건강과 재물복도 당연히 빌었다. 오랜만에 만난 영험해 보이는 나무였다. - P36
북한의 조기 붕괴설을 뒷받침할 근거는 없었다. ‘소련이 무너진 뒤 호네거의 동독도, 차우셰스쿠의 루마니아도 붕괴했으니 북한도 오래가지 못할 것이다‘, ‘세습제 독재 국가가 변화를 벼텨낼 리 없다‘ 등의 예상은 서구의 희망사항이었다. - P4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