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년 8개월 28일 밤
살만 루슈디 지음, 김진준 옮김 / 문학동네 / 202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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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 뭄바이에서 태어난 살만 루슈디, 인도의 다양한 신들과 신기한 이야기들을 들으며 자란 덕분에 열세 살 나이에 영국으로 건너간 이후에도 그의 세계관과 상상력에는 한계가 없었습니다. ‘마술적 사실주의‘라는 세계로의 초대장은 [2년 8개월 28일 밤]의 형태로 저에게 다가왔습니다. 천 일 하고도 하룻밤 하면 떠오르는 ‘천일야화‘ 처럼 서로 연결 된 고리 속에 이야기들이 주술처럼 엮여 있습니다.

마족의 공주이자 위대한 여마신, 벼락을 마음대로 부릴 수 있어 번개공주라 불리는 ‘두니아‘가 인간 남자를 사랑한 이야기 이며, 1195년 위대한 철학자 이븐루시드가 코르도바에서 칼리프 아부 유수프 야쿠보의 주치의에서 쫓겨나 루세나에서 귀양살이를 하며 의술을 펼치기 시작했을 때 열여섯 살쯤 먹은 소녀를 그의 집 앞에서 발견한 남자의 이야기 입니다.

두니아는 스스로 인간의 삶을 선택하고, 한 인간의 ‘인간‘아내가 되어 인간과 관계를 맺고 ‘2년 8개월 28일 밤‘의 시간 동안 이븐루시드의 아이들을 임신해 낳았고 이들을 먹여살리고자 병약한 환자들에게 터무니 없는 치료비를 강요해야만 한 것에 자신의 아이들을 두니아자트, 즉 두니아의 무리, 두니아 족속, 두니아족이라 부르며 결국 자신의 성인 루시드를 허락하지 않았습니다. 물론 궁의로 복귀하게 될 때에도 두니아와 자식들을 데려가지도 않았습니다.

그러나 두니아의 아이들은 번창했고, 이븐루시드는 복권 된 후 일 년만에 여행중에 사망합니다. 이븐루시드의 사생아들은 전 세계로 퍼져나가 살게 되었고 그들은 한결같이 귓볼이 없으며 좀처럼 한자리에 머물러 살지 못했습니다. 이제 본격적인 이야기는 그로부터 팔백 년 이상이 흐른 후, 지금으로부터 천 년도 넘은 옛날에 일어난 괴이한 일들이 2년 8개월 28일 동안이나 이어졌던 시절의 이야기 입니다.

아이들만 두고 연기처럼 사라졌던 두니아의 등장과 두니아자트, 두니아의 자식들의 자식들의 자식들의 이야기 속에 정원사 제로니모가 등장합니다. 예순도 넘는 나이에도 여전히 튼튼하고 팔팔한 라파엘 히에로니무스 마네제스(제로니모 마네제스), 즉 미스터 제로니모는 사랑하는 아내가 어느날 번개를 맞고 사망하자 죽은 아내의 영혼이 자신이 돌보는 식물에 깃들어 있다는 믿음으로 정원사가 되었습니다. 그에게도 괴이한 일은 일어났는데 바로 지상에서 일 센티미터 정도 떠 있게 되었다는 점입니다.

처음 책을 읽기 시작했을 때의 당혹감이 점점 사라지고 수 많은 두니아자트의 세계 곳곳의 이야기들이 서로 엮여 있음을 발견할 때마다 폭넓은 작가의 세계관과 지식들에 놀랄 수 밖에 없었습니다. 마족들의 침공에 원인을 제공한 이븐루시드와 그의 숙적 가잘리, 그가 쓴 책 [철학자의 부조리], [부조리의 부조리] 속에 알라딘 영화속 지니의 참모습이 흑마족 거마 주무루드와 겹쳐 동화는 참혹한 인간과 마족의 전쟁으로 변하고 말았습니다. 오히려 인간보다 더 인간다운 여마신 두니아의 도움으로 세상과 마족들의 세계가 단절 되는 그 시간까지의 이야기들이 끊임없이 이어지고 엮여 꿈과 현실, 과거와 미래가 모두 한 곳에 존재하는 듯 합니다.

백 번 다른 사람이 쓴 글을 읽는 것 보다 한 번이라도 읽어보시길 권하고 싶습니다. 다 읽고나면 혹시 나조차도 누군가의 꿈속 세상의 존재는 아닐까 상상의 나래를 펼치게 되고, 귓볼이 있으니 두니아족은 아니라는 결론을 내리게 될 것입니다.

*출판사로부터 책을 무상으로 제공받아 작성한 개인적 리뷰입니다.

#2년8개월28일밤 #살만루슈디 #장편소설 #문학동네
#역사와신화 #마족_마신 #혼돈과광기 #루슈디식_천일야화 #서평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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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일이 아주 없는 건 아니잖아
황인숙 지음 / 달 / 202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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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산이 보이는 해방촌에서 오랜세월을 보내며 지금은 캣맘으로 바쁜 시간을 꾸려나가는 시인 황인숙님의 산문집을 오늘 만났습니다. 화사한 노란색이 개나리를 연상시키는 표지에 고양이들이 여기저기 숨어 있습니다.

처음 읽으며 시인의 나이는 잊혀졌다가 쉰 살 후배 얘기가 나오면 깜짝 놀라고 ‘아, 그렇구나‘를 속으로 외치며 마음이 다정해서 추운 겨울이면 고생하는 사람들과 함께 길고양이들을 걱정합니다. 시인의 시선으로 쓴 산문집에는 시어보다 더 시를 닮은 단어들과 문장들이 있고, 시인이 읽었다는 책 제목들은 기억에 남습니다. 아마도 시인이 재미있게 읽었다는 추리소설은 다음달 저에게 오게 될 것만 같은 확신이 듭니다. 나이가 주는 여유로움은 없습니다. 단지 지혜롭고 배려 많은 시인의 자기 고백이 있고 그 모습이 당찬 듯 다가옵니다.

긴 겨울의 터널을 지나 봄이면 화사하게 피는 벚꽃길을 걷듯이 힘들고 지친 지금의 사태가 진정이 되면 작가님이 앉았던 카페를 들러 차를 마시고, 혹시 있을지 모를 시인의 흔적들을 따라 108계단 어딘가를 배회하고 싶습니다. 환갑이 넘은 연세에도 시인은 나이듬을 시로 표현하고 또 다른 시인의 제주행을 우러러 봅니다. 그 단행력과 자유로움을 감탄하면서.

젊은 시절에도 결코 젊은 적이 없다는 시인의 농담같지만 진심인 글들을 읽으며 따스한 오후를 즐길 기회가 되어 행복했습니다. 그렇지요, [좋은 일이 아주 없는 건 아니잖아]라는 제목이 뭉쿨하게 다가 옵니다. 일상만큼 소중한 건 없고 시인의 매일매일이 따뜻하길 바래 봅니다.

#좋은일이_아주없는건_아니잖아 #황인숙 #산문집 #달출판사 #시인의_산문집 #해방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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