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릴 수 있었던 여자들 - 죽음에 이르는 가정폭력을 어떻게 예견하고 막을 것인가
레이철 루이즈 스나이더 지음, 황성원 옮김, 정희진 해제 / 시공사 / 202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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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살릴 수 있었던 여자들]에서 알 수 있듯이 우리가 조금만 관심을 갖고 살폈다면 지금 여전히 살아있을 수 있는 여자들이 죽어갔다는 것을 폭로하는 책 입니다.

책을 펼치고 제일 먼저 다가오는 충격은 제 자신의 무지 입니다.
‘전 세계에서 친밀한 반려자나 가정폭력으로 인해 목숨을 잃는 여성은 하루 평균 137명이다. 여기에는 남성이나 아이는 포함되지 않았다.‘ 라는 문장을 만났을 때 가정폭력의 무시무시한 살상력을 그저 사적인 영역으로만 치부하던 생각에 강한 펀치를 맞은 느낌이었습니다. 하루 평균 137명.

저자는 폴 먼슨의 집을 방문하며 픽션이라고 믿고 싶은 논픽션을 써 내려 갑니다. 60대 초반의 전기 설계 기술자 폴 먼슨은 딸들에게 첫 차를 사줬었다며 이야기를 꺼냅니다. 알리사, 미셸, 멜라니 모두에게 말입니다. 미셸이 여덟 살 때 이혼을 했고 전처 샐리가 아이들을 돌봤으나 10대의 알리사와 미셸은 자유롭고자 아빠인 폴의 집으로 왔습니다. 그 결과 둘째 딸인 미셸은 열네 살에 만난 스물네 살의 로키에게 반했고, 열다섯 살에 크리스티를 낳았습니다. 1년 뒤엔 카일을 낳았습니다. 문제의 2001년 11월 로키 모저가 자신의 부인 미셸과 크리스티(7세), 카일(6세)을 총으로 살해하고 자신도 자살하며 심각한 가정폭력의 이면이 들춰졌습니다. 폴 먼슨과 알리사 뿐만 아니라 미셸을 알고 있던, 크리스티와 카일이 다니던 학교의 모든 사람들이 충격을 받았습니다. 로키의 부모 역시도.

이 비극적인 이야기는 더 비극적인 사실이 숨어 있습니다. 미셸이나 아이들이 이미 가정폭력에 시달리고 있음을 주변에서 인지를 하고 있었으나 그 사태의 심각성을 낮게 평가함으로써 가족 모두 살해당하는 비극을 맞이했다는 것입니다. 마약 전과가 있고 폭력적인 로키를 그저 6개월의 접근금지명령으로 분리 시키고 그마저 로키의 부모에 의해 보석으로 풀려난 후 여전히 가족을 사랑한다며 반 협박의 행태를 부리는 모습을 미셸의 부모는 직접 보았으나 성인이 된 자식이 결국 다시 로키와 살겠다고 하는 말에 순수히 보냈고 그 끝은 네 명이던 손주들이 지금은 두 명뿐이라는 말로 남겨지게 되었습니다.

피해자, 피해자의 가족, 가해자, 가해자의 가족 등과의 인터뷰로 쓰여진 이책은 사회에서 벌어지는 총기사건의 배경으로 가정폭력이 자리잡고 있음을 찾아내는 여정입니다. 최악의 총기사건들은 결과에 대해서만 집중 조명을 받습니다. 개인이 사이코패스인 경우도 있지만 아무 관계도 없는 이들을 향해 총을 난사하는 범인의 첫단추는 가정폭력에서 시작되고 있습니다. 살릴 수 있었던 여자들의 신호를 무시한 그동안의 관행을 깨기 위해, 폭력적인 관계에서 여성과 남성의 살해 위험을 높이는 위험 요인들을 파악하기 위한 예측을 하고 살해 위험도를 객관적 수치로 나타내는 평가를 통해 자신이 얼마나 큰 위험에 처했는지 판단하게 만드는 것이 왜 필요한지 여러 사례를 통해 알게 되었습니다. 처음이라서, 순간적으로 화가나서, 일회성이라서 선처를 한다는 것이 주는 무서움을 배웠습니다. 절대 그 처음이 마지막이 될 수 없다는 것을 알아야겠습니다.

[살릴 수 있었던 여자들]은 총기사용이 가능한 미국만의 이야기가 아닙니다. 지금 이순간에도 우리 주변에 학대받거나 가정폭력의 그늘에서 경제적인 사정으로 벗어날 수조차 없는 현실을 감내하고 있는 여자들, 아이들, 약자들이 존재합니다. 이는 개인의 사적인 다툼으로 치부해서는 안됩니다. 사회구조의 문제이며 우리 자신의 문제이기도 합니다. 많은 이들이 이책을 함께 읽고 사태의 심각성과 사회문제로의 인식변화가 이뤄졌으면 좋겠습니다. 무차별 폭행에 희생 된 이들을 그저 운이 안좋아 그때 그장소에 있었다는 말이 더이상 안나오길 바랍니다. 우리가 눈감아 외면하면 누구든 폭력의 현장에 놓어지게 됩니다.

*출판사 제공 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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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의 그림자 (합본 특별판) 잊힌 책들의 묘지 4부작
카를로스 루이스 사폰 지음, 정동섭 옮김 / 문학동네 / 202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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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지금도 아버지가 ‘잊힌 책들의 묘지‘로 나를 처음 데려간 그 새벽을 기억한다.

카를로스 루이스 사폰의 장편소설 [바람의 그림자]의 시작은 이렇게 다니엘의 기억으로 만나게 되었습니다. 잿빛 하늘에 사로잡힌 바로셀로나의 거리를 걷는 아버지와 아들의 모습이 표지를 장식하는 책을 펼쳐들며 저 역시 ‘잊힌 책들의 묘지‘에서 만난 훌리안 카락스의 마지막 소설 ‘바람의 그림자‘를 따라가는 긴 여정에 동행을 하게 되었습니다.

다니엘은 다섯 번째 생일날, 콜레라가 데려간 어머니를 몬주익에 묻어야 했고, 그로부터 6년이 지난 1945년 아직은 11살이 되지 못한 다니엘에게 아버지의 특별한 선물은 그의 인생을 송두리채 바꿔 놓았습니다. 훌리안 카락스에 대한 호기심이 엮어 만든 소용돌이 속에서 다니엘은 소년에서 청년이 되고 지워졌던 훌리안의 여정이 다시 살아나 유령처럼 자신의 곁을 배회하는 것을 목격합니다.

열여섯 번째 생일날, 사랑의 열병을 앓고 있는 다니엘은 짝사랑의 종지부를 찍어야만 했고 그 대신 평생을 함께 할 친구이자 연인 베르나르다와 페르민 로메로 데 토레스, 누리아를 만나 카락스의 흔적들을 역추적 해 그가 1919년 프랑스 파리에서 사망했다는 소문이 사실이 아님을 밝혀냅니다. 카락스의 소설 [바람의 그림자]는 1935년 말에 파리의 작은 출판사에서 나왔는데 이 소설의 비극은 누군가 카락스의 소설들을 찾아내 악착같이 불태워버려 세상에 남겨진 유일한 책이 다니엘의 손을 거쳐 존재함을 드러냈기 때문입니다.

스페인 내전으로 수 많은 사람들이 서로가 서로에게 적이 되었던 역사를 고스란히 간직한 카를로스 루이스 사폰의 소설 [바람의 그림자] 속에 존재하는 사이코패스 푸메로 경감의 집념어린 감시와 책 속의 책 ‘바람의 그림자‘를 세상에서 지우기 위한 유령의 전쟁이 또하나의 비극이자 희극으로, 인연으로 이어지는 이야기는 미로와 같습니다. 긴장 된 순간을 지나고나면 공포에 싸인 내면의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자신을 숨기고 유령이 된 존재와의 긴 인연이 맨마지막 장의 헌사로 다가 오는 동안 죽음과 살인과 배신과 슬픔이 함께 합니다. 그리고 사랑의 결실과도.

누군가에게는 스릴러로, 다른 누군가에게는 판타지로 읽힐 소설 [바람의 그림자]는 저에게 또다른 세상을 향한 문을 제시합니다. 이제 저는 여러분을 ‘잊힌 책들의 묘지‘로 바람의 그림자를 따라 오시라 초대합니다.

#바람의그림자 #카를로스루이스사폰 #정동섭_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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