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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령의 시간 ㅣ 교유서가 다시, 소설
김이정 지음 / 교유서가 / 2024년 9월
평점 :
어떤 책들은 내가 선택하는 것이 아닌 운명처럼 ‘지금은 날 읽어야 해‘ 하고 다가오는 것 같습니다. 김이정 작가님의 장편소설 [유령의 시간] 처럼.
바쁘게 살다보면 시간이 참 빠르게 흐르는 것 같습니다. 자꾸만 뭔가를 잊어가고 잃어가다보면 겪어보지 못한 역사의 물줄기는 신화처럼, 그저 옛이야기처럼 산화됩니다. 80년대 이산가족 방송을 흐릿하게 기억하고, 누군가는 몰래 북한에 갔다왔다는 이유로 수감이 되고, 90년대와 2000년대 또다른 세상이 열리는가 싶었지만 여전히 전쟁이 끝나고도 70년째 분단의 역사를 안고 살아갑니다. 햇살이 드는 시기도 있었지만 지금은 서로가 서로를 향해 오물을 던지고 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그때, 독립운동을 위해 가산을 나눠 목숨값을 치르던 시절을 거치고 좀더 깨어 있는 지성인들이 황폐화한 조국을 일으켜 세우고자 사회주의 국가의 이상향을 펼쳐보려 하던 시절에 강대국의 입맛에 따라 나라의 허리가 잘리고 급기야 서로를 향해 총부리를 겨누게 됩니다.
소설의 프롤로그는 그로부터 50년쯤 지나 ‘지형‘이라는 이름의 작가 가 평양의 고려호텔 창문 밖에 온통 잿빛 거리를 보여주듯 설명하며 시작합니다. 남북작가대회 작가단에 합류해 머무는 호텔 건너편 아파트에 살고 있다는 누군가를 만나길 기대하는 심정이 고스란히 전해지지만 소설은 야속하게도 시간을 과거로 돌려 지형의 아버지가 제주도에서 말을 키우다 쫒기듯 충청도 서해 바닷가 새우 양식장을 하던 시절로, 또 개발에 떠밀리듯 서울로 올라와 시민아파트에 살게 된 이야기, 잃어버린 아이들 세 명이 돌아오길 기다리다 가슴에 묻고, 다시 얻은 네 명의 자식들 중 또 하나를 잃은 아버지가 일제 강점기에서 30년, 해방 된 후 30년이 되었으니 자식들을 앞에 불러모아 놓고 잊혀서는 안되는 자신의 이야기를 쓰겠다고 결심을 선언한 장면에 이어서 시대가 개인에게 무슨 억하심정이라도 있는지 아버지를 기어이 거꾸러뜨리고, 포기하려던 대학 진학의 꿈을 막 피우려던 오빠 지석에게 가장의 무게를 고스란히 남긴채 생을 마감하게 됩니다. 지형의 아버지가 겪어야만 했던 부당한 차별과 감시, 사회적 폭력이 자꾸만 튀어나오던 판도라의 상자엔 그 어디에도 희망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뼈져리게 느낄 때즈음 소설은 다시 평양의 고려호텔을 떠나는 지형의 편지로 마무리 됩니다.
잊혀지면, 놓쳤으면 안타까웠을 책을 만날 수 있어 행복하면서 슬픈 날들이었습니다. 지금의 우리를 돌아보게 만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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